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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한복판에서 때아닌 '노숙 행렬'이 이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캠핑용 의자, 담요, 텐트를 총동원해 엿새간 노숙을 감행한 이들은 입을 모아 '발망'을 외쳤다. 제품 판매를 시작한 5일 오전 8시 기준으로 대기줄에 선 사람들은 400명에 이르렀다.'노숙 패피'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패피'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앞에 '노숙'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붙었다. 한정판 제품을 구매한 후 3~4배 높은 가격에 되팔려는 '꾼'들은 이들보다 한 걸음 더 빨랐다. 매년 해왔던 일인듯 H&M 측 관계자와 여유있게 눈을 마주쳤다.
하루에서 이틀, 심지어 엿새동안 매년 노숙을 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SPA(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은 2004년부터 매년 명품과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발망처럼 대란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지난해 알렉산더왕 컬래버레이션이 출시됐을 때 이틀 전부터 대기한 고객은 제품을 사지 못했단 소식이 불씨를 당겼다. "더 일찍가자." 2박3일 노숙을 해 화제가 됐던 '아이폰6s' 1호 개통자보다 더 빨랐던 '발망 X H&M' 구매자들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올리비에 루스탱이 수석 디자이너로 있는 발망의 제품들은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이번 H&M과 협업을 통해서는 10분의 1가격으로 선보이고 있다. '발망이 아니다. H&M 발망이다', '디자인은 발망이지만 소재나 봉제는 SPA 브랜드 답다'는 의견도 많지만 온라인에선 이미 3~4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한벌에 최고 300만원까지 벌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엿새 전부터 밤새 기다린 사람들은 대부분 '리셀러(재판매자)'라고 보면 된다"는 실제 구매자의 증언도 나왔다. "5일 정도만 기다리면 일반 직장인들이 한 달 버는 월급 못지 않게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씁쓸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리셀러들은 서너 명씩 짝을 이뤄 번갈아 줄을 서고 매장 안에서는 품목별로 나눠 제품을 쓸어담는다. 물건을 구매한 후 판매하던 방식에서 사전 예약을 받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H&M 명품 콜렉션을 판매하는 리셀러 조직이 '시스템화' 됐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모든 게 H&M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H&M은 매년 '글로벌 명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콘셉트로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한정 판매하고 있다. 매장에 얼마만큼 물량을 준비했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제품이 언제 동날지 모르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줄을 서야만 한다.
그렇게 시작된 노숙 행렬에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발망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쇼핑백을 한아름 손에 든 사람들은 플래시 세례와 대기 고객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H&M 입장에서 본다면 희소성을 강조한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H&M에 묻고 싶은 게 있다. 한국은 온라인몰이 특히 발달한 나라다. 그럼에도 H&M이 매년 똑같은 판매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란을 막기 위해 내놓은 조치라는 '쇼핑시간 10분', '구매수량 제한'이란 문구가 더 자극적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jin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