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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축구하려면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고?…이런 '비극' 없앤다

WK리그, '최유리 사태' 재발 방지 위해 선발세칙 수정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15-12-02 17:57 송고 | 2015-12-03 16:34 최종수정
1년 동안 무적선수로 방황했던 최유리. 부산상무행을 거부했다가 1년을 쉬어야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1년 동안 무적선수로 방황했던 최유리. 부산상무행을 거부했다가 1년을 쉬어야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News1

'WK리그 특별 드래프트'

2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 앞에는 낯선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회의실 안에는 평상복을 입고 있어 전혀 선수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가 관계자들 사이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특별 드래프트'의 대상자이자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 여자축구의 유망주로 꼽혔던 최유리(21)였다.
이날의 자리는 최유리라는 전도유망한 한 여자축구선수가 군대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을 중지해야했던 아픈 시간을 끝내는 날이었다.

최유리는 지난해 여름 U-20 월드컵에 참가해 8강 진출에 기여했고 이때 능력을 인정받아 윤덕여호에 발탁, 언니들과 함께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당당히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선수다. 자연스레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 출전도 기대됐다. 하지만 최종 엔트리에 최유리라는 이름은 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다.

분명 지난해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장에서 '호명'된 것을 기억하나 WK리그 무대에서 그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을 지난해 이 무렵으로 되돌린다.

최유리는 2014년 11월4일 열린 '2015 WK리그 신인선수 선발드래프트'에서 한 팀의 선택을 받았다. 단 7개 팀으로 운영되는 작은 규모를 감안한다면 WK리그에 진입하는 것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 같은 어려움이다. 때문에 호명을 받은 선수들은 대부분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울산과학대 소속의 최유리가 그런 케이스였다. 당시 최유리는 부산상무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잘했으니까 첫 번째 순번에 발탁됐다. 하지만 웃지 못했다.

WK리그의 부산상무는 K리그의 상주상무처럼 한국 축구계의 풍족하지 않은 여건 속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군팀'이다. K리그든 WK리그든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또 확연히 차이가 있다.

상주상무는 '국방의 의무'를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남자선수'에게 일종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기도 하다. 상주에 들어가지 못하면 소위 말하는 '막군'에서 축구선수로서의 시간을 그냥 정지시켜야 한다.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군대를 가야하는 '여자선수'는 입장이 다르다.

여자 축구선수가 부산상무에 입단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부사관 후보생이 되면서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받아야한다. 5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은 물론이고 다시 '대한민국 육군 부사관'으로 임명되기 위해 육군부사관학교에서 12주간 필수 교육을 이수해야한다. 약 4달 이상 훈련을 받고 3년간 군인 신분으로 지내야한다.

모든 선수들의 심리까지 미루어 짐작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략 10년 넘게 축구를 해왔던 여자선수가 군인을 미래의 직업으로 희망하기란 쉽지 않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뜬금없이 4개월 군사훈련과 하사 혹은 중사라는 타이틀은 낯설 수 있다. 나아가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최유라는 후자였다.
최유리가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 News1
최유리가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 News1

WK리그 관계자는 "최유리가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산상무의 지명을 받았으나 자신이 거부했다. 워낙 겁이 많아서 '군팀'에 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굳이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거창한 지적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사안이다.

WK리그 관계자는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했다. 없었던 것인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비슷한 걱정을 했던 선수들은 더 있었을 수 있다. 축구가 계속 하고 싶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상무행을 택했을 선수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야하는 이유는, 그냥 거부하면 WK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자축구연맹 선수선발세칙' 제4조(실업팀 신인선수 선발규정-드래프트 제도) ②선발방식을 보면 1. 실업팀으로의 입단은 드래프트 방식에 의한 지명으로만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⑥기타 항목에는 2. 드래프트 지명 선수가 입단을 거부할 경우 2년간 실업팀 등록을 금지하고 그 뒤에야 다시 드래프트를 거쳐 실업팀에 입단할 수 있다고 정해놓았다.

가뜩이나 취업하기 어려운데 상무라고 마다할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최유리는 오히려 두려움을 떨치고 지명을 거부했다. 때문에 1년을 무적선수로 지냈다. 어쩌면 함께 할 수도 있었던 월드컵 기회도 날아갔다. 큰 손해다. 특별한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최유리는 꼼짝없이 내년에도 허송세월을 보냈어야했다.

젊은 선수를 구제하자는 여자축구계 내부의 목소리, 그리고 직업 선택의 자유 속에서 무조건 군팀을 가야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결국 '특별 드래프트'가 만들어졌다. 드래프트 결과 최유리는 대전스포츠토토의 선택을 받았고 내년부터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 매번 최유리처럼 '특별 드래프트'를 실시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여자축구연맹도 대안을 마련 중이다. 일단 지난달 19일 이사회를 열어 선수선발세칙을 개정했다. 선발방식 부분에 있어서는 항목을 추가했다. 지원자만 뽑는다.

물론 이것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무도 상무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게다 아무래도 기량이 좋은 선수를 수급할 확률은 떨어진다. WK리그 관계자는 "상무 측과도 더 많은 논의를 통해 좋은 해법을 도출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남았다. 하지만 이제라도 축구를 하고 싶어서 억지로 군대에 가야하는 슬픈 코미디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진행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last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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