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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통해 신라와 페르시아 직접 교류했다”

[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1. 실크로드로 이어진 페르시아와의 인연

(울산=뉴스1) 이상문 기자 | 2016-04-30 16:51 송고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풀리면서 21세기 골드러시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1~3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다. 이란과 SOC, 건설, 조선, 석유화학,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교역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때부터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이란의 문화와 역사, 종교, 이란인들의 삶을 현지 취재를 통해 파헤친다. 이 취재는 지난 2014년 11월에 20일간, 지난해 12월에 15일간 두 차례 이뤄졌다. [편집자주]

경주국립박물관 제3전시실에는 보물 제635호 계림로 장식보검이 전시돼 있다. 이 보검은 전문가들도 한 눈에 신라의 양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칼집과 자루를 장식한 얇은 금판과 그 위에 새겨진 물결, 나뭇잎, 원 등의 문양은 낯설다. 그리고 칼집에 박힌 세 개의 고급스러운 보석은 이 보검이 서역에서 건너왔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을 하게 한다. 그러나 그 서역이 어느 나라였는지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린 학자는 없었다.
경주국립박물관의 장식보검(완쪽,)과 이란 사막도시 야즈드의 조로아스터 신전 아타슈카다의 핵심 교리 상징물. © News1 이상문 기자.© News1
경주국립박물관의 장식보검(완쪽,)과 이란 사막도시 야즈드의 조로아스터 신전 아타슈카다의 핵심 교리 상징물. © News1 이상문 기자.© News1
◇ 경주박물관에 페르시아 유물 수두룩

지난 2014년 말 경주 박물관을 방문한 이란 테헤란대학교 역사학과 모함마드 바헤르 보수기 교수는 이 보검을 사산왕조 페르시아(A.D. 226~B.C. 651)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했다. 보수기 교수의 주장은 명쾌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이슬람왕조에 패망하기 전까지 이란 사람들은 우리에게 배화교(拜火敎)로 알려져 있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했다.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교리는 세 가지로 ‘좋은 생각’, ‘좋은 행동’, ‘좋은 말’이다. 이 세 가지 핵심적인 가르침을 보석으로 박아 장식했다는 것이다.

