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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대국민 사과?…국민 향한 사과 메시지는 단 한줄

양승태 대법원장, 부장판사 구속 관련 대국민사과
'사죄'보다는 법관들에 대한 당부에 많은 분량 할당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6-09-07 06:00 송고 | 2016-09-07 10:59 최종수정
양승태 대법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2016.9.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6일 오전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1억 7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현직 부장판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당초 양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양 대법원장의 발언은 국민에 대한 사죄보다는 법관들에 대한 당부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양 대법원장의 메시지 전달 형식 역시 대국민 사과가 아닌 전국 법원장회의의 모두발언 형식을 택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는 책임회피형 발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전체 44문장 가운데 대국민 사과 단 한 문장…“대국민 사과로 볼 수 없어"

양 대법원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과 법관들게 드리는 말씀’ 전문은 총 44개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국민에 대한 사과의 메시지는 맨 마지막 한 줄에 불과하다. 또 총 815개 낱말을 사용했지만 ‘사과’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은 단 3번뿐이다.
이 때문에 양 대법원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국민과 법관들께 드리는 말씀’은 대국민 사과 메시지가 아니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기호 전 의원은 “언론에 공개된 양 대법원장 모두 발언 전문을 읽어보니 이를 대국민 사과문이라고 볼 수 없고, 법원장 회의에 참석한 법원장과 일선법관들을 향한 메시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 전 의원은 “법원장 회의 모두 발언을 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이 한문장 추가해 놓고 대국민 사과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명백히 대국민 사과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사과가 진정성이 있는지 따져볼 여지조차 없는 정도”라고 꼬집었다.

또 서 전 의원은 “검사가 뇌물수수로 구속되는 것과 판사가 직무 관련성이 의심되는 뇌물을 받아서 구속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검사가 뇌물을 받고 불공정 수사를 하면 판사로부터 시정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판사마저 부정부패에 연루돼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수천 부장판사가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전 대표로부터 1억 70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되자 대법원은 발 빠르게 전국 법원장회의를 소집했다.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 구속 이후 며칠 동안 계속해서 ‘대법원장 대국민사과’라는 군불을 뗐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의 법원장 회의 모두 발언의 실체는 회의에 소집된 법원장과 법관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에 불과했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평가다.

이러한 비판은 법원 내부에서도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일선지법의 A 부장판사는 “언론에 보도되면 국민들이 대국민 메시지나 사과문 전문은 잘 안 읽는 것을 노린 것 같다”며 “사법부 일개 구성원에 불과한 나조차 국민 앞에 송구한데 구속된 그분의 개인적 일탈로 축소하는 반성 없는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밝혔다.  

A 부장판사는 “이번 문제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확실한 대비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외려 대법원이 일선 법관들을 더 강하게 통제하는 기회로 삼을까 걱정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법원장의 ‘무늬만 사과’에 소장 판사들의 비판은 더 가열했다. 재경지법의 B 판사는 “사흘 전 나흘 전부터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법원장 회의를 소집한다고 알린 상태에서 법원장과 법관들에게 청렴과 윤리의식 강화 주문만 거듭한 것은 ‘언론 플레이’라는 비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결국 권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여도 국민들이 속을 것으로 생각한 것밖에 안된다”고 덧붙였다.

B 판사는 “법원장과 일선 법관들에게 청렴성과 윤리의시간 강조한다고 해서 이미 바닥에 떨어진 국민들의 재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는다”면서 “김 부장판사에게 재판을 받고 패소했던 국민들이 내 사건도 뇌물을 받고 판결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텐데 그 부분에 대한 사과조차 없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 법원장 회의 결과…예상대로 실효성은 의문 · 일선 법관 옥죄기

이날 열린 법원장 회의결과는 저녁 늦게야 공개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장 회의가 예상보다 장시간 걸렸다”며 “법원장들이 현재 상황의 엄중성, 국민의 신뢰 문제, 헌법상 법관의 지위, 일선 법원의 침체된 분위기를 고려하며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격론이 오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법원장 회의 결과 마련된 현직 부장판사 뇌물 혐의 구속이라는 사태에 대해 10가지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 10가지 대책은 △상시적·지속적 예방활동 강화 △법관 징계절차에서의 충분한 자료 확보 △위법 부정한 재산 증식 드러날 시 연임 제외 △비위법관 공무원 연금 감액제 도입 △징계부가금 부과 △비위법관 재판 업무 배제 △직무관련성 여부 관계없이 징계절차 실시 △사생활 영역 대인관계에 대한 윤리행동 기준 마련 △법관윤리 교육 강화 △법조윤리 신고센터 신설 검토 등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국 법원장 회의를 통해 내어 놓은 대책에 대해 “너무 당연한 얘기를 대책이라고 내놓았고 그것도 아닌 경우는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입장이다. 일부 법관들은 “연이은 사법비리를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을 옥죄는 기회로 아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마련한 대책 가운데 비위법관 연금 감액, 징계부과금 부과는 이미 일반 행정공무원들에게는 적용되고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법원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법관 신분보장 조항을 이유로 재판의 공정성과 별개로 다른 공무원과 법관을 달리 취급해 특별대우를 하고 있었다. 비위법관 재판업무 배제 및 위법 부정한 재산증식이 드러날 경우 연임 제외 역시 너무 당연한 얘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밖에 사생활 영역 대인관계에서의 윤리행동 기준 제시 및 법조윤리 신고센터 설치는 자칫 남용돼 대법원의 일선 법관들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장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에게 한줄 사과를 한 대법원장의 모습과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내놓은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근본적 문제해결 방안이 될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지역 법학전문대학의 한 교수는 “대법원장의 사과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형식적 사과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수준”이라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법복 귀족’의 모습이 여지 없이 드러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 사태에 비춰 봐도 법관 개개인의 윤리의식과 청렴의식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법복귀족화’ ‘법복 엘리트화’한 사법부를 국민의 사법부로 만드는 작업이 없는 한 사법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사법부가 법원과 재판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둔 법과 제도를 자신들 이익을 위해 악용해 왔다”며 “법원이 법의 형식논리에 젖어 국민들이 사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사법비리에 대한 대책 마련은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부터 걷어내 판사들이 대법원장이 아닌 국민만 바라보는 환경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이라며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만들 수 있도록 개헌 시 헌법조항부터 손보고 법관 독립성과 재판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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