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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박정민, 반드시 대기만성하리니(인터뷰)


				

(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2016-02-14 13:45:00 송고
윤동주 시인은 그의 평생 벗이자 동갑내기 사촌인 독립 운동가 송몽규를 보며 대기만성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1935년 19세였던 송몽규가 먼저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문에 당선됐을 때, 1941년 25세 송몽규가 연전 졸업식에서 당시 교장에게 우등 상장을 받을 때, 1942년 26세 송몽규가 교토제국대학 서양사학과에 합격하고 자신은 차선책을 선택해야 할 때 열등감을 대기만성이라는 말로 다스렸다. 윤동주의 평전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배우 박정민(28)은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에서 송몽규 역을 맡았지만, 외려 윤동주에게서 자신과의 접점을 발견하곤 했다. 영화 '파수꾼'으로 영화계 안팎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으나 점차 앞서가던 동료 강하늘, 한예종 동기 이제훈, 변요한 등을 보며 자신의 가치를 집요하게 홀로 외롭게 증명해내야 하는 시간을 거쳤다. 영화계에서는 일찍이 천부적인 연기력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 샀지만 자신을 두고 "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배우 박정민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오는 17일 개봉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오직 나, 나밖에 모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고백은 '동주' 이후로 박정민에게 찾아온 변화였다. 세상에 관심이 없는 배우였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반성이었다. 결과 보다 과정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송몽규에게서 배웠고 배우로서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자전적 고민은 송몽규를 만나 좋은 배우가 되는 고민으로 치환됐고,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과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하나의 답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통해 송몽규와 함께 박정민도 재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몽규 역의 캐스팅 조건을 두고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고집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감독의 말에서 '동주' 이후 박정민의 가팔라질 상승세가 감지됐지만 배우로서 미리 정해둔, 나름의 신념을 지키는 올곧은 길을 선택하겠다는 청춘은 결코 쉬운 길 같진 않아 보였다. 그 총체적인 노력들은 언젠가 빛날 수 있을까. 대기만성형 배우의 청춘은 '그 언젠가'를 향한 담금질의 과정이다. 

배우 박정민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송몽규 역에 캐스팅된 비화를 공개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언론시사회 당시 '동주'를 처음 본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간담회 당시 눈물을 보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어떤 마음이었나. 
A. '동주'라는 영화를 처음 소개해드리는 자리였다. 물론 정말 열심히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아,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나'라는 마음이 들더라. 완벽하게까지는 불가능했겠지만 실수가 너무 눈에 보이니까 아쉬운 마음이 커서 그랬다. 하늘이와 감독님이 옆에서 눈물 흘리실 때 참았던 게 간담회에서 주체할 수 없이 터져버린 것 같다. 절대 내가 나온 영화를 보고 감동한 게 아니다!

Q. '동주'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준익 감독과 황정민이 함께 있던 자리에서 오간 것을 계기로 강하늘과 함께 출연하게 됐다. 황정민이 비록 박정민과 강하늘을 함께 추천했지만 결정은 이준익 감독이 했을 것이다. 이미 '신촌좀비만화'에서 박정민을 보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하기도 했는데 감독에게 선택받았을 때 느낌이 남달랐을 거다. 
A. 감독님을 처음 만난 날 진짜 믿어지지가 않더라. 설경구나 송강호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하시던 분이 나를 불러주셨다고 하셨을 때 '그래도 우선 만나보고 결정해주시겠지, 오디션을 보시겠지'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진 속 송몽규 선생님처럼 가르마도 탔고 안경도 쓰고 갔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네가 정민이냐. 선생님과 닮았네'라고 해주시더라.

Q. 송몽규 역할의 캐스팅 조건이 연기력은 기본이고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여야 했다고 하더라. 송몽규와 함께 박정민도 재발견됐으면 하는 이준익 감독의 바람이 담겼다.
A. 나 역시도 송몽규 선생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배우였다. 감독님도 잘 모르는 배우가 연기를 해준다면 관객들이 송몽규 선생님을 미처 알지 못했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와닿을 거라고 보신 것 같더라. 우선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첫인상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20대 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배우 박정민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송몽규 역할을 위해 노력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촬영에 들어가기 전 송몽규의 중국 생가를 다녀온 일화는 유명하다. 현장에 직접 찾아가 정취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A. 그 무덤 앞에 섰을 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작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거기까지 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두 분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만 하다 온 것 같다. 정말 송구스러웠다. 

Q. 송몽규는 진취적이면서 뜨거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일제강점기라는 압제된 시대에서 이념과 신념이라는 거창한 이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10대의 나이에 선생과 함께 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대화로 나누기도 한다. 민족주의자가 돼 조국의 독립을 투신하는 그런 송몽규와는 접점이 있을까. 
A. 나는 구름 같은 사람이다. (웃음) 굉장히 정적인 편이다. 물론 하고자 하는 일에서는 뜨거운 면이 있다. 연기처럼 어떤 특정한 것에 꽂히면 그것만 파고들게 되더라. 연애도 그렇게 한다. 감정 표현을 과하게 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런지 연기할 때가 정말 좋다. 연기할 때만큼은 모든 것을 표출할 권리가 있지 않나.

Q. 실존 인물에 접근한다는 건 그 자체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의 일생이 처음으로 영상화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법했다. 
A. 이번에는 캐릭터 접근 자체가 이전과는 정말 달랐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면을 찾곤 했었고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붙였었다. 그러면서 오류를 범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과정이 아예 없었다. 이 캐릭터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니었다. 실제 계셨던 분이셨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건 훼손할 여지가 있었다. 영화 속의 주변 상황과 인물들이 송몽규라는 선생님을 만들어주더라. 배우들이 서로의 캐릭터를 만들어 준 셈이다.

