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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 엄습한 비자유민주주의의 위험성

[NYT터닝포인트]

(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2016-12-31 15:58 송고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포인트 2017'이 발간됐다. '터닝포인트'는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마다 콕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차분히 대비토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이다. 올해의 주제는 '혼돈과 격변의 시대'이며 부제는 '기로엔 선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화'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2016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조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FP=뉴스1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AFP=뉴스1

터닝포인트: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해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지도자가 민주적 권한을 이용해 스스로를 강화하고 반대파를 제거하려 하면 아무도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가 사는 실리콘밸리에서는 ‘파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뜻이다. 매년 이곳으로 찾아오는 수많은 똑똑한 청년들은 기존의 비즈니스 방법들을 파괴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부자가 된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파괴는 부정적인 뜻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안정과 질서를 중시한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습관들을 쌓아가며 성인이 되는 법을 배우고 조상과 전통을 기억하며 유대를 맺는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계화된 사회에서는 생활수준이 아무리 더 나아지더라도 엄청난 기술과 사회적 힘이 지속적으로 기존의 사회적 관행을 파괴할 때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히 거부감이 생겨난다.
물론 세계화는 엄청난 혜택을 가져왔다. 1970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전 세계의 총생산은 4배 증가했고 그 이득이 부유층에게만 돌아간 것은 아니다. 스티븐 라델렛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극빈층 규모는 1993년에 42%이던 것이 2011년에는 17%로 감소했다. 개발도상국의 5세 미만 아동 사망률도 1960년에는 22%였으나 2016년에는 5% 미만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가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이 서구에서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아시아의 중산층이 부상했지만, 이는 부유한 국가들의 중산층이 희생된 결과이다. 또한 문화적 관점에서도 아이디어, 인력, 상품 등이 대거 국경을 넘나들면서 전통적 사회와 비즈니스 방법이 파괴됐다. 이는 누군가에게 굉장한 기회였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증대된 미국의 힘과 미국이 만들어낸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파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당연히 이는 미국 안팎에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정치제도는 ‘자유민주주의’로 불린다. 성질이 완전히 다른 2개의 가치가 결합된 것이다. 자유주의는 모든 시민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해주는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법치주의는 특히 경제 성장과 번영에 중대한 요소인 사유재산권을 보호한다. 민주주의의 일부를 구성하는 정치적 선택은 공동 선택의 집행자이며 시민 전체를 책임진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자유주의에 반하는 저항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가장 충격적인 예는 2년 전 헝가리가 ‘비자유주의 국가’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선언이다.

2014년 총선에서 오르반 총리의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은 대부분의 표를 확보해 의회의 제1당이 되었다. 이후 피데스는 오르반 총리에게 권력이 집중되도록 헌법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그 후 오르반 총리는 비판적 언론과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던 비정부기구(NGO)들을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오르반 총리는 전 세계 최고의 ‘비자유민주주의’ 실행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흉내 냈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부터 특히 러시아에서 더 큰 인기를 모았다. 그는 법에 얽매이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과 그의 동료들은 정치적 힘을 동원해 권력을 보장할 수 있게끔 그들 자신과 기업의 부를 증대시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이미지 © News1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이미지 © News1
    
인근 터키에서는 대통령이자 장기집권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2014년 유권자로부터 강력한 민주적 권한을 위임받았다. 2년 뒤 발생한 쿠데타는 그를 따르지 않던 수천 명의 공무원, 군인, 언론인, 교수 등을 공격할 수 있는 구실이 됐다.     

오르반, 푸틴, 에르도안은 모두 자유주의와 범세계주의적 성향이 높은 도시 엘리트들과 교육 수준이 낮은 지방 출신 유권자들로 양극화되어 있는 국가들에서 정권을 장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점은 헝가리나 러시아나 터키나 모두 같다. 이 같은 사회적 분열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된 영국과 도널드 트럼프가 부상한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트럼프의 부상은 미국의 제도에 대한 독특한 도전이다. 그가 비자유민주주의 추세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입증했다. 하지만 그는 하청업자들에 대한 임금 지불 등과 같은 불편한 규칙들을 요리조리 피해온 경력으로 점철된 인물이다.

그의 인기는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기존 관례를 깨부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에서 기인한다. 이는 처음에는 정치적으로 포용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비판 언론인 기소를 위한 명예훼손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직후부터 신속히 우려감으로 바뀌었다. 미국 유권자들에 “나 홀로” 국가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 그의 주장은 순전히 자기 개인의 힘을 통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 국가기관 개혁을 통하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존경심을 나타내고 푸틴이 이에 화답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푸틴처럼 트럼프는 민주적 권한을 이용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특징짓는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키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러시아에 있었다면 자신의 부를 이용해 정치적 권력을 얻고 그 정치적 권력을 이용해 부를 더 확대하려는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푸틴처럼 트럼프도 지지자들로부터 공격받지 않는 대안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사례는 다른 국가에서도 발생했다. 인도와 일본의 국민들은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를 선출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전임자보다 더 폐쇄적인 정체성을 옹호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오르반 총리나 에르도안 대통령보다 더 용의주도하게 자유주의 원칙을 준수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들이 지지자 내부에서 조용히 편협성을 조성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나타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2월 16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 AFP=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2월 16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 AFP=뉴스1

이 같은 비자유민주주의를 향한 행보 추세가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가? 20세기 초와 같이 전 세계 정치가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 분쟁에 빠지는 시대로 우리가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몇몇 중대한 요인들이 그 결과를 결정할 것이다.

특히 전 세계 엘리트들이 그들을 위협하는 반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달렸다.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유럽에서는 엘리트들이 일으킨 정책 실수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그들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금융시장 규제 철폐는 미국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게 된 기반이 됐고, 미숙하게 설계된 유로화는 그리스 재정위기에 일조했으며, EU 회원국들 간의 국경개방을 위한 솅겐조약은 유럽으로의 난민 유입을 통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엘리트들은 이 같은 사태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놀라운 점은 오늘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이 실현될 정도로 포퓰리스트들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손상된 제도를 고치고 세계화의 혜택을 공평하게 나눠받지 못한 사회의 일부 집단에 보다 개선된 완충제를 제공하는 것은 이제 엘리트들에게 달려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뒤바꾸는 것은 세계화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의 일자리가 사라진 근본적 이유는 이민이나 무역이 아닌 기술적 변화 때문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미국의 제조업 분야는 지난 수십 년간 재탄생된 부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들을 파괴에서 보호할 더 나은 제도가 필요하다.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폐쇄되고 붕괴된 세계 무역제도 때문에 더 큰 불평등이 생겨나는 최악의 세계를 맞게 될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스탠퍼드대 민주주의·개발·법치센터의 소장 겸 선임연구원이다. 저서로는 <역사의 종언>이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News1
프란시스 후쿠야마© News1



y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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