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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명예훼손·모욕 신고 1만5000건…분쟁조정은 고작 46건

가해자 이름·주소 모르면 분쟁조정 못해 신청 건수 미미
방심위 "신청요건 완화 규정 개정 올해 할 것"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2016-02-15 06:00 송고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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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이모(24)씨는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롤)'를 하다가 심한 욕설을 들었다. 게임에서 지자 같은 편이었던 플레이어가 자신을 비난하며 채팅창에 '니애미 XX'라고 욕설을 한 것이다. 이씨는 상대의 대화명과 욕설이 담긴 화면을 캡처해 경찰에 모욕죄로 고소했다.

박모씨는 지난해 9월 'XXX 길들이기'라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 때문에 기분이 크게 상했다. 며칠 전 말다툼을 벌였던 카페 회원이 박씨를 지칭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담긴 글을 게시했기 때문이다. 공공연히 모욕을 당한 박씨는 상대 닉네임과 게시글을 캡처해 경찰에 고소했다.
앞으로는 사이버상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당했을 경우 가해자 실명 등 신상정보를 몰라도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으로 방송심의 규정 개정을 올해 추진할 계획이다.

15일 방심위에 따르면 가해자를 특정하는 정보를 알아야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명예훼손 분쟁조정 절차 등에 관한 규칙' 제2장 분쟁조정 일부를 개정해 신상을 몰라도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심위 명예훼손분쟁조정팀은 인터넷상에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 민·형사상 소송을 하지 않고서도 금전적 보상이나 해당 정보삭제, 사과문 게재 등 조정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성명과 연락처를 모르면 분쟁조정 접수가 안 돼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경찰에 신고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분쟁조정 접수 건수는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지난해 신고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통계)는 총 1만5043건으로 전년도(8880건) 대비 무려 69.4%나 증가했다. 2013년(6320건)과 비교하면 238% 증가한 수치다. 반면 방심위에 지난해 접수된 분쟁조정은 46건에 불과하다. 2014년 68건, 2013년 53건, 2012년 69건으로 연평균 50건꼴이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범죄 특성상 상대 신상을 알기가 어려운데 상대가 누군지 모르면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형사 고소할 마음이 없어도 고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분쟁조정제도가 제역할을 못하면서 사과나 게시글 삭제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까지 경찰이 수사에 나서 공권력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찬엽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경감은 "상당수 피해자가 수사 착수 이후 합의를 보고 고소를 취하해 불기소율이 50%를 넘는다"며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사건은 통신, 추적수사로 사건처리 기간도 긴데 합의나 사과를 받을 목적이 명백한 사건까지 경찰력이 투입되는 것은 낭비"라고 말했다.

논문 '사이버상 명예훼손·모욕 사건의 수사절차 개선 방안'에 따르면 2014년~2015년 9월 사이 발생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범죄 불기소율은 58%에 이른다. 불기소처분을 받은 피의자 가운데 고소취하 또는 처벌의사 철회로 사건이 종결된 '공소권 없음'이 37.8%다.

박 경감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합의가 성사될 때까지 피의자와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피해도 크다"며 "일단 분쟁조정을 먼저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쟁조정을 거치지 않다 보니 청소년의 경우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올린 글 때문에 자칫 평생 지울 수 없는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권 교수는 "청소년들은 악성 댓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고 올렸다가 처벌받기도 하고, 합의금을 노리고 제도를 악용하는 성인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쟁조정 기능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욕설이나 비방 댓글·게시글을 쓰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인식하도록 교육이나 캠페인 등 사회적인 대응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방심위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며 "가해자 성명을 기재하지 않더라도 분쟁조정을 제기할 수 있도록 신청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규정 개정을 올해 안에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etit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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