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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없는 하루…남편과 엇갈릴뻔한 길 "전화는 왜 안받아?"

[스마트폰없이 하루살기] 삶 깊숙히 침투한 앱과 카톡 없으니 불안

(서울=뉴스1) 박희진 기자 | 2016-01-02 11:10 송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 고속터미널 파미에스트리트 분수 광장에서 모델 산타클로스 30여 명이 포즈르 취하자 시민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2015.12.24/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 고속터미널 파미에스트리트 분수 광장에서 모델 산타클로스 30여 명이 포즈르 취하자 시민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2015.12.24/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야! 도대체 뭐하다 온거야? 왜 이제 와? 전화는 왜 안받아!!!"
아침부터 남편이 욕을 한바가지 쏟아낸다. 남편이 주차장에서 차를 빼오면 아파트 상가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일이 꼬였다. 주차장을 향해 남편이 사라지기 무섭게 집에서 깜박 잊고 안갖고 나온게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쳐서다. 아뿔싸. 평소같으면 다시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갖고 나오고 남편에겐 전화로 알려만 주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다르다.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아파트 꼭대기층인 1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잊을 물건을 갖고 나왔는데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 떠오른다. 잊은 물건이...(ㅠㅠ) 이미 차를 끌고 나와서 아파트 앞에서 나를 기다릴 남편을 생각하니 뒷골이 땡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다시 '15층' 버튼을 눌렀다. 두번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더욱 늘어난 짐에 뒤뚱뒤뚱 걸어 남편을 만나기로 한 아파트 입구로 허둥허둥 다가갔다. 남편이 타고 있는 차에서부터 '분노'가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차문을 열고 들어서자 호통이 쏟아진다.

"아침부터 그렇게 꾸무럭거리며 늑장을 부리더니 이제 드디어 출발하나 했는데 또 사라지고 말이야. 전화는 왜 안받아!"

미안하다.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미처 말을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스마트폰없이 하루를 사는 '실험'을 해야 하는데 'D-데이'로 잡은 게 하필 크리스마스였다. 남편과 둘이 보낼터라 하루쯤 스마트폰 없이 살아도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시작부터 빗나갔다.
한바탕 소란끝에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여행'이 시작됐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는 부산에서 보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에다 샌드위치 연휴라 차가 막힐까 걱정했지만 도로 사정은 생각보다 양호했다.

차안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을 좋아해 평소같으면 라디오를 들을텐데 지방가는 길은 라디오 상황이 좋질 않다. FM 주파수에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지방가는 길에 라디오를 켜면 '지지직' 소리만 나고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이럴때 애용하는게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에 깔린 라디오 애플리케이션(앱) MBC '미니'을 이용하면 지방가는 길 차안에서도 라디오를 깨끗하게 이용할수 있다. 통신사들이 네트워크 구축에 연간 수조원의 돈을 쓴다더니 터널속에서도 라디오앱은 끊김없이 잘도 나온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남편 폰이 있다. 남편폰까지 쓰지말라는 규정은 없지 않은가. 다만 귀찮다. 남편 폰에 앱을 다시 다운받는다. 평소 IT 연령 70대라는 평판에 걸맞게 남편폰에는 '고스톱' 말고는 깔린 앱이 없다. 미니 앱이 새롭게 깔리고 라디오 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다.  

라디오에서 재미있는 사연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옆에는 남편도 있고 도로상황도 원활하다. 지방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휴게소 놀이도 재미있다. 하지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남편의 폰을 써도 해소안되는 갈증이 있다. 바로 '카카오톡'이다. 어릴적 본 영화중에 '데니스는 통화중'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요즘 '버전'으로는 '데니스로 카톡중'이라고 바뀌어야할만큼 카카오톡이 대화의 주 수단이 된 세상이다. 휴대폰을 꺼버린 신세라 카카오톡은 언감생심이다. 엄마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도 하고 싶고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고싶어진다. 수다를 떨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옆에 있는 남편뿐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보고 또 보는 카카오톡 없는 일상이 낯설기만하다.

드디어 부산에 도착했다. 휴식도 취할 겸 저녁전 주전부리로 할 겸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그런데 라운지 입구에서 호텔 직원이 막아선다. "손님 곤란합니다." 슬리퍼 신고 레스토랑에 입장할 수 없단다. '뭐 이런 개똥같은…" 졸지에 '매너없는 여자'가 돼 버려 울컥했다. 결국 다시 호텔방에 들어가 신발을 갈아신고 나왔지만 '퇴짜' 맞은 그곳에 다시 가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에게 전화해서 "기분나빠서 거기서 먹기싫다. 다른데 가자"라고 했을텐데...휴대폰이 없다! 남편이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조용히 혼자 먹거나, 혼자 먹기 싫으면 다시 방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호텔의 유선전화로 라운지해줄만큼, 나는 그닥 친절한 사람이 못됐다. 기대했던 대로 남편은 나를 좀 기다리다 오지 않으니 그곳을 그냥 나왔다.

저녁은 늘 가던 '맛집'을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전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커피집을 가면 평소같으면 '시럽' 앱을 열고 적립하거나, 포인트를 쓰는데 이날은 그럴 수가 없어서 살짝 손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앱을 많이 활용하는 편도 아니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거의 이용하지 않아서 스마트폰없이 하루살기가 그닥 불편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편한 하루는 아니었다. 스마트폰없이 남편은 물론 다른 사람과도 소통하기 어려웠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편했다는 것을 절감한 하루였다.


birak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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