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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성폭행 'DNA' 만으로 유죄…드들강 여고생사건은?

(광주·서울=뉴스1) 윤용민 기자, 이후민 기자 | 2015-10-15 08:58 송고 | 2015-10-15 09:14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14년전 서울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가 유전자(DNA) 증거만으로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이 사건과 유사한 전남 나주의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에도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하급심(지방법원)의 판결에 불과하지만, 대법원에서 이 사건이 유죄로 확정된다면 사실상의 법원성(法源性)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 성폭행 사건과 드들강 사건을 비교해보면, 죄질이나 범죄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범행 시점, 용의자 검거 과정, 용의자의 태도 등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미제로 남은 사건, DNA로 빛을 보다

드들강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01년 2월 4일 새벽. 전남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유역에서 여고생이던 박수연(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박양은 발견 당시 성폭행 당한 채 벌거벗겨져 강에 빠져 숨져 있었다. 목이 졸린 흔적은 있었지만 사인은 익사였다.

경찰은 곧바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었다.

미제사건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던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은 그러나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2012년 9월 전환점을 맞게된다.

대검찰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있던 A양의  중요부위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용의자는 현재 목포교도소에서 강도살인 등의 죄명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김모(38)씨로 확인됐다.

2001년 3월 서울 중랑구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14년이 지났음에도 기소가 가능했던 이유는 역시 DNA법 때문이다.

A씨(당시 25·여)는 자던 중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 눈과 입이 천으로 가려졌고, 스타킹으로 손이 묶인 상태에서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  결국 A씨는 괴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경찰은 A씨의 체내에서 신원미상 남성의 DNA를 채취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 이후 기소중지 상태로 A씨의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했다.

그러던 지난 2010년 시행된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소위 DNA법에 의해 당시 채취된 신원미상 남성의 DNA가 다른 범죄로 수형 중이던 이모(41)씨의 것으로 올해 초 확인되면서 수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

◇혐의 부인하는 똑똑한(?) 용의자들

재수사 초기 박양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던 드들강 사건의 용의자 김씨는 현재는 입장을 바꿔 "그 당시 여고생과 합의 하에 성관계는 한 것 같지만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 역시 범행을 부인하면서 ▲DNA 감정결과를 제외하고는 증거로 제출된 서류들이 기소 직전에 작성된 서류들이어서 증거가 부족한 점 ▲A씨가 괴한의 이미지를 일부 기억하고 있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DNA 감정결과를 무조건 신뢰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무죄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다.

두 사건의 용의자 모두 아직까지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공통점이다. 이들은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DNA가 간접증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드들강 용의자는 불기소, 서울 성폭행 용의자는 기소…왜?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지난 2012년 드들강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지만 지난해 10월 끝내 불기소 처분했다.

박양 시신에서 김씨의 DNA가 발견되는 등 명확한 증거가 있었지만 범행을 부인하는  용의자 김씨와 목격자의 진술만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찰 관계자는 "박양을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A군이 (김씨가) 범인이 아닌 것 같다고 진술한 점과 김씨가 부인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3년 전에 그것도 딱 한번 어두운 밤에 만났던 목격자의 진술이 불기소처분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남는다.

이에 반해 서울 북부지검은 ▲DNA 분석 결과 이씨 외에 동일인이 존재할 확률은 약 296억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 ▲이씨가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던 2003년 여성 6명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 범죄에 쓰인 수법과 A씨 사건에서의 범죄 수법이 유사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기소해 결국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두 사건이 다른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결국 기소는 검찰의 수사 의지에 달려있는데, 김씨는 무기수이고 이씨는 올해 4월 19일 형기를 마친 부분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드들강 사건 전개방향은?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김경)는 지난 14일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상 주거침입강간)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 10년을 명령했다.

법원은 이씨에 대해 5년간 신상정보공개 고지와 12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성폭행 사건이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드들강 사건의 용의자 김씨에 대한 기소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물론 변수는 있다. 성폭행 사건이 상급심 특히 대법원에서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DNA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이다. 만일 대법원이 DNA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김씨가 또 다시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법원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판례의 법원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않지만, 실무적으로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사실상 구속력을 가진다. 결국 성폭행 사건이 상급심에서 어떤 판단을 받느냐가 드들강 사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광주지검은 15일 드들강 사건과 관련해 "원점부터 시작해 수사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드들강 사건의 범인은 김씨가 맞을까. 검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또 법원은 어떤 결정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al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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