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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알랑가몰라'…수화에도 '사투리·은어'

(대구ㆍ경북=뉴스1) 배준수 기자 | 2015-10-09 07:00 송고
청각장애인인 권석현(73)씨와 박종권(36)씨가 '헉'하고 놀랄 때 쓰는 신조어인 '헐'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중장년층에서는 뒷목덜미를 잡는 식이고, 젊은층은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가 쓸어내리는 표현을 쓴다. /2015.10.8/뉴스1 © News1 배준수 기자
청각장애인인 권석현(73)씨와 박종권(36)씨가 '헉'하고 놀랄 때 쓰는 신조어인 '헐'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중장년층에서는 뒷목덜미를 잡는 식이고, 젊은층은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가 쓸어내리는 표현을 쓴다. /2015.10.8/뉴스1 © News1 배준수 기자
엄지를 접고 네 손가락을 펴보이면 '싸가지 없다(예의 없다)', 뒷목을 잡거나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가 쓸어내리면 '헐(허탈하거나 어이 없을 때)', 양손을 펴서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손짓으로 하면 '썸타다(호감을 갖고 만나다)'.

듣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농인(聾人)들에게는 수화(手話)가 한글이다.
말 대신 손짓과 표정으로 전하는 시각언어인 수화에도 사투리가 있다. 그들만의 은어(隱語)와 신조어도 있다.

청각장애인인 박종권(36)씨는 대구에서 친구들과 냉면을 먹으러 갈 때는 오른팔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내린다. 기계로 냉면을 뽑는 모습을 흉내내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 친구는 검지와 중지를 젓가락처럼 만들어 입술에 대고 가로로 저어 냉면을 표현한다.
말에 사투리가 있는 것 처럼 수화에도 지역 마다 단어의 표현 방식이나 뜻이 다르다. 서울에서는 자장면으로 통하는 수화가 대구에서는 라면이 된다.

돈 표현도 도시와 농촌에 따라 다르다.

도시에서는 1만원권 지폐를 세종대왕의 수염을 쓰다듬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농촌에서는 고무줄로 지폐를 묶는 시늉을 한다. 돈다발을 묶는 것을 본떠서다.

새로 생긴 5만원권은 신사임당의 머리에 있는 비녀를 꽂는 모습을 수화로 만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은 손가락으로 'F'를 만든 뒤 책을 펼치듯이 하고, 카카오톡은 'ㅋ'을 손가락으로 만든 뒤 손바닥에서 동그라미를 그린다.

아이폰의 경우 이 스마트폰을 만든 애플사의 로고인 사과를 깨무는 몸짓을 한다.
대구시농아인협회 권명화(32·여) 팀장과 김재경(27) 컴퓨터 강사가 신조어인 '썸타다'와 '아이폰' 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두 손을 펴서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손짓으로 대신하는 것이 '썸타다', 애플사의 로고인 사과를 깨무는 몸짓을 하면 '아이폰'이 된다./2015.10.8/뉴스1 © News1 배준수 기자
대구시농아인협회 권명화(32·여) 팀장과 김재경(27) 컴퓨터 강사가 신조어인 '썸타다'와 '아이폰' 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두 손을 펴서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손짓으로 대신하는 것이 '썸타다', 애플사의 로고인 사과를 깨무는 몸짓을 하면 '아이폰'이 된다./2015.10.8/뉴스1 © News1 배준수 기자

이런 사투리나 신조어 수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준말 처럼 표준수화 작업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35만명의 농인이 있지만 2000년께 처음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준수화가 만들어졌으며, 이마저 돈을 세는 단위나 실생활 먹거리 단어는 없다.

국립국어원의 한국수어사전에는 1만2457개의 단어만 기록돼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각 지역 실정에 맞는 수화를 만들어 소통했고, 이것이 사투리나 신조어, 은어 처럼 돼버렸다.

권석현 대구시농아인협회 수성구지부장은 "농인들끼리는 표준수화와 달리 지역 마다 다른 손짓으로 실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단어나 표현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투리 수화가 있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설사 표준수화가 있다 하더라도 해당 지역의 농인들끼리 편의상 수화를 달리 쓰기 때문에 사투리화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영미 대구시농아인협회 부장은 "596돌 한글날을 맞아 수화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면서 "전국 농인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준수화는 농인들끼리를 넘어 사회구성원 모두와의 소통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pen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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