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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시네다이어리] 폭력의 시인 타란티노의 서부극, 총알로 펼치는 발레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8>

(서울=뉴스1) | 2016-01-21 13:39 송고 | 2016-01-21 14:13 최종수정
 <헤이트풀8>  스틸컷
와이드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새 영화 <헤이트풀8>은 꼭, 그리고 굳이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쩌면 타란티노의 미학적 강박 증세에 휘말리게 되는 꼴이다. 그런데 보는 사람은 보는 사람인 것이다. 만든 사람의 생각과 의도는 존중하되 반드시 거기에 따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장 3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가 와이드 스크린으로 봐야 할 장면은 앞 부분의 약 30분 정도, 그러니까 북군 소령 출신(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데다 링컨의 친필 서한을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한)의 흑인 바운티 헌터(현상금 사냥꾼, 사무엘 L. 잭슨)가 또 다른 헌터인 일명 행 맨(커트 러셀)의 마차를 얻어 타는 장면뿐이다. 나머지 일, 곧 살인과 음모는 모두 ‘미니의 하우스’라 불리는 오두막 여인숙의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다. 이때부터 영화는 철저하게 세트 위주로 간다. 그렇다면 왜 와이드 스크린이 필요한가? 물론 와이드 스크린으로 보면 좋다. 하지만 그 핑계로 이 영화를 놓치게 되는 건 영화 팬들이라면 큰 실수에 해당하는 일이 될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천재적이지만 병적으로 수다스러운 이야기 꾼의 특징은 단하나다. 아주 작은 일, 콘셉트, 모멘텀을 어마어마한 이야기로 뻥튀기를 한 후, 그것의 앞뒤로 잔뜩 맥거핀(진짜 이야기를 감추기 위한 눈속임 장치)을 집어 넣어 사람들을 혼란 시키면서, 이야기 속 미스터리에 푹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이리 흔들었다 저리 흔들었다 한다는 얘기다. <헤이프풀8>도 마찬가지다. 타란티노의 생각은 이런 데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곧, 한 평화로운 오두막 여인숙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학살극이 벌어졌다는 것, 그런데 그 이유는 알고 보면 거대한 음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타란티노는 이 ‘거대한’ 음모에 대해 전혀 상관이 없을 법한 이야기를 전면부에 ‘의도적이면서’ ‘다소’ 지루하게 배치함으로써 이게 도통 무슨 얘기인지를 전혀 모르게 만든다. 웬만큼 영화를 본 사람들이더라도 <헤이풀8>의 전반부 1시간 반만으로는 사건 전체를 파악하는데 있어 애를 먹게 된다. 아니, 솔직히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마냥 마지막에 있을 반전(反轉)의 공세를 예상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악동 감독 타란티노에게 다시 한번 멋있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헤이트풀8>  스틸컷 
<헤이트풀8>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레드 락 타운이 대표적인 것인데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바로 이곳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련한 현상금 사냥꾼인 ‘행 맨’은 한 여자(제니퍼 제이슨 리)를 잡아 자신의 손과 그녀의 손을 수갑으로 묶은 채 호송 중인데 그곳이 레드 락 타운이다.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고 행 맨을 통해 전해진다. 행 맨은 수배 전단에 ‘생사 불문(dead or alive)’이라 써있어서 체포하지 않고 사살해도 무방할 무법자들을 굳이 잡아다가 교수형에 처하게 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이날도 여자를 그런 목적으로 데려가는데, 중간 길에 두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화근이다. 한 사람은 아까 얘기한 흑인 바운티 헌터이고 또 한 사람은 바로 레드 락 카운티의 신임 보안관(월튼 고긴스)이다. 이 둘이 마차를 얻어 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엄청난 눈폭풍과 돌풍 탓이다. 마차로도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다.
