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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배, 노벨상을 향한 꿈… "하늘 위 하늘 볼 기초과학 키워야"

작고한 아버지 떠올리며 사회환원 실현 의지 밝혀
"3000억은 시작액…재단 잘 되면 1조 지원할 것"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2016-09-01 18:35 송고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 과학재단’ 설립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 News1

"시작은 3000억이지만 재단 사업을 잘 해서 1조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재단이 50년, 100년 오래 운영되고 성과를 거두면 계속 사재를 넣을 생각입니다. 10년, 20년 후에는 제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인류의 삶 향상' 자신만의 꿈·소명 실현 위한 첫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름으로는 아버지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이 이뤄 놓은 토대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이름을 건 재단을 설립하고 '인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꿈을 담았다.

서 회장은 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 과학재단' 출범 기자간담회를 열고 3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현재 보유 중인 아모레퍼시픽그룹 우선주를 현금으로 전환해 초기 재단운영 자금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서 회장은 특히 3000억원을 출연하는 것으로 역할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재단 운영 상황에 따라 1조원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 회장은 "재단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1조원 이상은 해야지 않을까 싶다"면서 "재단이 50년, 100년 운영되고 또 성과를 거두면서 제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노벨상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수상자들을 배출할 텐데 영광의 순간에 같은 자리에 서 있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동안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서성한 선대회장의 사재를 기반으로 설립된 '아모레퍼시픽재단'(학술·교육·문화 사업)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저소득층 복지) '한국유방건강재단' 등을 운영해왔다.

이와 비교했을 때 서경배 과학재단은 서 회장의 개인적 소명을 달성하기 위한 차원에 설립됐고 아모레퍼시픽그룹 운영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기존 재단들과 구분된다.

서 회장도 이날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실용 기술'이 아닌 '기초 과학'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재단으로 아모레퍼시픽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순수 과학은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서경배 과학재단은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인 만큼 아모레퍼시픽 재단들과 자연스럽게 구분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실용기술' 아닌 '순수 기초과학' 지원… 현실은 열악

그러나 서 회장이 이같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활동이 전무했던 탓에 국내 인재들이 빠른 속도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서다.

2015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두뇌유출 지수는 3.98로 하위권이었다.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인재유출이 심각함을 의미한다.

2013년 기준 조사 대상 60개국 중 두뇌 유출이 가장 적은 국가는 노르웨이(1위·8.27), 스위스(7.56), 핀란드(6.83), 미국(6.82)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44위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호원경 서울의대교수는 "연구 책임자 일인당 평균 연구비가 4.4억원인 나라에서 전임교수 일인당 연구비는 7000만원에 불과하고 연구비가 없는 교수가 절반에 이른다"며 "연구비 투자 비중이 최하위인 현실은 인력과 투자의 심각한 불일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초연구 육성을 위해 기초연구사업 예산으로 약 1조1000억원을 배정해두고 있지만 그마저도 실용 기술 개발과 응용 연구 등에 쓰이는 실정이다. 기초연구 사업에서 생명과학, 화학, 지구과학, 물리 사업 비중은 3분의1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해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며 "국가가 나서서 연구자들을 챙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민간 기업에서 투자하겠다고 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서 회장도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서 회장은 지난 7월 창립총회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 저변 확대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활동이 부족해 안타까웠다"며 재단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 과학재단’ 설립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 News1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 과학재단’ 설립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 News1


그렇다면 서 회장은 사재 출연 개인 재단을 통해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언제 세웠을까.

서 회장은 이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습득한 가치관과 경영철학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과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소명을 가지게 됐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실현하기 위해 재단설립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서 회장은 "아버님이 과학과 기술에 관심이 늘 있어 자랄 때 '과학의 발전 없이는 사회의 발전은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개인적으로도 만화영화 '아톰'을 보는 게 어린시절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모레퍼시픽 노동조합이 1991년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회사가 망할뻔도 했지만 아버지가 이듬해 중앙연구소를 세우면서 재기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들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성환 선대 회장이 설립한 '태평양중앙연구소'는 노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유도체 '레티놀 아시드'를 화장품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경영난을 해결했다. 서 회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과학의 힘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과학의 중요성을 통감했다고 했다.

서 회장은 벤치마킹한 사례가 있느냐는 물음에 "미국과 이스라엘 등 해외를 돌아다녀 보니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걷는 연구소가 많았다"며 "대표적으로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유명한 'HHMI(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과 '솔크연구소(Salk Institute)'를 눈여겨 봤다"고 말했다.

◇ "하늘 위에 하늘… 창의적인 젊은 연구자 키워야"

서 회장은 '천외유천(天外有天)'이라는 한자성어를 인용하며 새로운 이론에 밝은 젊은 과학 연구자들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는 달라진 무엇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해 하늘 위의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끝맺었다.

재단 사업 선발 대상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를 개척하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국내외 한국인 연구자다. 각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재단은 특히 우수 연구자에게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펼칠 계획이다.

재단은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3~5명의 연구자를 선발한다. 1차 서류 심사, 2차 연구계획서 심사 및 토론 심사 등으로 진행된다. 재단 운영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로 과학자문단과 심사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연구 과제의 독창성과 파급력, 연구 역량을 중점적으로 심사할 예정이다. 연구 지원 사업의 1차년도 과제는 오는 11월 공고될 예정이다. 2017년 1월부터 2월까지 접수한 후 1차 심사(3~4월)와 2차 심사(5월)을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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