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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량 10년새 27배 급증…택배기사 산재에 운다

재해율 全산업 대비 3배 "운송단가 하락·특고형태 고용" 원인

(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2016-09-12 11:25 송고 | 2016-09-12 16:37 최종수정
 
 
 
택배기사로 일한지 5개월째인 김동은(35·가명)씨는 이른 아침에 택배 분류 작업을 하다가 목장갑을 낀 손이 컨베이어 벨트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4주 동안 깁스를 해야만 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택배 배달 중에 흐르던 땀이 물건에 떨어져 고객으로부터 더럽다는 말도 듣고, 5층 계단을 걸어서 무거운 생수 박스를 배달하다가 반품했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어도 꾹 참았지만 몸이 다쳐 수입도 끊기게 되니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그의 동료는 배달 중에 계단에서 넘어져 척추를 크게 다치기도 했고, 2년 전에는 한 택배기사가 차량운행 중 교통사고로 목숨까지 잃었다고 하니 자신이 당한 사고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택배 물동량은 급증 운송단가는 하락…재해상승 요인 지목

바야흐로 택배 근로자들의 수난시대다. 오죽하면 어느 한 방송에서 하루도 못 버틸 것 같은 '극한직업 톱5'를 소개하는데 택배 상·하차 작업을 1위로 꼽았을까.
살인적이라 불릴 만큼 노동강도가 센 택배업무.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고객과의 잦은 마찰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도 서럽지만 택배근로자들은 사고를 당하면 몸과 마음이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택배 물동량은 2006년 6580만개에서 매년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18억개로 늘었다. 그러나 택배 운송 평균 단가는 2003년 3280원에서 2014년 2449원으로 줄었다. 물동량은 증가하는데 단가는 낮아져 업무상 재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택배근로자는 직접 고용이 된 소셜커머스업체 쿠팡의 '쿠팡맨'처럼 정규직들도 있지만 대부분 운송사 하청업체나 대리점과 계약하는 1인 개별사업자로 근로자 대접을 못 받는 특수고용근로자(특고) 신분이다.

택배근로자는 하루 200여개의 물량을 소화하는데 3분당 1개를 배송한다고 가정하면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물건 하나를 배달하면 약 700원 정도를 손에 쥐지만 기름값 등을 제외하면 실 수령액은 월 200~240만원에 그친다.

이렇듯 너무 낮은 운송수수료에 빠르게 많이 배달해야 수익을 남기는 택배 종사자들의 기본적인 수입구조와 1인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고용구조가 재해 사고를 키우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12일 안전보건공단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택배업의 재해율은 국내 산업 전체 평균보다 약 3배, 근로자 1만명당 산재사망비율을 나타내는 사고사망만인율은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업의 경우 사고 유형은 배송시간에 쫓기며 운전하다가 발생하는 교통사고, 물건을 나르다가 계단이나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는 사고, 컨베이어 벨트에 손이 끼이는 사고 등이 대부분이다. 질병 재해로는 장시간 과중한 업무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많다.

그러나 택배 종사자들은 산재보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정식 근로자가 아닌 '특고' 신분이어서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택배 등 물류산업이 5대 사고 사망재해 다발업종에 속하지만 이 업계 종사자들은 여전히 안전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택배업, 퀵서비스업 종사자 약 4만명 중에 산재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7868명(19.6%)에 불과하다. 가입하더라도 100% 사업주가 부담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고 직종'은 근로자가 절반을 부담해야 해서 가입률이 낮다.

서울과학기술대 손병석 박사는 "사용자 입장에서 직접 고용에 따른 노무관리 비용 등 전체적으로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택배배달원을 특고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며 "우선 산재보험 가입 유도 등을 통한 제도적 보호방안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재해 원인규명부터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까지 업계 관심

각종 사고는 하청에 재하청, 낮은 운송수수료 등 불공정한 업계 구조도 문제지만 사고 유형 연구나 역학조사 등 근본적인 원인 규명 자체가 열악해 사고 발생을 줄이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산업재해 예방 전문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이 기본적인 재해 유형 분석부터 근로자·기업 특성과 재해유형 간 상관관계 분석까지 현장에 적합한 예방대책 수립을 위해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해 업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 사고 재해가 급증한 사업장에 대한 특별관리를 실시하는가 하면 취약계층인 50인미만 소규모 택배업 사업장에 대해선 안전보건교육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또 위험성평가 컨설팅과 기초안전 기술지원도 병행해 눈길을 끈다.

택배를 분류하는 작업부터 운반·배달까지 모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해 예방 수칙을 담은 택배기사 안전 가이드북을 제작해 모든 사업장에 배포하고, 업계와의 간담회나 안전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특히 공단은 CJ대한통운, 현대로지스틱스, 한진, 로젠, 우체국(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택배물량의 81.8%를 점유하는 상위 5개 택배업체와 네트워크 활용을 통한 재해예방활동도 추진한다.

아울러 택배 종사자 보호를 위해 국토교통부의 화물운송서비스(택배) 사업자 대상의 '평가업무지침' 개정안에 종전에 없던 '택배근로자 재해예방 관련 노력' 항목을 평가지표에 넣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근로자 안전을 제도적으로 확보해 나갈 방침이다.

박현근 안전보건공단 서비스안전실장은 "택배산업이 팽창하면서 종사자 연령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해 언제 어디서든 재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산재 예방이 우리 공단의 역할인 만큼 택배업 종사자 안전을 위한 여러 대책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택배업계와 시민사회가 근로자 안전문화 정착을 도외시한다면 정책적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추석에 동은씨같은 택배근로자들이 평소 두배 넘는 물건들을 나르고 있는데 그들에게 힘이 되는 말 한 마디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je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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