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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치유 지하철 물품보관함의 '달콤창고' 아시나요?

(서울=뉴스1) 양새롬 기자 | 2016-02-08 08:30 송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남역 달콤창고(정혜라씨 제공), 강변역 달콤창고, 신림역 달콤창고(서울 관악서 제공), 강남역 달콤창고의 모습. © News1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남역 달콤창고(정혜라씨 제공), 강변역 달콤창고, 신림역 달콤창고(서울 관악서 제공), 강남역 달콤창고의 모습. © News1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달콤창고 보고 웃음이 나네요."  
"집 가는 길에 또 들러요. 초콜릿 두고 갑니다."  
"아직 취업준비생이라 가난해 많이 두고가지 못하지만 오늘도 힘내세요!"

경기침체와 취업난 속에서도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메시지들이 붙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지하철 역사 내 물품보관함에 마련된 '달콤창고'다.
달콤창고란 익명의 누군가가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장기로 빌리고 좌표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초콜릿이나 사탕 등의 간식을 나누는 곳이다. 지난해 5월부터 익명 애플리케이션 '어라운드'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설 연휴를 앞둔 5일 오후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지하철 강변역 달콤창고에는 사탕부터 배즙과 음료수, 소시지, 초콜릿 등이 응원 쪽지와 함께 보관돼 있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이모(26·여)씨는 "취준생이라 고향에 내려가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면서 "버스에서 먹을 간식을 산 김에 달콤창고에 들려 응원의 기운을 나누고 간다"고 말했다.
강남역 달콤지기였던 정혜라(27·여)씨는 "요새 '헬조선'이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면서 "달콤창고는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니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시도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해 9월 강남역 사물함 207번과 202번에 달콤창고를 열었다.

정씨는 힐링을 넘어선 행복을 만들기 위해 '달콤미션'도 진행했다. 음료수병에는 '청소부 아저씨 수고하신다고 음료수 드리기', 사탕에는 '먹을 때마다 예쁜말 한 번 하기', 과자에는 '동료들에게 수고한다고 말하고 나눠 먹기' 등의 미션 스티커를 부착했다.

정씨는 이러한 미션에 반응이 꽤 좋았다고 전했다. 달콤창고에 방문할 수 없는 이들은 '큰 백팩을 메고 있는 분께 선물하기', '지하철 자리에 두고 내리기' 등의 메시지를 간식에 붙여달라고 SNS를 통해 정씨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또 정씨는 달콤창고 안에 '씁쓸상자'도 마련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한 자신의 방법을 공유하게끔 한 것.

정씨는 지난해 12월 여행 중 사물함 대여기간이 만료돼 달콤창고를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나눔에 관심이 큰 만큼 재운영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본인이 운영하는 달콤창고 페이스북 계정에 크라우드 펀딩에 관한 아이디어도 냈다.

다른 강남역 달콤지기 박태준(31)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자신의 가게 수납함을 달콤창고로 제공했다. 달콤창고의 이용자 대부분은 학생들로 하루에 10명 내외가 이곳을 찾는다.

박씨는 "지하철 보관함을 한달 빌리는데 드는 5만원은 학생들에게 큰 돈"이라면서 "돈을 내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유지하기도 힘들고, 분실사고도 종종 일어나 가게 수납함을 제공하게 됐다"고 밝혔다.
5일 오전 서울 강동구 고덕역 근처의 김밥집에 위치한 달콤창고의 모습. © News1

서울 강동구 지하철 고덕역 근처의 한 김밥집에는 '달콤냉장고' 또는 '양심냉장고'라고 불리는 달콤창고가 있다.

김밥집 사장 정종훈(42)씨는 "지역 주민을 위해 개방해오던 냉장고에 손님이 준 달콤창고 아이디어를 더해 지난해 6월초 달콤창고를 마련했다"며 "가급적이면 가게 문을 닫는 날까지 유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이곳을 방문한 노숙자에게 핫팩과 함께 "절대로 다시 일어나는 걸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노숙자님을 성함으로 불러드리는 날이 올거라고 믿겠다"는 쪽지가 달콤창고에 있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정씨는 전했다.    

이곳을 종종 이용한다는 김모(18)군은 "김밥집에 달콤창고가 있으니 달콤창고에 뭘 넣으러 간 김에 김밥을 사먹거나, 밥을 먹으러 간 김에 달콤창고에 메시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에서도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유동인구가 많은 신림역과 청량리역에 달콤창고를 운영 중이다. 신림역 달콤창고를 담당하는 박종훈 경사는 "가끔 달콤창고 문을 열어볼 때마다 바뀌어 있는 간식거리와 '힘내'라는 글귀 등을 보며 아직 우리 사회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달콤창고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고 있는 추세다. 대여비용에 대한 부담과 일부 이용자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달콤지기들이 달콤창고를 폐쇄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강남역과 잠실역 등에서 다음달 물품보관소 대여료를 십시일반으로 모으던 저금통이 도난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강남역에 하나 남은 달콤창고는 지난주 3일 연속으로 도난사고를 당했다. 박씨는 "폐쇄회로(CC)TV 확인을 통해 범인은 특정했지만 신고는 하지 않았다"면서도 "한 번 더 도난사고가 일어나면 달콤창고를 유지하기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오전 어라운드에는 '등촌역선반납테러'라는 태그와 함께 등촌역 달콤창고를 폐쇄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달콤창고 안의 물건을 다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 보관함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빼간 것이다.   

글쓴이는 "2015년 8월부터 물품보관함을 바꿔가며 운영해보려 노력했지만 선반납 테러를 세번째 당하니 힘들다"며 "그동안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혹시라도 모르고 방문하실 분들께 죄송하다"고 글을 남겼다. 

2월 현재 어라운드 달콤창고 지도에 따르면 서울에 남은 달콤창고는 지하철역 보관함과 대학 등을 포함해 총 13곳이다.
어라운드 달콤창고 지도 사이트(http://hoons99.github.io/) 갈무리. © News1
어라운드 달콤창고 지도 사이트(http://hoons99.github.io/) 갈무리. © News1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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