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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기자의 '냉장고 파먹기' 도전기

절약·미니멀리즘 위해 '냉장고 파먹기' 인기
식비 지출은 줄었지만 식욕도 같이 줄어

(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 | 2016-11-19 07:00 송고
냉장고 안에 묵혀뒀던 재료로만 음식을 조리해서 해치우는 소위 '냉장고 파먹기'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다.

냉장고 파먹기는 가계절약을 실천하려는 주부들 뿐 아니라 환경을 생각한 음식물 줄이기 운동이나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어 '냉파'라는 줄임말 까지 생겨날 정도다. 일부 재테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서로 냉장고를 얼마나 비웠는가 인증하는 '냉파 게임'도 있다고 한다.
직업 특성상 잦은 회식과 외식으로 건강도 잃고, 지갑도 비어가던 기자는 고민 끝에 재테크 관련 커뮤니티를 탐색하다 이같은 유행을 뒤늦게 접하고 '냉파'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식비도 줄고 외식을 자제하는 좋은 생활습관을 길렀지만, '냉파'를 통해 '나는 요리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일단 기본적인 요리 실력이 있어야 도전할만한 과제인 것 같았다.

기자의 집 냉장고 냉동실과 냉장실 내부 모습. © News1
기자의 집 냉장고 냉동실과 냉장실 내부 모습. © News1
◇냉장고 파먹기, 이렇게 했다

나의 '냉파' 도전은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됐다. '냉파'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각종 정보를 취합해 각 단계별로 진행했다. '냉파'의 첫단계는 바로 냉장고 안에 무슨 음식이 있는지 조사하기. 유통기한을 말도 안 되게 넘긴 일부 식재료는 버리고 먹을 수 있는 것만 건지자면 다음과 같았다.

냉동실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은 △회사에서 지난 명절에 보내준 불고기용 소고기 △미처 다 못먹고 얼려둔 블루베리 △제조일자 미상의 얼려둔 정말 많은 콩밥 △구입시기를 알 수 없는 고춧가루와 설탕 등 각종 양념 등이었다.

냉장실은 주로 △파·오이·열무김치와 백김치 등 부모님이 보내주신 오래된 밑반찬 △명절에 선물로 받았으나 유통기한을 조금 넘긴 햄과 아직 조금 남은 햄 △와사비·머스터드소스·케첩 등 소스류 △얼마 남지 않은 버터 △계란 3알 △캔맥주 등 주류가 차지했다.

그밖에 선반에는 소금과 참기름, 볶은 깨, 라면과 통조림 햄 등이 있었다. 답이 없었다.

재료 파악이 끝났으니 어떻게 먹을지 고민해야 했다. 일단 냉파의 큰 원칙은 '없으면 없는 대로'다. 요리책 속 조리방법을 철저히 따르기 보다 있는 재료만으로 간단히 음식을 해 먹으라는 것이다. 재료도 재료지만 실력이 없을 때는 볶음밥이 제일 편해보였다.

그래서 처음 해먹은 것이 정체불명의 볶음밥이었다. 우선 얼려둔 콩밥은 전자렌지에 1분30초정도 돌려 해동해 두고, 집에 있는 모든 김치를 모아 잡히는 대로 일단 썰었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햄 절반을 약간 큼직하게 깍둑썰기 하고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른 뒤 김치를 먼저 볶고 햄을 볶았다.

해동해 둔 밥을 올려서 볶다 보니 좀 색깔이 밋밋했다. 열무김치 국물을 짜지 않을 정도로 프라이팬에 붓고 명절 햄 선물에 딸려온 잠발라야 소스 반숟갈과 케첩 반숟갈을 볶았더니 색이 그럴싸해졌다. 남아있던 매실장아찌 무침을 반찬삼아 한끼를 간신히 해결했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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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도전한 것은 불고기용 소고기가 아까워 해먹은 정체불명의 규동.

꽝꽝 언 소고기를 봉지째 미지근한 물에 담구어 미리 녹이고, 채소가 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양파와 1인분으로 소포장해 파는 파인애플을 사왔다.

