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마음이 아픈' 아이들…같이 아픈 엄마들

아이 걱정에 부모들도 '마음의 병' 얻어…"괜찮다" 뿐
전문가 "아이들의 문제, 가정 전체의 문제로 바라봐야"

(서울=뉴스1) 사건팀 | 2015-09-05 08:00 송고
/ (서울=뉴스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 (서울=뉴스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중학교 2학년인 A군은 어린 시절부터 오롯이 어머니의 관심만을 받아왔다. 바쁜 직장 탓에 아버지는 아들의 육아를 아내에게 전담했고, 이때문인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은 '강박'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서면 '똑바로 서라'고 했고, 소파에 잠시라도 기대 쉬려고 하면 '바로 앉으라'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적했다.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 탓인지 아들의 말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들은 친구들과의 관계마저도 맺기 어려울 지경에 처했다.

아들은 결국 이른바 '조금 논다는 아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장난으로 시작된 놀림은 결국 '빵셔틀'로 이어졌지만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법을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아들은 이에 저항할 수 없었다.

아들의 감정은 결국 어머니를 향해 폭발했다. 지난해 가을 사춘기에 접어들며 덩치도 커진 아들의 저항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져만 갔고, 아들은 어머니의 사소한 잔소리에도 주먹으로 대항했다.
아들은 결국 지속적인 급우들의 괴롭힘 끝에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곤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는 며칠 동안 집을 나가 무작정 전국을 돌아다니곤 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급기야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흉기를 들고 부모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머니는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고민끝에 한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며칠 동안 이어진 상담을 통해 수많은 눈물을 흘린 어머니는 "상담을 받으며 내가 얼마나 아들을 강압적으로 대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했다"며 "지금은 아들을 위해, 또 우리 아들과 같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위해 전문적인 심리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다니던 중학교에 찾아가 '부탄가스 테러'를 벌인 중학생 이모(15)군으로 인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이군은 평소 소심한 성격 등으로 인해 학우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이로 인해 우울증 등의 마음의 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군처럼 마음의 병을 얻은 아이들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가정폭력과 학교 폭력, 스스로와의 갈등 등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많아져만 가는 갈등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 부모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아들이 우울증을 겪었던 사례를 털어놨다. 그는 중학생 때는 공부도 전교 상위권이었고 학생 회장까지 맡았던 이른바 '모범적'인 아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시작한 건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면서부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급격하게 성격이 변하고 학업에도 열중하지 않아 성적은 떨어졌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 자주 날을 세웠다"며 "회의적으로 성격이 변했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부모에게 돌렸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부모에게 상스러운 욕설을 하고 아버지와는 심한 싸움을 벌였다"며 "툭하면 '누구를 죽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우울증이라면서 약을 처방해줬는데 약을 먹으면 아이가 기운이 없고 계속 잠만 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인 50대 자영업자 신모씨는 3년 전 아들이 고등학생이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집에서는 조용한 아들이었지만 종종 학교로부터 학우를 때렸다거나 '싸움을 벌였으니 부모 상담이 필요하다'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도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결국 아들은 학교 측 권고로 다른 학교로 전학까지 가야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얼굴이나 팔을 다쳐 집에 돌아오고 부모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다.

그는 "다행히 졸업 무렵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서 아들이 마음의 병을 고쳤지만 당시엔 아이의 엄마도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가족 전체가 힘들었었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부탄가스 폭발 사건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이모군이 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전피의자심문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뉴스1) 손형주 기자 © News1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부탄가스 폭발 사건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이모군이 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전피의자심문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서울=뉴스1) 손형주 기자 © News1


학교 폭력은 물론 가정 불화 등으로 인해 늘어나는 '아픈 아이들'로 인해 힘든 사람은 아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부모 역시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을 둔 부모 B씨는 금쪽 같던 아들이 성난 사자처럼 바뀐 것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라고 말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PC방을 종종 다니던 아들은 순식간에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들은 게임 중독에 빠졌고, 게임을 즐기다 밤을 꼴딱 새워 아침에 등교조차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부모는 아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특단의 조치로 컴퓨터를 할 수 없도록 전선 등을 모두 다 없애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은 이에 컴퓨터와 모니터를 모두 부수고 이를 부모에게 던지며 욕설을 하는 등 폭력으로 답했다.

결국 아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올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나 이 상처는 아들의 것만이 아니었다. 이 상처는 아들의 부모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지옥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한 부모는 우울증을 얻었고 현재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한편 교회에 나가 종교에 의존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27·여)씨는 "가정 폭력 때문에 상처를 받은 학생 때문에 걱정"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로 인해 가족 전체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데, 이 여학생은 평소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지내지만 얼굴의 표정에 늘 그늘이 묻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주기적으로 이 학생의 어머니와 상담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은 물론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기도 했다. 병원은 이 학생은 물론 어머니에게도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학생의 어머니는 "나는 괜찮다"며 "딸이 커갈수록 왕따나 다른 문제에 휘말릴까봐 걱정이다"라고 오로지 자식 걱정만을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점차 '마음에 병을 얻은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아이에 대한 통제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가정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한기 대구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부모들이 가정을 통제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최근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아이에 대한 통제력이 상당부분 줄어들었다"며 "이같은 부모들의 관심 부족이 결국 냉담한 가정을 만들고, 아이들의 우울증을 가중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도 아이에 대한 부모의 통제력을 감소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라며 "또한 이 역시 아이의 우울감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울증 등을 겪는 아이들로 인해 부모까지 몸과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에 대해 "유난히 기질적으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아이들을 키우는 경우 부모들도 결국 지쳐 포기하게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부모들의 잇따른 좌절감이 결국 마음의 병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의 병을 얻은 청소년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한 상담사 역시도 "가정의 환경과 부모로부터의 교육이 아이의 심리 발달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학교 부적응과 부모의 양육태도 역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 양극화로 인한 경쟁 심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아이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시간이 줄게 되고, 더불어 문제를 발견해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늘어 심한 갈등 상태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맞벌이 부부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아이가 인간에 대한 애착심을 어느정도까지 형성하는 생후 18개월까지는 주양육자인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우울감이 높아지는 원인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을 원인으로 꼽으며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스스로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결국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례를 수차례 봐 왔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보통 좌절감을 느낄 때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세상이나 제 3자에게 불만을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며 "머지않아 아이들은 이같은 전가가 '미봉책'이었음을 깨닫고 우울해하며 감정을 폭발시키게 된다"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공감능력과 배려심 상실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아이의 문제를 가정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며 "사실 아이의 문제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에 아이의 문제를 가정 전체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는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마음의 병을 얻은 아이에 대한 상담도 아이 개인이 아닌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신체검사를 하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심리검사를 해 빠르게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 불상사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jung9079@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