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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치사 전면 부인하는 옥시… "법체계 사각지대 악용"

법제연구원, 화학제품 사전허가제 도입 촉구
"현행법으론 제2 옥시사태 묵인하는 것"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2016-08-04 06:20 송고 | 2016-08-04 09:28 최종수정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 © News1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 전 대표 © News1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사건 책임자들에 '살인죄'를 적용해달라 요구했지만 검찰은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만 기소했다.

그런데 신 전 대표는 이 혐의마저도 전면 부인했다. 신 전 대표 측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부정하며 과학적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을 요구했다.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참사를 일으키고도 형사적 면피를 시도할 수 있는 건 옥시가 우리나라 법체계에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악용하고 있어서다.

◇ 신현우 옥시 전 대표 과실치사 혐의 전면 부인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옥시 사건 관련 주관부처들 또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검찰이 이들에 대한 직무유기 혐의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 부분 역시 위법성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제2 옥시 사태를 방지하고 혹시나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을 때 책임자를 엄히 처벌하기 위해선 살생물제가 포함된 화학제품을 관리하는 부처를 일원화하는 등의 법체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3일 현행 법체계로는 국민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화학제품이 출시돼도 적용할 법률이 없거나 모호해 관리 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법체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김은정 부연구위원은 "현행법으로는 옥시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출시 전 제품들이 자율규제 절차만을 거치게 된다"며 "이것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법제연구원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의 한계부터 짚었다.

법제연구원의 분석을 요약하면 유해화학물질로 지정돼 있지 않은 살생물제가 포함된 제품 또는 인체에 직접 닿지 않거나 감염을 예방하는 용도의 제품이 아닐 땐 각각 화평법과 약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기업은 아무런 제약 없이 새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

화평법이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톤 이상의 등록대상기존화학물질의 경우 위해성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위해우려 제품으로는 15종만 정해 놓아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는 것이다.

◇ '살균제 사건' 맞춤형 규제… '사후약방문' 꼬집어 

법제연구원은 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불거지자 약사법상 의약외품의 고시 품목에 '미생물 번식과 물 때 발생 예방 목적으로 가습기 내 물에 첨가해 사용하는 제재'를 포함한 점을 두고 '사후약방문'이라고 꼬집었다.

수많은 살균·항균 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옥시의 경우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HG) 등을 카펫 및 바닥 세척제 물질로 허가받은 후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를 변경해 출시하는 과정에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아 이번 참사를 일으켰다.

© News1 황기선 기자

법제연구원은 EU와 미국, 일본의 사례를 통해 제2의 옥시 사태를 재발하기 위해선 미흡한 법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따르면 EU는 소독제·보존제·살균제(살생물제) 물질과 제품 모두 사전 유해성 평가를 포함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만 시장에 유통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도 '연방 살충·살균제 등 관리법'을 통해 제품에 살생물제 성분이 포함돼 있으면 농약과 같은 수준으로 관리해 반드시 사전 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시장에 유통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일본 역시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정용품에 대해 유해물질 함유량·용출량 등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출시되는 제품이 기준에 적합한지 감시하기 위해 광역자치단체(도·부·현)가 시장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상시 검사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김은정 연구위원은 "화학물질과 화학제품을 다루는 모든 기업에 엄격한 규제를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현실을 고려할 때 현행 법률 개정 정도로는 제2 사태를 막을 수 없으며 이것은 제2 참사를 묵인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별 법제를 통한 사전 허가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조속히 검토돼야 한다"면서 "살생물제 화학제품은 농약과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살생물제 원료·제품 통합관리 시스템 필요

사실 국책연구기관에서 내놓은 살생물제의 위해성에 대한 경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도 '국내 살생물제 관리법 제정 방안(2014년)' 보고서를 통해 "살생물제는 인체 접촉 빈도가 높은데도 농약 또는 의약품과 비교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위해우려 화학제품 15종에 해당하지 않는 제품은 식약처와 산업부가 제각각 관리하고 있어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또 EU와 미국은 살생물제가 인체에 미치는 '누적효과'와 살생물질이 미생물만 죽이는 적정한 농도가 맞는지를 따지는 '효능 평가'를 실시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개념조차 생소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판기 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옥시 사태는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대표적 사건"이라며 "옥시처럼 유해물질을 카펫 세척용으로 허가받아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선 화학물질에 대한 통합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원료에 대한 사전허가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품별로 관리하는 사후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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