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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8주기…시작도 못한 진상규명, 끝나지 않은 싸움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 "2009년에 시간 멈췄다"
옥바라지 골목, 인덕마을…나아지지 않은 철거민 삶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7-01-19 06:00 송고
 '용산참사' 5주기였던 지난 2014년 1월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터 일대 . 2014.1.20/뉴스1
 '용산참사' 5주기였던 지난 2014년 1월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터 일대 . 2014.1.20/뉴스1

"사람은 결코 철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강제퇴거는 편의가 아니라 최종수단이 돼야 한다."

지난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그는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에 대해 언급하며 "가슴 아픈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모든 법과 행정적 권한을 동원해 강제철거를 원칙적으로 차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말처럼 용산참사는 강제철거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줬으며 이후 철거민 대책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참사로 인해 가족을 잃은 가족들에게는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겨져 있고 아직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철거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 8년 전 그날 가족들의 시계는 멈췄다

살기 위해 아들과 함께 망루에 올랐다 불귀의 객이 된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74)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우리 가족들의 시간은 그날, 2009년 1월20일에 멈춰있다"며 입을 열었다.

당시 전씨는 남편을 화마에 휩싸이게 만든 망루가 그렇게 위험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망루라는 곳이 올라가면 다 해결이 되고, 다 대화가 되고 내려오는 곳인 줄 알았다"며 "그 안에서 누가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거길 올라갔겠나"라며 한숨을 내쉰 전씨는 당시 세입자들은 망루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구청도 재건축 조합도 세입자들의 입장을 들어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씨에 따르면 5년, 10년 같은 자리에서 세 들어 장사를 해오던 사람들에게 1500만원에서 3000만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도저히 다른 곳으로 갈 형편이 안됐다.

전씨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27년 가까이 그곳에서 장사를 했는데 우리가 받을 보상금은 어디 가서 사글세도 못 얻을 만한 돈이었다"고 말한 그는 "개발이라는 게 다 좋은 줄 알았는데 결국 있는 사람들만 좋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용산참사로 희생된 고(故)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참사 8주기를 앞둔 17일 오후 서울 중랑구 상계동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7.1.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용산참사로 희생된 고(故)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참사 8주기를 앞둔 17일 오후 서울 중랑구 상계동 자택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7.1.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당시 세입자들은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 찾아다녔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는 커녕 '떼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씨는 "대화할 곳이 없어서 간 거다. 대화할 곳이 없어 어디를 찾아가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그곳에 올라간 거다"라며 망루에 아들과 남편을 올려보낸 그때를 기억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면 이야기가 끝나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만 하루만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경찰은 사망자들의 시신을 경찰의 가족들에게 인계하지 않았으며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부검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된 것은 사고 이후 사망자들에게 붙여진 또 하나의 딱지였다. 떼쟁이라는 이름에 '빨갱이' '테러리스트' '전문시위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전씨는 당시 망루에 올라갔던 사람들의 과격한 시위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해 8년이 지난 지금도 '절대 동의 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해 사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이 8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전씨는 "목소리를 내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자나 깨나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는 시작도 안 돼 

전재숙씨의 아들 이충연씨(43)는 2009년 당시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함께 망루에 올랐던 아버지를 잃은 이씨에게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그는 "용산참사라고 하면 당시 그 하루 화염병과 불타는 망루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1년 전부터 용역들에 의해 괴롭힘과 폭력이 계속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아버지 또한 용역과의 다툼에서 비롯된 법적 책임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고 전했다.

지난 2014년 1월 서울 용산 남일당 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추모 집회에서 유가족들의 가슴에 '여기 사람이 있다'는 리본이 달려 있다. 2014.1.18/뉴스1
지난 2014년 1월 서울 용산 남일당 터에서 열린 '용산참사 5주기' 추모 집회에서 유가족들의 가슴에 '여기 사람이 있다'는 리본이 달려 있다. 2014.1.18/뉴스1

이씨는 "당시 73세였던 아버지가 32세의 건장한 용역직원과 다툼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전치 2주, 용역직원이 전치 3주가 나왔다는 이유로 경찰이 아버지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런 일상화된 용역의 폭력 앞에 어쩔 수 없이 망루에 올랐다는 이씨는 참사 이후에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사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길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원인 미상의 화재가 발생한 것에 대해 법원은 철거민이 화염병을 던졌던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당시 화염병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30명이 넘는 경찰 채증인원도 발화 시점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우리가 당시 현장에 있던 발전기가 과열돼 화재가 발생했음을 주장했지만 국과수에서 발전기 스위치를 분실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힐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씨에 따르면 일부 법의학자들은 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신체에서 화재가 아닌 외상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진상을 밝히기 위한 활동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씨는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용산참사의 진실규명에 동의했음에도 이후 참사에 책임 있는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국회의원 선거에 공천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대규모 재개발에 의한 피해는 줄었지만 철거민 고통은 여전

용산참사 이후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 노원구 월계동 인덕마을 등 철거 문제에 항의하는 주민·상인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호승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협) 상임대표은 철거민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현재 공익사업이라고 규정될 경우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게 한 개발 관련법안들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법이 계속 존재하는 한 철거민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어 참사 이후에 개정 노력이 있었지만 정치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개발 주체에게 강제 수용권이 있고 토지 등에 대한 가치도 주관적으로 정해져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철거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개발이익 환수, 공익기조의 공공계획개발, 공공임대주택 확대, 순환식개발 등의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용산 참사는 황당한 폭력이었지만 이제 수익성 등의 문제로 용산과 같은 대규모 사업에 의한 철거민 피해는 많이 없어진 편이다"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뉴타운 개발의 60~70%가 해제되는 등 공공이 주도하는 대규모 철거는 대부분 없어졌다"면서도 "하지만 민간 대 민간에서의 철거문제는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싸이빌딩' '리쌍빌딩' 등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은 지난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회자됐었다.

지난해 7월 힙합 듀오 리쌍이 소유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건물에 세들어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두번째 강제 철거가 집행되자 세입자인 서윤수 우장창창 사장이 주저앉아 허탈해 하고 있다. 2016.7.1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지난해 7월 힙합 듀오 리쌍이 소유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건물에 세들어 있는 곱창집 '우장창창'에 대한 두번째 강제 철거가 집행되자 세입자인 서윤수 우장창창 사장이 주저앉아 허탈해 하고 있다. 2016.7.1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이런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남 교수는 집주인이 집에 대한 모든 권한을 소유한다는 우리 법의 기본 틀 자체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주인이 창문 하나 바꾼다고 권리금도 안 주고 기존의 세입자를 쫓아낼 수도 있는 게 우리 법의 현실"이라며 "기본적으로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민법 조항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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