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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청문회 3일의 기록…"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 2015-12-18 07:00 송고 | 2015-12-18 07:43 최종수정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에서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에서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개회선언을 하고 있다./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제1차 청문회가 14~16일 진행됐다.

3일간의 청문회 동안 세월호 특조위에서 의결한 증인과 참고인 총 31명 중 당시 김윤상 언딘 사장과 신정택 한국해양구조협회장이 회사 사정과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아 총 29명의 증인이 출석했다.
◇청문회 첫날

모르쇠 일관에 '파란 바지의 구조 영웅' 자해 시도
"학생들이 철이 없었는지…" 발언에 아수라장

14일에는 세월호 침몰사고 신고접수와 초동대응 부적정성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특조위 진상규명 소위원회는 해경과 현장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석태 위원장은 청문회를 여는 인사말에서 "보통 해상사고였을 수 있는 상황이 거대한 비극과 참사로 된 원인이 여기(정부 대응)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2차, 3차 피해를 준 건 아닌지 확인하겠다"고 공언했다. 

청문회를 찾은 유가족과 방청객 150여명은 유가족들은 청문회에 앞서 세월호 사고 당시 선내 상황과 주변 상황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자 함께 눈물을 흘렸다. 

현장 목격자로 청문회에 참석한 당시 화물기사 최재영씨는 당시 선박 내부의 상황을 찍은 동영상을 본 직후 "생각만 있으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과정에서 방청객들도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증인 자격으로 참석한 당시 해경 책임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등 책임 공방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 과정에서 소동도 벌어졌다.

지난해 세월호참사 당시 학생 10여명을 구조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파란 바지의 구조 영웅' 김동수(50)씨는 이날 오후 증인들의 거듭된 '모르쇠' 일관 대답에 "너무한 것 아닙니까"라고 외치며 흉기로 자신의 몸을 수차례 그었다.

김씨의 아내는 김씨를 말리다 호흡 곤란을 호소해 함께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씨가 자해할 당시는 김진 특조위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자료화면을 보여주며 구조에 나선 목포해경 123 승조원이 세월호 선원과 공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던 중이었다.

이어진 청문회에서는 당시 123정 승조원이었던 박상욱 경장이 "배가 기우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내려가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철이 없었는지 내려가지 않았다"고 말해 유가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박 경장은 곧바로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유가족의 화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에서 김석균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장(맨 왼쪽)을 비롯한 증인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에서 김석균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장(맨 왼쪽)을 비롯한 증인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청문회 제2일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투입과 잠수는 다른 의미"
끊이지 않는 책임 회피

15일 재개된 제2일차 청문회에서도 전날에 이어 세월호 참사 초기 구조 구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김경일 당시 목포해양경찰서 123정 정장은 '퇴선 명령했다고 인터뷰 지시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에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재난·사고현장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의 쓰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은 당시 언론을 통해 555명의 잠수사가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투입이라는 용어와 잠수는 다른 의미"라고 선을 그었다.

김 전 청장은 '투입'과 '잠수'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했고 이호중 특조위원은 "증인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가족들은 "말장난하지 마라", "차라리 모른다고 하라"고 외치며 반발하다 이 위원의 일갈에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기도 했다.

◇청문회 마지막 날

"계속하세요"
"지금 아니면 기회 없으니 기회 달라"
유가족 슬픔 속 청문회 종료

16일 청문회 마지막 날에는 참사현장에서의 피해자 지원조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날 오전에는 피해자 가족과 민간잠수사가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사고 당시를 증언했다. 이에 가족들은 증언 한마디에 울고 웃었다.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 정모(47)씨는 "사건 발생 초기에 안내해주는 사람도, 설명도 없었다"고 말해 유가족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정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다"면서 "저는 가슴에 묻을 수 없다. 아이들을 가슴에 묻을 수 있도록 힘 좀 써달라"고 특조위원에 요청했다. 유가족들은 정씨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어진 청문회에서는 전날 서면으로 출석 의사를 밝힌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심문이 진행됐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심문이 길어지자 중재를 시도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방청석에서 "계속하세요!", "밤새워",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 기회를 달라"고 반발했다.

3일간 지속된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들이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김문홍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은 계속되는 질문에 "어제 다 끝났는데 다시 이러는 저의가 뭡니까, 제게는 인권이 없습니까?"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방청석에서 "아이들은 인격이 없느냐", "아이들이 다 죽었는데 그것 하나 못 참냐"라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박종대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이날 참석한 증인들에 "단언컨대,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강력히 말하기도 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우리는 유가족과 국민의 염원을 바탕으로 진실을 규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청문회에 임했다"면서 "3일 간의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진실은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청문회를 마무리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방청인으로 참석한 유가족들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5.12.1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16일 오전 서울 중구 YWCA 대강당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방청인으로 참석한 유가족들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5.12.1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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