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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정부 책임은 어디로?…검찰은 제조사 수사만

직무유기 등 공소시효 문제…법원 '민사소송'서도 "책임없다" 결론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 2016-04-26 05:10 송고 | 2016-04-26 07:14 최종수정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뉴스1 © News1 변지은 인턴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뉴스1 © News1 변지은 인턴기자


정부 책임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수사에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부 책임자들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은 신현우 전 옥시 레킷벤키저 대표(68) 등 제품 개발·판매에 관여한 옥시 측 핵심 관계자 3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는 등 가습기 제조·판매업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집중되고 있는 옥시는 영국계 다국적 기업이다. 하지만 옥시가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는 우리나라에서만 판매됐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로선) 제품을 제조한 회사에 대한 수사에 우선적으로 방점을 두고 있다"며 옥시 제품 제조·판매 당시 정부 공무원들이 수사선상에 올라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부 담당자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근거 법규가 아직 발견이 안 됐다"며 "법에 관리·감독 의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책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부처는 환경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다.

우선 환경부의 경우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신규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등 유해성 있는 물질을 사용했는데도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를 통과해 논란이 돼 왔다.

최근 검찰은 PHMG, PGH가 피해자 사망의 직접 원인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학조사를 실시했던 질병관리본부 역시 마찬가지 결론을 내렸다.

당시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근거로 이 물질들에 유해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 규정상 유해성 심사를 신청한 회사들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유해성을 판단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옥시의 경우 환경부, 검찰, 민사법정 등에 제출한 유해성 심사보고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환경부는 조작된 보고서를 믿고 유해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 된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던 부처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물때 방지 같은 '청소' 용도로 사용됐기 때문에 '살균제'가 아니어서 의약외품 지정을 피해갔다.

또 산업통상자원부 고시는 가습기 살균제를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으로 분류하도록 하고 있었다.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은 제품을 제조한 업체가 스스로 안전성 여부를 확인해 신고하도록 돼 있다. 정부로서는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의 유해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가습기 살균제가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으로 분류된 이유 역시 '세정제'로 판매됐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들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정부 책임자 수사에 대해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을 대리하기로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 최재홍 변호사는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가습기 살균제의 '용도 변경'에 대한 제약이 없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그렇다 해도 정부가 흡입 독성에 대한 시험도 하지 않고 그냥 허가해준 것 자체에 대해서는 관련 법이 불명확하다 해도 국민 안전권 측면에서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사 책임과는 달리 형사 책임은 (처벌에 관한) 법 조항이 있어야 한다"며 "직무유기죄가 검토될 수 있지만 공소시효의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공소시효는 '5년'으로 매우 짧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용도 변경 등이 1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처벌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살인 방조 등 혐의를 적용하면 공소시효는 늘어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에 살인죄 대신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법원 역시 정부 책임자들의 '민사 책임'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가습기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지난해 1월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화학물질관리법, 의약외품 지정 고시 등에 있는 허점 때문에 '손쓸 방법이 없었다'는 정부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가 (가습기 제조업체를) 관리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가습기 피해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민·형사 책임을 묻는 방안을 계속 추진 중이다.

최 변호사는 "(공소시효 문제가 있다 해도) 형사 책임과 민사 책임은 또 다른 문제"라며 "형사 책임과 민사 책임을 함께 보면 정부에 책임이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무유기 등 부분과 관련된 형사 조치에 대해서도 검토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ability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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