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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 한글창제 그 이상의 감동 이끈 합(合)

(서울=뉴스1스타) 백초현 기자 | 2015-10-12 11:13 송고 | 2015-10-12 13:49 최종수정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가 캐릭터와 이야기의 합을 이끌어내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창작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는 2006년 출간된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지난해 초연 무대를 가졌다. 지난 2011년에는 한석규, 장혁, 신세경 주연의 SBS 드라마로도 방송된 바 있다. 작품은 집현전 내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세종의 한글 창제를 담는다.
이야기는 덕금(김건혜 분)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어린 채윤은 고모의 죽음에 슬퍼하고 백성을 구하지 못한 임금을 원망한다. 강렬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0년 뒤 장성한 채윤(김도빈 분)과 세종(서범석 분)의 해후로 이어진다.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가 캐릭터와 이야기의 합을 이끌어내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News1star/서울예술단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가 캐릭터와 이야기의 합을 이끌어내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News1star/서울예술단


해후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세종은 겸사복 채윤을 시켜 살인 사건의 배후를 찾아 낼 것을 지시하고 채윤은 세종에게서 덕금의 죽음에 대해 듣기 위해 그의 뜻을 따른다.

‘뿌리 깊은 나무’ 1막의 8할은 채윤이 담당한다. 채윤은 세종이 뿌린 퍼즐 조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곳곳에 흩어진 퍼즐 조각은 쉽사리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유력한 용의자를 조사해도 진술만 엇갈릴 뿐 범인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한다. 채윤이 첫 번째 퍼즐 조각을 들고 헤매는 사이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처럼 1막은 사건과 단서를 반복하다 끝을 맺어 심심한 느낌만을 감돌게 한다.  
1막은 채윤의 원맨쇼에 가깝다. 주변 인물들은 그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채윤은 여기에 로맨스까지 챙기며 몸집을 키운다. 소이(박혜정 분)와 운명적 첫 만남은 그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게 한다. 당돌하고 넉살 좋은 채윤은 소이 앞에서 깨방정은 물론 솔직하게 제 마음을 표현하며 응원하고 싶은 순애보를 펼쳐낸다. 그는 소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리며 조금씩 성장해간다. 채윤으로 분한 배우 김도빈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은 ‘뿌리 깊은 나무’를 보는 또 다른 재미로 작용한다.

성삼문(박영수 분)과의 합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의 쿵짝은 조선판 브로맨스의 한 획을 그을 만큼 인상적이다. 위기에 처한 성삼문을 구한 후 성삼문이 보인 태도는 그가 얼마나 채윤을 믿고 의지하는 지 짐작하게 한다. 성삼문은 내부의 적을 경계해 왔지만 이를 계기로 채윤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진정으로 신뢰한다. 두 사람은 적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적이 되는 궁궐 안에서 끈끈한 정을 쌓아가며 훈훈한 장면을 일궈낸다.

2막은 1막과 이야기 결을 달리한다. 화두 자체가 다르다. 1막이 의문의 살인 사건과 채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2막은 세종의 한글 창제와 애민정신을 담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1막에서 일렁이던 한글은 2막이 돼서야 비로소 그 형태를 바로 잡고 굳히기 한판에 들어간다. 1막에서 존재감이 다소 미약했던 세종은 2막에서 감정을 쏟아내며 한글 창제의 강한 뜻을 내비친다.

배우 서범석은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세종을 표현해낸다. 초연에 이어 재연 무대에 오른 그는 인간 세종을 그려내며 관객을 울고 웃게 한다. 극 중 세종은 덕금과 원통하게 죽은 백성의 울음소리를 잊지 못한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강한 군주가 되고자 했던 세종의 바람과 한글 창제로 백성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고자 했던 그 큰 뜻은 서범석이라는 배우의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군무는 눈을 뗄 수 없는 진풍경을 만들어내며 서울예술단의 진가를 증명한다. 무대는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인물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이들이 일궈낸 아름다움에는 슬픔이 녹아 있다. 사람답게 살고자 한 이들의 눈물이 배어있다. 한글 창제의 깊은 뜻이 몸짓을 타고 흐르며 보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공녀 차출 장면이 그러하다. 공녀들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어린 무휼은 누나를 찾아 헤맨다. 어린 세종 역시 백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방황한다. 무대에는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 슬픔은 오래가지 않는다. 슬픔은 금세 희망으로 치환되고 아련히 잔상만 남길 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슬픔에 무너지지 않고 일어서며 ‘사람답게 사는 것’, 그 뜻을 실현할 내일을 그린다. 어린 세종과 무휼은 손을 맞잡고 강한 나라를 위해 백성이 강해져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 순간 가슴 속에는 뭉클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손발을 오글거리게 하는 일부 장면은 한껏 끌어올린 몰입도를 한순간에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소이를 구하러 가는 채윤의 모습은 만화영화에서 볼법한 연출로 실소를 자아낸다.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세종의 칼솜씨는 가무극을 보는 것인지 개그 콩트를 보는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아쉬움은 극히 일부일 뿐, 극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며 관객을 매료시켰다. 살인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한글 창제의 뜻을 관통하고 세종의 애민정신으로 귀결됐다.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 창제의 깊은 뜻이 백성에 있음을 일깨워줬다. 캐릭터와 배우의 합, 캐릭터와 이야기의 합, 서울예술단과 작품의 합은 한글날이면 ‘뿌리 깊은 나무’를 무대에 오르게 하는 원동력으로 2016년 한글날을 기대하게 했다.


poolchoy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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