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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상도 극사실주의로 복원한 1936년작 연극 '산허구리'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6번째 작품 '고증과 감동' 다 붙잡다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6-10-07 09:02 송고
연극 '산허구리' 전막시연 장면 © News1
연극 '산허구리' 전막시연 장면 © News1

20세기 초반의 생활상을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은 촬영기술의 한계로 화질이 나쁘지만 1930년대 어촌의 비극을 다룬 연극 '산허구리'는 다르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개된 이 작품은 고해상도 화질로 촬영된 다큐 영상처럼 1930년대 어촌의 생활상과 비극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산허구리' 전막 시연에선 장남과 큰 사위를 바다에 잃은 노부부를 중심으로 피폐한 삶을 이어가는 어촌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특히, 1930년대 어촌 초가집을 생생하게 재연한 무대는 이번 공연의 백미다.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손질되지 않은 초가집으로 형상화됐다.
이번 공연은 해방 전후의 격변 속에서 빛나던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이 쓴 첫 번째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7일부터 3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른다.

막이 오르면 노부부의 둘째 딸 복실(정혜선)이 개울물을 떠서 소금을 뿌린 손가락으로 이를 닦는 장면이다. 복실의 손가락이 어금니를 닦아내며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극장을 채운다. 이어 조개칼로 굴살을 파헤는 장면과 아궁이에 장작을 때우는 장면 등도 이어진다.

공연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상어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노어부는 이후 술로 세월을 보낸다. 이미 첫째 아들과 큰 사위를 바다에 잃은 노어부의 처는 둘째아들 복조가 탄 배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실성한 상태로 애타게 기다린다. 남편을 잃고 도적질로 연명하는 큰 딸 분 어미, 둘째 딸 복실, 셋째 아들 석이는 그런 어머니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가장 역할을 했던 복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지만 절망적인 소식이 들려올 뿐이다.
연극 '산허구리'는 한 가족이 겪는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지만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셋째 아들 석이는 모든 비극이 한꺼번에 몰려온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절규하며 새 희망을 찾는다. "왜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한다던? 왜 그런지를 난 생각해볼 테야. 긴긴밤 개에서 조개를 잡으며, 긴긴낮 신작로 오가는 길에서, 생각해볼 테야."

이 작품은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6번째 작품이다.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은 평론가인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2014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하는 기획 프로그램이다. 한국 근현대 창작희곡을 원작에 충실하게 공연해 근대를 조명하고 동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는 작업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혈맥' '이영녀' 등 소외됐던 작품들의 가치가 다시 인정받았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함세덕은 우리 연극사에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지만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이번 공연이 서정적 사실주의와 어촌문학이란 의미를 품고 있는 '산허구리'를 통해 함세덕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산허구리는 함세덕 작가가 21살 되던 1936년에 '조선문학'을 통해 발표한 첫 작품이다. 어린 시절을 어촌에서 보낸 함세덕은 어촌이야말로 자연의 서정성과 생존의 절박함이 뚜렷이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을 한국 어촌을 배경으로 번안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함세덕은 한국 극작가 중 탁월한 극작술을 지닌 작가를 뽑는다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대표작 '동승'은 산골짜기 작은 절을 배경으로 속세로 돌아가고 싶은 동자승의 내면을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산허구리를 연출한 고선웅은 "함세덕이 쓴 원작 희곡에 충실하게 연출했다"며 "물질적 풍요 속에서 결핍에 시달리는 2016년의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10월 7~31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호장민호극장. 입장료 3만원. 문의 1644-2003.

산허구리 노어부의 처 역을 맡은 김용선(왼쪽)과 복실 역의 정혜선 © News1
산허구리 노어부의 처 역을 맡은 김용선(왼쪽)과 복실 역의 정혜선 © News1


산허구리 전막시연 장면 © News1
산허구리 전막시연 장면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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