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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우상…미얀마 국부 딸 수지, 탄압·불통 화신 전락

"소수민족 외면한 반쪽짜리 지도자"

(서울=뉴스1) 김윤정 기자 | 2016-11-25 16:19 송고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 아웅산 수지 국가 자문역 겸 외무장관. © AFP=뉴스1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 아웅산 수지 국가 자문역 겸 외무장관. © AFP=뉴스1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국부로 추앙되는 아웅산의 딸로 태어났다. 영국에서 40대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는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미얀마에 귀국한 후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이른바 8888항쟁에 참여하면서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정치에 뛰어든 지 3년만인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89년 가택연금으로 외부와 단절된 뒤 2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민주화의 꽃'으로 떠올랐다.
국민들은 '국부의 딸'에 열광했다. 그의 침묵은 나름의 해석이 가미돼 부풀려졌고, 독단적인 모습은 강인한 지도력으로 포장됐다.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로 오른 아웅산 수지가 걸어온 길이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수지를 우상시하던 국민들은 실망감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인권 운동가의 이미지가 아닌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주류인 군부와 가깝게 지내고, 소수 민족의 인권 탄압에 대해선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내면서 그를 추켜세우던 서방 언론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로힝야족 '인권청소' 논란에도 침묵


지난달 라킨 주에서 발생한 로힝야족 무력 충돌을 빌미로 미얀마 군이 대규모 말살 수준의 탄압을 가하면서 미얀마의 소수민족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유엔은 24일(현지시간) 미얀마 군이 로힝야족을 상대로 '인종 청소'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국경마을 콕스 바자르의 유엔난민기구(UNHCR) 소장 존 맥시식은 BBC에 "아이들을 포함해 주민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강간하며 집을 불태우면서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강을 건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맥키식은 이어 "방글라데시 정부 입장에선 국경을 열어두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얀마 군이 미얀마 소수민족의 '인종 청소' 목표를 달성할 때가지 극악무도한 행위를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가 잇따라 로힝야족 인권 유린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확실한 증거를 대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저 타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유엔의 '인종 청소' 발언에 대해 "유엔 직원으로서 직업정신과 윤리를 따르는지 의문이 든다'며 "그는 확실한 사실에 근거해 발언해야 하며 비난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군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로힝야족 소녀. © AFP=뉴스1
군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로힝야족 소녀. © AFP=뉴스1

◇ 인권운동가, 민주화의 꽃…수식어와 멀어지는 기득권 정치인


수지도 군의 로힝야족 탄압이 시작된 후 6주째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를 '인권수호자'라 칭송하던 서방 언론도 최근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사설을 통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가 집권하면서 로힝야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희망이 있었지만, 섣부른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침묵은 공범과 같다', '수지는 어디있는가'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연일 쏟아지는 상황이다.

수지는 과거에도 미얀마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불교도인 미얀마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수지는 불교도의 지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교도가 무슬림 소수민족을 '로힝야'라 부르지 않고 '벵갈리'로 낮춰 부르는 것에 대해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와 '벵갈리' 모두 쓰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도 수지의 미온적 입장을 방증한다.

로힝야뿐만 아니라 카친족 등 다른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30~40%에 이르는 소수민족 국민을 외면한 반쪽짜리 지도자라는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월 8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에 참석해 나란히 서 있는 아웅산 수지(왼쪽 두번째)와 박근혜 대통령(왼쪽 세번째). © AFP=뉴스1
지난 9월 8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에 참석해 나란히 서 있는 아웅산 수지(왼쪽 두번째)와 박근혜 대통령(왼쪽 세번째). © AFP=뉴스1

◇ 군부 독재 답습하는 수지 정권, '불통'에 국민 실망감 커져


소수민족 문제뿐만이 아니다. 군부가 물러나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수지가 집권하자 국민들은 팍팍해진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수지는 그가 경멸했던 군부의 통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선 정치권의 부패와 대기업 결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소셜미디어에선 관료들이 각종 뇌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이 연일 나도는 상황. 집권 이후 물가는 2배 이상 뛰었고, 소득 불균형도 점차 심해지고 있어 미얀마 곳곳에선 시위가 발발하고 있다.

언론 탄압도 심각한 수준이다. 집권 여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언론사가 조사를 받거나 편집장이 수감되기도 했다. 특히 로힝야족 거주지인 라킨 주엔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의 접근도 철저히 차단했다.

수지의 의사소통 방식도 문제다. 후계자를 두지 않는데다 독단적 의사결정으로 '불통 지도자'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수지의 지지자엿던 툰 치는 수지 집권 100일을 맞아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명령만 내리려 한다"고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군부를 좋아한다. 나의 아버지가 세운 군대이기 때문이다." 수지는 지난 9월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에게 어쩌면 미얀마는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 미얀마 국민은 '나의 국민'일지도 모른다. 수지가 정치 무대에 나선 이유가 미얀마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란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yj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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