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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출신 샌더스는 어쩌다 좌파가 됐나…유년의 추억

최종일의 [세상곰파기]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6-02-11 15:05 송고 | 2016-02-11 18:39 최종수정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콘코드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콘코드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9)이 소속돼 있는 LA다저스의 원래 연고지가 뉴욕 브루클린이라는 것은 야구팬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렇지만 다저스의 LA 이적이 요즘 미국 대선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한 정치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서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의 얘기다. 다저스는 19세기 후반 한때 '브루클린 트롤리 다저스(Trolley Dodgers)'로 불렸다. '다저스'는 전차(트롤리)를 요령있게 피하는 브루클린 사람들을 뜻했다. 그만큼 지역 사회와 끈끈한 팀이었다. 이후 브루클린 다저스로 팀명이 바뀌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는 1941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부친 엘리 샌더스는 폴란드에서 1904년 출생한 유태계였으며, 192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샌더스는 브루클린대학 입학 뒤 시카고 대학으로 편입하기 전까지 브루클린에서 쭉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야구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던 샌더스가 가장 좋아했던 팀이 브루클린 다저스였다. 샌더스가 다저스의 이적을 본 것은 1957년 가을 때였으니 그의 나이 16살때였다. 당시 부동산 기업인 월터 오말리 구단주가 이전을 발표하자 샌더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유년 시절 샌더스 가정은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어린 시절 샌더스에게 야구는 큰 의미였다. 걸어서 에벳필드(ebbets field)를 갈 수 있었고 60센트면 우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최초 흑인 포수 로이 캄파넬라, 홈런 타자 길 호지스, 메이저리그 최초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유격수 피 위 리즈의 플레이는 샌더스를 늘 흥분시켰다. 그런 팀이 연고를 옮겨갔다.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의 재키 로빈슨 <출처: 야구 명예의 전당> © News1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의 재키 로빈슨 <출처: 야구 명예의 전당> © News1


팀의 이적은 10대 시절 샌더스에게 세상에 대한 눈을 갖게 했다. 샌더스의 친구인 리처드 슈가먼은 "그것이 큰 영향을 미쳤느냐고 내가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물론이다. 나는 다저스는 브루클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누가, 무엇을 소유하느냐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샌더스의 야구 사랑은 공직생활에서도 나왔다. 버몬트주 벌링턴의 시장으로 있던 1980년대 초에, 그는 마이너리그 팀을 지역으로 불러들였고 어린 시절 브루클린 다저스처럼 지역사회와 끈끈한 유대를 맺도록 했다. 당시에 그는 팀을 시민 구단으로 만들려고 했다.

당시 마이너팀의 구단주였던 마이크 아가니스는 "그는 야구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며 "그는 다저스가 LA로 이전했을 때 크게 상처 받았다. 그는 그것에 분노를 가졌다"고 회상했다.

다저스에 변화가 온 것은 오말리가 1950년 다저스 구단의 대주주가 되면서부터다. 당시 다저스는 1913년부터 사용했던 에벳필드 구장이 낡아서 새 구장 신축을 고려했다. LA 시 관리들은 1956년 월드시리즈 관람하며 다저스의 LA 이전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차베스레빈(Chavez Ravine)으로 불리는 다저스 홈구장 부지를 제공했다.

샌더스의 친구인 버몬트대 교수 허크 구트먼은 "버니와 나는 모두 다저스 팬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모두 돈 때문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지역사회의 이익과 다른 이익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구트먼은 한 기업이 다른 곳에서 제공하는 면세 혜택을 받기 위해 공장을 폐쇄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상황에 빗댔다. 당시 브루클린에 있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전은 일종의 배반이었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 © AFP=뉴스1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 © AFP=뉴스1


2007년 HBO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따르면 당시에 다저스 팬들은 오말리를 증오했다. 영화에선 "당시 팬들에게 한 방에 히틀러와 스탈린, 오말리가 함께 있는데 총에 총알이 두발있다. 누굴 쏘겠냐고 물으면 답은 두발 다 오말리였다"는 부분이 나온다.

샌더스는 유세 기간 동안 어린 시절 다저스 이전에 대해 발언한 게 거의 없다. 자신의 정치 이념은 시카고대학 재학 시절에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충격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수석 고문을 지낸 데이비드 엑설로드와의 팟캐스트 때였다.

샌더스는 당시 오말리의 이전 결심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은 "브루클린에 크게 상처를 준 잔인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것이 기업에 등돌리게 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고 답했다.

어린 시절 고향팀의 이적이 지금이 샌더스를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현재도 구단주의 선택을 당시처럼 단순 논리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게 만들 것들 중 하나가 된 것은 분명한 듯하다.

샌더스는 지난 8일 뉴햄프셔 유세에서 월마트 소유 가문인 월튼가에 대해 "대다수 종업원들의 급여가 너무나 낮다"며 기존의 비난을 되풀이했다.

그는 "대다수 종업원들이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와 푸드스템프(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를 받고 있다. 또 정부 보조 주거시설에 살고 있다. 누가 이것에 돈을 대는 줄 아느냐. 여러분들이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에서 7.25달러의 최저 임금 수준을 "기아 임금(starvation wage)"이라고 부르며 "모두가 뭉쳐서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자신의 정치 이념을 분명히 했다.


allday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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