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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특전사 '전기고문'에 고작 벌금 200만원 선고… 왜?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6-09-04 06:00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군용 전화기를 이용해 후임을 10여 차례 전기 고문한 군인들에게 벌금형이 선고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특수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이 지난 2월 군형법상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당시 김모 상병과 박모 상병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과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당시 상병 계급이었던 김씨는 지난해 4월 20일쯤 소속부대 내 교환대 PMC실에서 A씨에게 전화기 케이블의 끝부분을 손으로 잡게 하고 전화기에 있는 자석의 스위치를 눌러 전류를 흘려 보내는 방법으로 전기 고문한 혐의를 받았다.

A씨에 대한 김씨의 전기 고문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김씨는 A씨가 몸에 전류가 흘러 부르르 떨면서 잡고 있던 케이블을 놓치자 “엄살 피우지 마라”는 말을 하며 두 차례 더 전기 고문했다.

김씨의 A씨에 대한 가혹행위는 점점 수위를 높여갔다. 김씨는 A씨를 처음으로 전기 고문했던 바로 다음날인 2015년 4월 21 상용교환기에 있는 점검용 통신선의 집게부분을 손으로 잡게 하고 다른 분대원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게 해 A씨에 대한 가혹행위를 했다.
김씨는 A씨에게 문제를 내고 맞히지 못할 경우 벌로 ‘전기고문’을 하기도 했다. 김씨는 2015년 6월 A씨에게 “주특기 노트를 가져와라, 너는 틀릴 때마다 한 대씩이다”라며 5문제를 내고 A씨가 3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점검용 통신선 집게부분을 손으로 잡게 하고 전화를 걸어 다시 A씨를 전기 고문했다.

박씨 역시 2015년 4월 20일 A씨에게 주특기를 가르쳐 주는 과정에서 전화기로 인한 전기피해를 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A씨의 몸에 전류를 흘리는 가혹행위를 했다.

A씨는 선임병들로부터 계속해서 ‘전기고문’을 받았지만 상급자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선임병들에게 질책을 받고 유리창을 부수는 행동을 한 A씨를 유심히 본 지휘관이 면담을 진행하면서 김씨와 박씨의 가혹행위는 수면위로 드러나게 됐다.

'전기고문' 사실이 밝혀지자 김씨와 박씨는 헌병대로 넘겨져 재판에 회부됐다. A씨는 지난 6월 현역복무 부적합 심사를 받고 전역했다. 가혹행위에 따른 A씨의 피해가 심각했지만 군사법원은 김씨와 박씨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과 7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영내 가혹행위는 군대내 상명하복의 계급체제로 인해 후임인 피해자들의 반항이나 저항이 사실상 제한될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접촉할 기회가 많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크다"며 "군무이탈 또는 군대 자살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김씨와 박씨가 모두 초범이고,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며 재발방지와 부대 내의 비정상적 관행의 쇄신에 힘쓸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이 유리한 양형사유"라며 벌금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 군 형법상 가혹행위 처벌 수위 자체가 약하게 정해져 있어 …

군사법원이 밝힌 양형이유를 통해 김씨와 박씨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군관계자는 "사건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 일률적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초범이고 죄질이 나쁘지 않은 경우 의무복무를 위해 입대한 20대 초반 청년들이 군생활의 잘못된 관행에 따라 저지른 잘못으로 전과자 낙인을 찍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형사정책상의 목적도 '응보'와 '낙인'이 아닌 교정·교화·갱생이기는 하다. 

하지만 군 내 가혹행위에 따른 피해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고, 가혹행위를 겪은 피해자가 겪게 되는 정신적 후유증 등을 고려하면 형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군사법원이 밝힌 감형 사유 중 '초범'인 점과 '반성' 하고 있다는 점은 감형 사유로 납득할만하다. 하지만 "부대 내의 비정상적 관행의 쇄신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것을 다시 한번 감형 사유로 언급하고 있는 점은 일반인들의 법감정은 물론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때문에 군인권운동가들은 "군이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지 않는 이상 가혹행위 자체를 사실상 범죄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군형법 자체가 '가혹행위'를 약하게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군형법 62조 1항은 직권을 남용해 가혹행위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고, 같은 조 2항은 ‘위력’을 행사해 가혹행위를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 군형법 64조 1항은 "상관을 면전에서 모욕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같은 조 3항은 '사실'을 적시해 상관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고, 같은 조 4항은 거짓으로 상관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가혹행위는 벌금형으로도 처벌할 수 있지만, 상관을 모욕하거나 명예훼손 하는 경우 죄가 인정돼 처벌 받는 경우 가장 낮은 형을 선고 받아도 ‘금고형’을 선고받게 되는 구조다.

금고형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해 교도소에 수감하는 것은 징역형과 비슷하지만, 징역형과 달리 교도소 수감 중 노역을 하지 않는 점이 징역형과 다르다. 군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상관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만큼이나 하급자에 대한 신체적 가혹행위 역시 군기강 문란행위이기 때문이다. 

1962년 처음 제정된 군형법은 지금까지 20여 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1962년 군형법 제정당시부터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이 존재했다.

최초 법제정 당시에는 직권을 남용해 가혹행위를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었지만, 1963년 12월 16일 개정을 통해 가혹행위에 대한 법정형 상한을 5년으로 낮췄다.

현행 가혹행위 처벌 규정은 2009년 11월 2일 개정된 개정안이다. 현행 규정은 2항을 신설해 직권 남용 뿐만 아니라 위력을 행사해 가혹행위나 학대를 한 경우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하지만 '위력'을 행사해 가혹행위나 학대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벌금형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가혹행위 가운데 가벼운 것도 있기 때문에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군사법원이 판결을 통해 밝힌 것과 같이 가혹행위는 군무이탈 또는 군대 자살사고 등의 원인이 된다. 또 최근 군내 가혹행위가 점차 지능적이고 흉포해지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군이 가혹행위 근절하려면 부대 내 가혹행위를 억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형평에 맞게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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