배우 박정민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영화 출연 전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 News1 고아라 기자

Q. 극 중 윤동주라는 인물은 송몽규에 반응하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해 송몽규라는 인물은 어떤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아 조형된 인물이었을까.
A. 이를테면 친구들이 송몽규를 따르는 모습들, 일장연설을 할 때 그를 바라보는 눈빛과 태도들이 지금 영화 속의 모습을 만들어준 것 같다. 그래서 하늘이한테도, 영화에 나오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께도 너무 감사드린다. 그런 집안에서의 장면들도 송몽규를 만드는 환경들이 너무도 잘 드러난다. 전부 배우들이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Q. 배우 개인에게 매우 특별하고 남다른 의미가 담긴 촬영장이었던 것으로 들린다.
A. 그 전에도 (애정이 가는 촬영장이) 분명 있었다. 뜻하지 않게 작품의 결과가 안 좋았던 건 서운했지만 다 서로 열심히 했었다. 이번에 '동주'를 촬영하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교도소 신에서 머리가 전부 짧은 분들이 오셔야 하는데 전달이 잘못됐는지 머리를 기르신 분들이 오셨다. 단 한 장면이 나오는데 머리를 깎아달라고 하기 너무 죄송해서 그냥 가셔도 된다고 했었는데 흔쾌히 머리를 그 자리에서 깎겠다고 하신 분이 계셨다. 그분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이신데 머리를 깎았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너무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하나가 돼서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Q. 촬영을 하는 내내 박정민을 움직인 것은 첫 윤동주 영화라는 사명감이었을까.
A. 사명감이 샐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오직 나밖에 모르고 세상에 관심이 없었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윤동주, 송몽규 선생님의 정신들을 느껴보려 노력하다 보니까 내가 너무나 부끄럽게 살았는지 실감이 나더라. 세상과 함께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이 시대가 그냥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 시대는 사실 누군가의 투쟁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대이지 않나. 그 투쟁의 대가를 누리면서도 '왜 싸우지'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투쟁의 값이 몸으로 느껴지면서 부끄러웠던 거다.

배우 박정민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향후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고백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동주' 이후에도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도 변화가 있었나.
A. 내가 배우를 시작했을 때 분명히 내가 되고 싶었던 배우가 있었다. 송강호, 황정민, 박원상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때는 나만을 위한 그런 생각을 했었던 거다. 그분들이 닦은 길을 따라가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다. 아직도 배우로서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상에서 신념을 지키기 위한 마음가짐에 변화가 찾아오는 것 같다.

Q. 평소 절친했던 강하늘과의 호흡은 어땠나. 5년 이상 친분을 유지해온 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배우로서 호흡을 맞춘다는 건 또 달랐을 것도 같다.
A. 하늘이는 정말 내가 갖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진 친구다. 착하고 순수하고 연기도 잘 한다. 그 또래에서 정말 하늘이 만큼 연기를 잘 하는 친구가 몇 없다. 처음 촬영하던 당시 하늘이가 워낙 바빴기 때문에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우려도 갖게 됐다. 그런데 첫 촬영을 마치고 그 걱정이 바로 사라졌다. 외려 위기 의식을 느꼈다. 너무 잘해서 멘붕이 오더라. (웃음) 먹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서로 지지 않게 중심을 잡고 붙어줘야 그게 서로 도와주는 것인 셈이니까 '나나 잘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하게 됐다.

Q. 연기 못지 않게 힘든 것은 자신을 다독이는 과정이다. 
A.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 자신을 그렇게 몰아붙이면서 시간을 지나왔다.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자신감을 갖는 순간 스스로가 나태해질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배우가 자신감이 왜 없느냐고 주위에서 많이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자신감을 갖진 못해도 카메라 앞에 서면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자신감을 갖자고 생각하기 보다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배우 박정민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동주'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고 있는 칼럼에 대해 이야기했다. © News1star / 고아라 기자


Q. '파수꾼' 이후에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게 분명 쉽진 않다. 배우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너무나 많았으니까. '파수꾼'에 나오는 베키라고 알아봐주실 때도 있지만 정작 작품에 출연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때마다 좌절하고 힘들어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이)제훈이 형이나 (변)요한이, (조)현철이 같은 동기들을 보면서 들었던 열등감이 나 그 자체로 있게 했을지도 모른다. '동주'를 만나기 전엔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동주'를 만나고는 결실 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에 확신도 얻었다. 송몽규 선생님처럼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지 못하더라도.

Q. 매달 한달에 한 번씩 언희(言喜)라는 칼럼을 기고 중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투영시킨 글이 인상적이다. 글을 읽는 재미도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나름의 의미를 전달하는 필력이 인상적이었다.
A. 몇 안 보는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직업만 배우지 나도 당신들과 똑같다, 난 위로할 주제도 안 되지만 내가 더 바보 같다, 이런 나도 살고 있는데 당신들도 잘 지내고 있느냐'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글이다. 이전에 양화대교를 걷는데 다리에 '지금 힘드십니까'라는 글이 쓰여 있더라. 우리 모두 모르는 사람한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지 않나. 긍정의 침묵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글을 쓸 때도 그런 마음이다. '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라는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장아름 기자(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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