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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컵라면 말고 맛있는 걸"…구의역사고 추모 물결

추모 3일째…"기억하겠다" "나와 무관하지 않아" 쪽지 봇물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김이현 인턴기자 | 2016-05-31 16:41 송고 | 2016-05-31 19:17 최종수정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열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원인규명과 대책촉구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이 추모의 공간에 헌화하고 있다.  2016.5.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열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원인규명과 대책촉구 기자회견 후 참석자들이 추모의 공간에 헌화하고 있다.  2016.5.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31일 오후 2시쯤 지난 28일 수리용역업체 직원 사망사고가 일어난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색색의 쪽지들이 널따란 '추모의 벽'을 이뤘다.

이날 구의역 1번과 4번 출구 사이 공간에는 추모객 너댓명이 여유롭게 서서 쪽지를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하얀 스티로폼 게시판이 마련돼 시민들의 추모발길을 맞았다.
하얗게 펼쳐진 게시판에는 연두, 연노랑, 연분홍 포스트잇 300여개가 다닥다닥 붙어 물결을 이뤘다. 벽 윗부분에는 검정 명조체로 '추모의 장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흰 종이가 이곳이 추모현장임을 행인들에게 알렸다.

추모객들이 게시판 위에 남기고 간 글귀에는 가슴을 절절이 울리는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한 시민이 남긴 쪽지에는 '앞으론 컵라면 드시지 말고 맛있는 것 많이 드세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처럼 숨진 김씨의 가방에 덩그라니 담겨 있던 컵라면이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게시판 아래에 위치한 헌화탁자에는 수북이 쌓인 하얀 국화와 함께 미역국밥, 김치참치덮밥 등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편의점 음식들이 놓였다.
이날 구의역을 찾은 추모객들은 3일 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청년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쪽지를 붙이고 나오며 울음을 터뜨린 추모객 나경희씨(58·여)는 "한 부모의 자식이 저렇게 안타깝게 가버리니까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 애아빠도 35살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세상 떠난 청년을 보니 남편 생각 많이 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광진구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정수한씨(30)도 "나와 무관하지 않은 사고다. 젊은 사람이 밥도 못 먹고 위험한 상황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는데,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게 일하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많기 때문"이라며 벽에서 떨어진 포스트잇 한 장을 벽에 다시 붙였다.

강동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춘희씨(67·여)는 "젊은 청년이 근무를 서다 희생됐는데 세상에 뭐라고 다 표현하겠나. 내가 67살인데 이렇게 나이가 많으면 (안타까움이) 덜하겠지만 청년이라 더욱 애석하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남기고 간 쪽지에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라는 말이 적히기도 했다.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스크린도어를 채우고 있다. 2016.5.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스크린도어를 채우고 있다. 2016.5.3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사고 현장인 구의역 9-4 승강장에도 추모공간이 조성됐다. 이곳 추모벽에는 투명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된 200여장의 쪽지들이 널찍하게 정렬돼 스크린도어 총 3칸에 걸쳐 있었다.

이곳에 붙은 쪽지들은 고인에 대한 절절한 추모 글귀보다 남들 못지 않게 열심히 일한 고인을 희생시킨 사회구조를 향한 분노가 더 많이 담겼다.

'돈보다 생명을 돈보다 안전을' '사회와 시스템이 꽃다운 나이의 청년을 앗아갔습니다'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19살 청년이 왜 죽어야 합니까' 등 시민들은 사회 비판과 자신의 소견을 벽 위에 남기고 떠났다. 개중에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유명 정치인들의 포스트잇도 눈에 들어왔다.

오후 2시쯤 오랜 고민 끝에 추모 쪽지를 붙인 대학생 류모씨(27)는 "이번 사고엔 입찰 방법 등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너무 밑바닥에 있다.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려고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사람보다는 돈이 지배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적인 글귀를 담은 피켓도 스크린도어 하단에 5개 정도 붙었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 돈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등 주로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집단적으로 붙이고 간 피켓들이었다. 하얀 전지를 이용한 대자보도 이번 사고와 관련한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곳에는 국화 10여 송이는 물론 하얀 장미, 노란 리본도 추모벽에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하얀 안개꽃, 국화, 드라이플라워 등 꽃다발 4개와 하얀 국화 30송이가 그 아래 가지런히 놓였다.

고등학생 정소현양(18·여)은 "(국화꽃을) 놓고 간다고 죽었던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몸이 아파 조퇴하는 중에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루 빨리 안전한 사회가 되어서 내 또래 친구가 안타깝게 죽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서울메트로 용역업체 직원 김모씨는 지난 28일 오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는 홀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중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졌다. 이 사고는 서울메트로의 관리·감독 부재가 낳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경찰은 용역업체 직원과 서울메트로 관계자 등 소환 조사를 하고 이 과정에서 역무원 등의 과실이 입증되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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