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기자의 눈]사건 이튿날에 범행동기 발표한 경찰…이래도 되나

(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 | 2016-06-30 15:34 송고 | 2016-06-30 16:14 최종수정
© News1
"현재로서는 '정신이상'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서울 강남 복판에서 벌어진 '묻지마' 흉기난동의 피의자를 조사한 경찰이 사건발생 하루만에 기자단에게 범행 동기를 공개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 27일 오후 9시25분쯤 서울 지하철 교대역 8번출구 인근 도로에서 최모씨(24)가 준비한 흉기를 휘둘러 시민 4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현장에서 붙잡혔다.

경찰은 밤시간대에 붙잡힌 피의자를 조사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인 이튿날 오후 급작스럽게 기자단에게 최씨와 최씨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조사 내용을 공개했다.

최씨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중으로, 아직 최씨에 대한 정확한 정신감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최씨의 진술 태도와 어머니의 증언만으로 '정신이상'을 범행 동기로 확정짓다시피 발표한 셈이다.

'묻지마식' 강력사건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데, 경찰은 중간 수사결과를 허겁지겁 발표하고는 뒤늦게 다른 범행동기를 확인해 잘못된 발표를 급하게 수습하는 일이 최근 눈에 띄게 발생하면서 도대체 경찰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궁금증이 생기고 있다.
지난달 17일 서초구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은 피의자를 사건 당일 검거하고 본인 진술 가운데 "사회생활에서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대목을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 여과없이 기재했다가 '여성혐오 범죄'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셈이 됐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부랴부랴 피의자의 정신병력을 추가로 공개하고 프로파일러까지 투입하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행이라고 범행 동기를 뒤집었다. 이후 검찰은 해당 피의자의 정신상태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 감정유치를 의뢰했다.

피의자를 송치할 당시 브리핑 자리에서 수사를 담당한 한 경찰은 기자들이 논란에 대해 캐묻자 "저희들이 여성혐오라는 발언을 해본 적이 없다"며 "어디서 처음 그런 말이 나왔는지 기자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며 도리어 책임의 대상을 돌리기도 했다.

이 사건을 의식한 탓인지 노원구 수락산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경우 경찰이 동기에 대해 '묻지마 살인으로 보지 않는다'며 조심스러워했고, 결국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며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동기에 집중해 재수사한 끝에 "강도 목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특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수사의 중요한 한 축이다. 그런데 이처럼 '정신이상'이나 '강도' 등 범행의 동기를 단순화시켜 서둘러 발표하는 것은 흉악사건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끊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발생부터 피의자 송치까지 경찰 수사의 전 과정을 경주하듯 먼저 확인하고 보도하는 언론 행태가 경찰의 '조급증'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언론과 경찰 상호간에 소통을 통해 "충분한 수사를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문제다.

특히 '강남역 사건' 이후 각 경찰서 형사·수사과장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기자들이 범행 동기 등을 독촉하더라도 '수사중'이라고 말하고 충분히 시간을 갖고 검토해서 발표하라"는 주문까지 나온 바 있다.

이같은 논의가 있은 뒤이지만 '교대역 흉기난동' 사건에서 수사를 담당한 서울 서초서는 일관되게 피의자의 정신이상 가능성이 확실한 것처럼 기자들에게 발표하면서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최근 증가하는 묻지마식 범죄의 경우 예방을 위해서는 발생 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수사분야에서도 한류를 이끈다는 경찰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발생할 또 다른 비슷한 범죄에 대한 사회의 고민을 가로막게 된다는 점에서 경찰의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hm3346@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