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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미 부르셨나요?” 성매매보다 더 질긴 ‘보도방 생태계’

이용 남성들 “법망 밖이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인식 커
보도방 업주 적발해도 벌금형 태반…“양형기준 강화 필요”

(서울=뉴스1) 류보람 기자 | 2015-11-21 08:00 송고 | 2015-11-25 18:02 최종수정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서울 강서구 화곡1동에는 '복개천'이라 불리는 도로 구간이 있다. 1980년대 후반 하천을 도로로 덮은 뒤 유통단지와 음식점 등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서울시내 대표적인 유흥가 중 하나로 꼽힌다.
도로 양옆에는 유독 '노래빠', '노래주점' 등의 간판을 단 노래방들이 즐비하다. 800m 남짓 되는 구간 안에 200여곳의 노래방이 영업 중이다.

이른바 '보도방'들이 이들 업소에 여성 '도우미'를 공급한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달 23일 화곡동 일대 유흥가 노래방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도우미 보도방' 단속을 벌였다.

9월부터 이 지역 보도방 업주들을 추적해 온 경찰은 형사과 7개 팀, 형사지원팀과 기동순찰대까지 동원해 이날 밤 일대를 일망타진했다. 이날 밤 10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 하룻밤 사이에만 김모(48)씨 등 업주 11명이 체포돼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보도방 한 곳에 고용된 여성의 수는 적게는 5~8명에서 많게는 30여명에 이른다.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이번 단속에서 적발된 업체는 40여곳이다. 고용된 도우미 수만도 400여명 이상이다.
도우미 비용은 시간당 2만~3만원선이다. 한번 '뛰면' 보통 4~5시간씩 손님과 함께 보내기 때문에 회당 12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중 보도방 업주가 4분의 1 정도를 가져간다.

노래방을 이용하는 비용은 시간당 2만~3만원이지만 술값이 추가되면 한 무리의 손님들이 내는 매출은 여러 배로 뛴다. 술손님들이 도우미를 주로 찾기 때문에 노래방 업주들은 자신들에게 비용을 떼주는 것은 아니지만 도우미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일대에는 숙박업소도 가득하다. 일부 도우미들이 '2차' 요구에 응하면 성매매 비용까지 발생하고, 보도방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법의 온상이 된다.

서울 전역에는 청량리 등 비슷한 상권이 많다. 전국으로 확대하면 보도방에서 비롯되는 불법 행위와 자금의 규모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돈줄'은 폭력조직의 먹이가 되기 쉽다. 경찰은 보도방 업자들의 배후에 폭력조직이 연결된 정황을 확인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단속 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9일 이 지역 노래방들을 찾아 저녁 회식을 예약하면 도우미를 불러줄 수 있는지 물었다. 업주들은 머뭇거리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다가도 목소리를 낮추며 "몇 명이 필요한가. 가능은 하다"고 말했다.

수사당국의 노력에도 보도방을 통한 도우미 영업이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업주들이 처벌을 통해 받는 불이익보다는 영업에서 얻는 이익이 크고, 동시다발적인 단속도 어렵다.

유흥업을 할 수 있는 소위 '1종 근린생활시설' 허가를 얻고 상가를 지으려면 청소년보호법 등 각종 제약이 따른다. 이 때문에 '2종' 허가가 있는 건물에서 영업하는 노래방들은 합법적으로 술을 팔거나 접대원을 고용할 수는 없지만 보도방을 통해 공공연히 도우미를 부른다.

이 지역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A씨는 "매장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1종 허가를 받은 상가의 임대료는 2억원을 상회한다. 2종 허가인 곳은 1억 아래쪽도 많다"며 "2종 허가로 노래방을 운영하며 도우미를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고 귀띔했다.

경찰들은 한 군데만 단속을 해도 업주들이 정보를 금세 공유하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인근 지구대 경찰관은 "업주들이 순찰차 번호까지 외우고 다닐 정도로 단속에 대비한다"고 말했다. 한 노래방 업주는 "(단속을) 자주 안 온다. 해도 손님들이 원하니 몰래 다시 부른다. 영업정지까지 나오는 경우는 별로 못 봤다"고 말했다.

'노래방 도우미'의 주고객층은 40~50대 남성이다. 이들 사이에 '성적 접촉 없이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이라면 성을 구매하는 게 아닌데 왜 문제가 되느냐'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보도방 수요가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자영업자 박모(46)씨는 "친목이나 사기 진작을 위해 직원들과 회식을 하는데 중년 아저씨들끼리는 신나는 분위기 만들기가 쑥스럽지 않느냐"면서 "분위기 띄워 주는 도우미까지 법으로 막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팀장급인 최모(40)씨는 "상사들이 원하는데 거부하기도 어렵고, 성매매와 달리 죄의식 같은 것은 특별히 느껴지지 않는다. 도덕성의 금을 넘지 않으면서 돈을 마련하고 싶은 여성들과 이해 관계가 맞아 발생한 직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강한 처벌이 어렵고, 양형 기준이 대개는 벌금형에 그친다는 점도 보도방이 20여년 넘게 기승을 부리는 데 한몫한다.

한국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인 김보람 변호사는 "보도방을 처벌 가능한 죄목은 직업안정법, 식품위생법 위반 등인데, 이 죄목으로는 성폭력과 상습범행 등 가중요인이 있지 않은 이상 대개 수백만원 정도의 벌금형을 받는다"고 말했다.

구속 수사도 여의치 않다.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사유에는 일정하지 않은 주거나 직업, 증거인멸 우려 등이 있지만 직업안정법 위반을 사유로 영장이 발부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법원 관계자는 말했다.

현실적으로 보도방과 도우미,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불법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부당이득을 환수하거나 양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한 경찰 간부는 "영업 이익이 처벌보다 크기 때문에 단속만으로 줄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며 "범죄로 얻은 수익을 회수하는 수단을 마련하는 등의 보완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현금 거래로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검거된 업주들의 진술을 통해 수익 규모 추정치를 내고, 이를 환수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불법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신고 또는 등록해야 한다. 그는 "직업안정법에 직종별 처벌 기준을 추가해 보도방 등 유해업소의 경우 일반 미등록 직업소개소에 비해 양형기준을 높이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pad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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