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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끌기 위해 고통받는 '호객용' 동물들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016-10-07 08:50 송고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한 놀이공원에 전시돼 있는 미니돼지. 매점에서 파는 먹이를 구매하면 돼지에게 직접 먹여볼 수 있다. © News1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한 놀이공원에 전시돼 있는 미니돼지. 매점에서 파는 먹이를 구매하면 돼지에게 직접 먹여볼 수 있다. © News1

전북 김제시의 한 놀이공원. 회전목마, 바이킹 등 10여 개의 놀이기구와 눈썰매장 시설 등을 갖춘 이곳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독특한 광경이 펼쳐진다. 놀이공원 안쪽으로 뻗어 있는 길의 양 옆에 늘어선 시설물들. 입구에 들어선 사람들은 줄줄이 늘어서 하나같이 초록색 철망으로 둘러싸인 시설물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 시설물 안엔 '동물'들이 들어 있다. 토끼, 다람쥐, 흑염소, 닭, 돼지, 기니피그, 공작비둘기 등. 시설이 노후화한 데다 '볼 것이 없다'는 이용객들의 성토에 놀이공원 측은 지난해 동물 우리를 만들고 토끼, 돼지 등을 사다 채워 넣었다. 한 주민은 "장사가 안 되니 동물을 갖다 놓더라"면서 "점점 동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수도 늘고 있다"고 했다.
놀이공원 측은 매점에서 동물 먹이를 구입한 이용객들에게 먹이주기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건 물론 '과자 만들기' 등 다른 체험 프로그램과 함께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손님에게 흥밋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또는 손님을 모으기 위해 수년 전부터 상업적인 시설에 동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별도로 두는 곳들이 늘기 시작했다. 규모가 작은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는 물론 대기업이 운영하는 놀이공원도 동물 전시 공간을 마련해 부가수입을 올렸다. 카페, 숙박시설 등도 사육장을 따로 마련해 동물을 전시했다. 동물을 호객 수단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이렇게 상업시설에 동물 사육장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이상한 광경들이 사육사나 이용객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롯데월드가 생태 설명회를 열기 위해 들여온 프레리도그가 대표적이다.
롯데월드에선 프레리도그들이 새끼를 낳자마자 죽이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남아메리카 초원에 땅굴을 파서 살아야 하는 본능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가 끔찍한 '카니발리즘'으로 이어진 것이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프레리도그는 땅굴을 파서 새끼들을 보관한다"면서 "이곳은 땅굴을 팔 여건이 안 되고 좁다 보니 새끼를 낳고는 자기들끼리 다 죽여버린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도심의 한 카페에서 전시하고 있는 토끼. 한 평(3.3㎡) 남짓한 지저분한 우리에서 금계와 함께 사육되다 손님들의 민원으로 현재는 토끼만 남아 있다. 더러운 우리도 깨끗하게 청소됐다. © News1
서울 도심의 한 카페에서 전시하고 있는 토끼. 한 평(3.3㎡) 남짓한 지저분한 우리에서 금계와 함께 사육되다 손님들의 민원으로 현재는 토끼만 남아 있다. 더러운 우리도 깨끗하게 청소됐다. © News1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는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생태가 전혀 다른 토끼와 금계를 한 평(3.3㎡) 남짓한 우리에 함께 넣고 전시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토끼가 금계의 털을 물어뜯는 모습, 토끼 먹이와 토끼 배설물이 한 곳에 놓여 있는 모습이 잇따라 목격되자 참다못한 손님들이 관청에 신고까지 했다. 담당 공무원은 관련 규정이 없다면서 처벌에 난색을 표했다. 손님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카페 주인은 마지못해 토끼우리에서 금계를 빼는 조치를 취했다.  

동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전시 동물의 건강이 온전할 리 없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김제의 놀이공원에선 어미가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에 새끼 토끼 6마리 중 한 마리는 죽고 다섯 마리는 심각할 정도의 피부병에 걸려 있었다"면서 "사장을 설득해 토끼 소유권을 포기하게 하고 전북대 수의대에 치료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아무래도 동물 전문가가 없는 만큼 체험동물원이 각 동물의 습성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처럼 동물을 전시하는 상업시설이 갈수록 늘고, 이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함께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시설을 규제할 법적 장치가 전무하다는 데 있다. 지난 5월 19일 국회에서 통과한 동물 전시시설 법률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에도 이 시설들을 규제 및 감독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전문가들은 동물원법이 동물원에 대한 정의부터 잘못 내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놀이공원에 전시된 토끼. 지난달 새끼 여섯마리를 출산했지만 관리가 안 돼 한 마리는 죽고 다섯 마리는 전북대학교 수의학과에 보내졌다. © News1
전북 김제에 위치한 놀이공원에 전시된 토끼. 지난달 새끼 여섯마리를 출산했지만 관리가 안 돼 한 마리는 죽고 다섯 마리는 전북대학교 수의학과에 보내졌다. © News1

동물원법 2조에 따르면 동물원은 '야생동물 등을 보전·증식하거나 그 생태·습성을 조사·연구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전시·교육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보호 받아야 할 전시 동물을 야생동물로 한정해 사실상 소규모 동물 전시 시설이나 동물 체험 시설 등은 법의 테두리에 벗어나는 셈이다.

전채은 대표는 "현재 시행령을 만들고 있는 환경부에서도 서울동물원처럼 큰 곳만 동물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용어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야생동물은 물론이고 가축으로 분류되는 동물, 전시나 오락에 이용되는 동물을 보유하면 모두 동물원으로 정의할 수 있도록 동물원법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전 대표는 동물 전시 시설의 난립을 막기 위해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돈을 받든 받지 않든 간에 상업시설이라면 허가를 통해 동물을 전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각 동물의 생태에 걸맞은 시설을 갖추지 못하면 허가를 내주지 않아야 하고 동물 관리에 문제가 있으면 벌금이나 영업정지 등 벌칙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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