이들은 서부 건맨들에게 모두의 휴식처로 평가 받는 ‘미니의 하우스’에서 눈보라를 피해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오두막에는 이미 수상한 남자들로 가득하다. 남군 장군 출신의 노인(브루스 던)이 무심한 듯 앉아 있고 프랑스 이름을 가진 교수형 집행인(팀 로스)이 있는 가 하면 미니의 하우스 집사로 보이는 멕시칸(데미안 비쉬어)과 스스로 소를 키운다고 얘기한 카우보이(마이클 매드슨)가 있다. 이들 역시 눈보라를 피해 이곳 미니의 하우스에 와있지만 어딘가 좀 어설픈 데가 있다. 날카로운 눈을 가진 흑인 바운티 헌터 소령은 초장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누군가 커피 포트에 독약을 타는 사건이 벌어지고 오두막 안에서는 바야흐로 피의 살육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그가 보여주는 ‘학살극’은 결코 ‘빵 때림’의 형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하나 하나, 슬금 슬금, 일이 커지는 가 싶더니 점차 확대되기 시작되는데 그 점층의 양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고 가차없이 진행된다. 피가 튀기고 팔이 잘리고, 총알로 얼굴이 날아가 버리고 등등 타란티노는 자신의 닉네임인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스크린을 피의 바다로 넘쳐나게 만든다. 엔딩이 가까울수록 온통 피,피,피뿐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것이 그리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스승 격인 샘 페킨파처럼 타란티노가 보여주는 스크린 속 총격신은 실로 ‘총알발레’를 보듯이 율동감이 넘치는데다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까지! 이 폭력의 시인은 폭력의 외형은 역설적으로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이트풀8>  스틸컷 
이번 <헤이트풀8>의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여관 안으로 들어 온 다음부터는 영화가 연극으로 전환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단 한 공간에서 무려 9명(남자 8, 여자 1이지만 사실은 나중에 남자 하나가 더 추가된다. 이 관계는 스포일러상 설명할 수가 없다.)이나 되는 인물이 계속해서 으르렁대듯 대화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계속해서 뒤를 파려고 하는데 이걸 다 연극의 동선처럼 하나로 연결되듯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건 라스 폰 트리에가 한창 때 <도그빌>에서 써먹던 방식인데 그보다는 훨씬 더 연극적이다. <도그빌>이 영화적 연극이었다면 타란티노가 이번에 실험한 것은 ‘연극적 영화’였던 셈이다. 영화적 연극이든 연극적 영화이든 한 가지 분명하게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연출의 완벽함(전체 동선을 촬영 전에 미리 자신의 머릿속에 다 넣고 있어야 할 정도로)과 연기의 완벽함(전체 동선을 촬영 내내 자신의 머릿속에 다 넣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헤이트풀8>은 명불허전이다. 타란티노가 스토리와 연출에 관한 거장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근데 왜 타란티노는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이후 계속 서부극인가. 그것도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흑인이 백인과 맞서, 혹은 백인과 견줘 가면서 미국의 서부를 동등하게 개척해 냈다는 것은 사실인가 픽션인가. 아마도 역사적 팩트는 일부 사실일 것이다. 흑인이 큰 역할을 해낸, 그런 일들이 더러 있었을 것이다. 다는 아닐 것이다. 늘 얘기하지만 역사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디테일이 약한 법이고 그래서 ‘일부’는 항상 ‘전부’에 파묻히게 되는데 영화나 예술이 그것을 발굴해 내서 다시 ‘전부’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아마도 타란티노는 그 일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뒤섞인 DNA, 곧 다인종과 다민족의 후예로서 스스로의 정체성 더 나아가 우리들 모두의 보편적 정체성을 ‘흑인 서부극’을 통해 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는 前 국가 단계다.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전근대적이었던 시대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시기의 역사를 다시 써야지만 지금의 미국 역사가 올바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란티노의 서부극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헤이트풀8>  스틸컷 
이런저런 얘기는 차치하고 영화는 영화여야 한다. 교육적이거나 계몽적이 되는 순간 그 영화는 게임 끝이다. <헤이트풀8>은 그런 점에서 영리하게도 자신의 영화적 몫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다. 상영 1시간 여가 경과하면서부터 영화는 사람들을 재미의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가기 시작한다. 자, 누가 커피에 독을 탔는가부터다. 만약 당신이 그 장면에서 독을 탄 사람을 알아 맞출 수 있다면 더 이상 객석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감독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타란티노 만한 감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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