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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수 남편, 두 차례 영장 기각후 살인…안일한 법원

'죽여줄게' 문자까지…부인 살해후 자살로 마감
"가정폭력 특수성 고려 않아…재범가능성도 무시"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6-07-21 05:31 송고 | 2016-07-21 16:51 최종수정
가정폭력을 일삼은 남편의 구속영장을 두번 기각한 법원에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 News1

가정폭력을 일삼은 남편이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부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법원이 가족폭력범죄에 지나치게 안일한 심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법원은 20일 "결과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점에 대해 법원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각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는 그 시점에서 제출된 자료 등을 바탕으로 구속의 사유인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한 것인 점을 이해해달라"고 해명했지만 법원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3월과 5월 가정폭력 혐의로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송모씨(62)의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지만 "부인이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고 서로 관계 회복을 원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이날 "본건에서는 피해자가 피의자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점이 많이 참작됐다"며 기각이유를 다시 강조했다. 

하지만 상황은 법원의 예상과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 
경찰은 송씨의 폭행이 중하다고 판단해 이달 들어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지난 18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사이 송씨는 연락이 두절됐고, 이상하다 느낀 송씨의 남동생이 자택을 방문했으나 송씨와 부인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송씨가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A씨에게 '죽여줄게'라는 위협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시신 부검 결과 두 사람에게 약물이 발견된 점 등을 미뤄 송씨가 부인을 약물로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이처럼 두 차례나 구속이 기각된 남편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유력하자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부분에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정폭력으로 경찰이 구속수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사건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라며 "그만큼 폭행이 경미하지 않았을 것이고 법원이 사건의 중대함을 면밀히 봤어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가정폭력의 특수성에 비추어 피해자에게 단순히 가해자 처벌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폭행 이유를 자신에게 돌리는 잘못된 자책감이 자리잡을 수 있고 자녀, 친척 등 여러 인간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여러 배경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했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송씨가 다시 폭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재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송씨는 A씨 이전에 함께 살던 전 부인을 폭행해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전 대변인인 강연재 변호사는 "부부의 의사에 치중했다 하더라도 남편의 폭행 정도나 과거 행동에 비춰 재발 가능성을 판단했어야 했다"며 "가정폭력 특성상 피해자들이 앞장서서 자기 방어나 엄벌을 요구하지 않는 만큼 법원이 1차적으로 폭행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해야 하고, 그 이후에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게 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남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라는 부인의 의사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 역시 "다시는 폭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부인이 자신에게 피해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 증후군'이 일부 있고, 폭행 정도가 상당하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재차 신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을 판단하는 법원의 기준이 까다롭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 변호사는 "법원은 기본적으로 가정을 유지하고 회복하려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구속을 까다롭게 따지진 않는 경향이 있다"며 "가정폭력이 점점 사회적으로 심각해지는 만큼 구속영장이나 격리 여부에 대한 법원 내부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k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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