인터넷에 있는 쯔유 만들기 방법을 멋대로 해석해 간장과 설탕을 일단 끓이고 집에 남아있는 소주를 부어 소스를 만들었다. 끓고 있는 소스에 양파 반개를 썰어넣고 고기가 질겨진 것 같아 파인애플도 잘게 썰어 넣었다.

여기에 녹은 소고기를 넣어 같이 볶아 해동시킨 콩밥 위에 얹었다. 볶은 깨를 뿌려 마무리. 도저히 고기만 못먹겠어서 음식해먹고 남은 파인애플은 후식으로 먹었다.

제일 만족스러웠던 것은 짜장밥이었다. 볶음밥이 지겨워 하는 수 없이 레토르트 짜장 소스를 사다가 규동을 만들고 남은 양파를 볶아 짜장밥에 투척했다. 볶음밥을 해먹고 남은 햄도 짜장에 들어가는 고기 대신 썰어서 넣고 그런대로 달걀 프라이를 해 얹었다.

앞선 도전에서 너무 반찬이 없이 밋밋했던 것 같아 동네 반찬가게에서 1인분을 담아 파는 꼬막무침을 사서 먹었다. 사다먹은 음식이 많아서 그런지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밖에 나름대로 디저트에도 도전했는데, 하나는 바나나와 블루베리가 토핑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고, 하나는 이걸 다 갈아서 만든 스무디였다. 집에 남은 얼린 블루베리를 여기에 모두 쓰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바나나는 새로 사서 먹어치웠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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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은 '식비 지출 절약', 잃은 것은 '식욕'

스마트폰 가계부 어플리케이션에 기록된 지출내역을 기준으로 지난 3개월간 한 달 평균 식비는 65만6000원꼴이었다. 혼자 사는 것 치고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월급 지급일을 기준으로 넷째주에 접어든 지금까지 식비는 35만원이다. 아직 1주일을 더 생활해보아야 정확하겠지만 이정도면 꽤 절약한 편이라고 자평하겠다.

그러나 이같은 절약 효과는 음식을 자주 해먹어서라기 보다는 외식 생각이 들 때 한번쯤은 냉장고 속 음식을 떠올리는 마음가짐 덕분이었던 것 같다.

이미 언급한 메뉴 가운데 가장 간편하고 먹을만 했던 볶음밥과 짜장밥은 몇차례 더 해먹었는데, 평상시라면 간단히 '바깥에서 사먹고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을 법한 날에도 '집에 있는 음식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 자신이 기특했다.

'절약'이라는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분에 맞지 않는 과한 식사는 피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약간 역효과를 낳아 '해 먹는 음식은 귀찮고, 사 먹는 음식은 비싸다'는 생각에 몇번은 아예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 냉장고에 남은 오래된 김치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식욕을 점점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냉장고, '파먹기' 전에 '쌓지 말기'

'냉파'에 도전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분에 넘치는 식재료는 우선 사지 말자는 반성이었다.

실제로 과거 자취를 막 시작했을 때는 대형마트에서 많은 양을 사면 좀 더 저렴하다고 착각해 반찬이나 채소를 과하게 샀다가 버린 일이 많았다. 그리고 아깝다고 생각하면 냉동실로 직행하는 일도 흔했다.

그러나 먹고 싶은 식재료를 확실히 정하고, 조금씩 담아 파는 제품을 선택한다면 이같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한국환경공단의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홈페이지(zero-foodwaste.or.kr)에서 제공하는 자투리 재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과 식재료 보관 방법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팁이다.

식비 절약을 위해 '냉파'를 해봤다는 주부 김모씨(47·여)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돼 몇번 요리를 해먹다 보니 냉장고가 많이 비워져 좋았다"며 "냉장고를 비운 뒤에는 한번에 많은 재료를 사기 보다는 필요한 재료를 그때그때 구입하거나 채소 등은 미리 손질해 냉동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냉파'가 냉장고에 오래 넣어둔 음식을 먹는 일이기 때문에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적절한 음식 보관도 중요하다.

재료별로 냉장·냉동 보관이 가능한 기간이 제각각인데다 냉장고 기능과 성능에 차이가 있으니 제품에 쓰인 보관 기간을 우선 참고하되 냉동한 식품이라도 1~2개월 이내에 먹는 것이 좋다.


hm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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