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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200만~300만원 '노숙 투기판' 일으킨 H&M·발망

(서울=뉴스1) 김효진 기자 | 2015-11-05 18:37 송고 | 2015-11-05 19:14 최종수정
© News1
"발망이니까!"

명동 한복판에서 때아닌 '노숙 행렬'이 이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캠핑용 의자, 담요, 텐트를 총동원해 엿새간 노숙을 감행한 이들은 입을 모아 '발망'을 외쳤다. 제품 판매를 시작한 5일 오전 8시 기준으로 대기줄에 선 사람들은 400명에 이르렀다.
'노숙 패피'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패피'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앞에 '노숙'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붙었다. 한정판 제품을 구매한 후 3~4배 높은 가격에 되팔려는 '꾼'들은 이들보다 한 걸음 더 빨랐다. 매년 해왔던 일인듯 H&M 측 관계자와 여유있게 눈을 마주쳤다.

하루에서 이틀, 심지어 엿새동안 매년 노숙을 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SPA(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은 2004년부터 매년 명품과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발망처럼 대란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지난해 알렉산더왕 컬래버레이션이 출시됐을 때 이틀 전부터 대기한 고객은 제품을 사지 못했단 소식이 불씨를 당겼다. "더 일찍가자." 2박3일 노숙을 해 화제가 됐던 '아이폰6s' 1호 개통자보다 더 빨랐던 '발망 X H&M' 구매자들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올리비에 루스탱이 수석 디자이너로 있는 발망의 제품들은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이번 H&M과 협업을 통해서는 10분의 1가격으로 선보이고 있다. '발망이 아니다. H&M 발망이다', '디자인은 발망이지만 소재나 봉제는 SPA 브랜드 답다'는 의견도 많지만 온라인에선 이미 3~4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한벌에 최고 300만원까지 벌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엿새 전부터 밤새 기다린 사람들은 대부분 '리셀러(재판매자)'라고 보면 된다"는 실제 구매자의 증언도 나왔다. "5일 정도만 기다리면 일반 직장인들이 한 달 버는 월급 못지 않게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씁쓸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리셀러들은 서너 명씩 짝을 이뤄 번갈아 줄을 서고 매장 안에서는 품목별로 나눠 제품을 쓸어담는다. 물건을 구매한 후 판매하던 방식에서 사전 예약을 받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H&M 명품 콜렉션을 판매하는 리셀러 조직이 '시스템화' 됐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모든 게 H&M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H&M은 매년 '글로벌 명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콘셉트로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한정 판매하고 있다. 매장에 얼마만큼 물량을 준비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제품이 언제 동날지 모르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줄을 서야만 한다.

그렇게 시작된 노숙 행렬에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발망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쇼핑백을 한아름 손에 든 사람들은 플래시 세례와 대기 고객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H&M 입장에서 본다면 희소성을 강조한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H&M에 묻고 싶은 게 있다. 한국은 온라인몰이 특히 발달한 나라다. 그럼에도 H&M이 매년 똑같은 판매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란을 막기 위해 내놓은 조치라는 '쇼핑시간 10분', '구매수량 제한'이란 문구가 더 자극적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ji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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