보수기 교수는 해상실크로드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2014년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교환교수로 재직했다. 경주박물관을 둘러보던 보수기 교수는 또 하나의 유물에 집중했다. 바로 경주 구정동 방형분에서 출토된 모서리기둥이다. 이 기둥의 양면에는 서역풍의 무인상이 돋을새김 돼 있고 그 옆면에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보수기 교수는 깊은 눈과 높은 콧등의 무인상과 방형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조각된 사자상을 주목했다.
경주박물관 소장 구정동 방형분 출토 모서리기둥. 돋을새김된 무인상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격구채다. © News1 이상문 기자.© News1
경주박물관 소장 구정동 방형분 출토 모서리기둥. 돋을새김된 무인상이 들고 있는 막대기는 격구채다. © News1 이상문 기자.© News1
무인상이 들고 있는 막대기의 정체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막대기를 무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보수기 교수는 그 막대기가 무기가 아닌 폴로(격구)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격구를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사에 “918년(태조 1)에 상주의 적장인 아자개가 투항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 와 그를 맞이한 환영식 연습을 격구장에서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뤄 격구는 삼국시대에 이미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당나라에서 격구가 유입됐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격구의 원조국인 페르시아에서 직수입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주장은 바로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에 페르시아의 왕자 ‘아브틴’이 신라로 추정되는 ‘바실라’로 망명 와서 타이후르 왕과 격구를 즐겼다고 표현한 부분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구정동 방형분 모서리기둥의 사자상(왼쪽)과 이란 남부 페레스폴리스의 사자상. 사자상은 페르시아의 강인한 힘을 상징하며 태양신 숭배사상에서 비롯됐다. © News1 이상문 기자. © News1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구정동 방형분 모서리기둥의 사자상(왼쪽)과 이란 남부 페레스폴리스의 사자상. 사자상은 페르시아의 강인한 힘을 상징하며 태양신 숭배사상에서 비롯됐다. © News1 이상문 기자. © News1
그리고 보수기 교수는 “모서리기둥에 새겨진 사자상은 페르시아의 위대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페르시아 문화권의 태양숭배사상에서 출발했다”며 “신라 문화에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사자상은 틀림없이 페르시아로부터 전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예는 또 있다. 경주박물관 별관인 ‘월지관’의 입구에 놓인 돌에 새겨진 대칭문양이다. 이 돌에는 한 그루의 나무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공작새가 희미하지만 분명히 보인다. 보수기 교수는 이 ‘입수쌍조문(立樹雙鳥紋)’에 대해 “대칭문양은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 유행한 전통 문양이며 동물을 비롯한 대상물을 대칭을 이루도록 배치했지만 이슬람 왕조가 들어서면서 우상숭배를 금지해 사라져버렸다”며 “현재도 이란의 곳곳에서, 심지어 카펫에까지 이 문양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기 교수 “실크로드 통해 신라와 페르시아 직접 교류했다”
보수기 교수는 또 “페르시아의 입수쌍조문이 중국을 통해 신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해양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바로 수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경주 괘릉의 무인상(왼쪽)과 이란 낙쉐로스탐의 무인상. © News1 이상문 기자. © News1
경주 괘릉의 무인상(왼쪽)과 이란 낙쉐로스탐의 무인상. © News1 이상문 기자. © News1
이처럼 보수기 교수는 거의 확정적으로 신라와 페르시아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경주의 괘릉(원성왕릉)의 무인상도 페르시아인이라고 말했다. 그 증거로 이란 남부 시라즈 근교, 페르세폴리스와 가까운 낙쉐로스탐의 무인상을 예로 들었다. 두 무인상의 조각 기법과 옷자락의 표현기법, 들고 있는 칼의 모습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국내 학자들은 괘릉의 무인상을 서역인이라고 입을 모으며 울산 남구에 있는 ‘처용암’에서 비롯된 ‘처용설화’의 주인공 처용과 연관 짓기도 한다. 보수기 교수는 처용암도 방문했다. 그는 처용설화의 주인공인 처용이 동해에서 출현하는 대목을 들으며 흥분했다. 처용이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는 설화의 내용이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의 주인공 아브틴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아브틴은 ‘물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동해를 통해 ‘바실라’로 망명한 아브틴의 출현과 겹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소개된 세밀화. © News1 이상문 기자. © News1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소개된 세밀화. © News1 이상문 기자. © News1
보수기 교수는 “처용설화에서 대왕(헌강왕)은 용왕의 아들이 서울에 오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처용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해 주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도 줘 서울에 정착할 수 있게 했다는 대목은 쿠쉬나메에 전해지는 아브틴의 궤적과 유사하다”며 “이 이야기는 바실라의 타이후르왕이 왕자를 보내 유민들을 이끌고 바다를 통해 바실라로 망명한 아브틴을 영접해 서울로 데려오고 그의 딸 프라랑 공주와 혼인시켜 귀히 여겼다는 1000년 전 페르시아 서사시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21세기 신 실크로드 타고 이란과 교류 활발해지나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는 어떤 방식이었을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역사는 없다. 그러나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서 발견되는 많은 유물들이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것이 분명하다는 보수기 교수의 주장은 ‘직접 교류설’에 무게를 더해준다. 그것이 해상 실크로드였든 육상 실크로드였든 고대 신라는 세계 최강제국 페르시아와 적극적인 교류국가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최소한 1500년 전부터 신라와 교류했던 페르시아가 깨어나고 있다. 이란은 이미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며 이란인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다. 한류문화와 우수한 품질의 전자제품 탓이다. 이제 새로운 장을 준비하는 양국의 관계에 고대사의 깊은 인연은 적지 않은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새로운 실크로드가 열리고 있는 시점에 오랜 문화적 인연을 가진 이란과 새로운 교류가 활발해질지 기대된다.


iou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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