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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열흘' 쪽방촌 독거노인들 "죽을 수 없으니 사는거죠"

폭염·열대야·모기 3중고 … 6·25 전쟁 이후부터 60여년간 가난하고 무더운 여름 견뎌

(부산ㆍ경남=뉴스1) 민왕기 기자 | 2015-08-08 10:05 송고

    

7일 오후 부산 범일동 쪽방촌에서 만난 최모씨. 화장실도 없는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2015.08.0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7일 오후 부산 범일동 쪽방촌에서 만난 최모씨. 화장실도 없는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2015.08.0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7일 오후 1시 부산 동구 범일동 쪽방촌. 단칸방에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쳤다. 한 눈에 봐도 오래된 선풍기는 코드가 뽑혀 있었다. 최 모(63)씨의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쪽방촌에서 자라 40여년을 돈 벌러 떠돌다가 몇 년 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탓에 물에 적신 수건을 머리에 올려놓거나, 냉장고에 식힌 생수통을 끌어안고 힘겹게 더위를 견딘다고 했다. 화장실도 없는 1평 남짓한 공간에 통풍조차 되지 않으니 ‘죽을 맛’이라고 했다.
 
“너무 견디기 어려울 땐 삼십분을 걸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원에 나가. 방에 있는 것보다 그게 더 나으니까.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이 나. 형편대로 사는 거지 뭐….”
 
쪽방 앞의 아스팔트가 쩔쩔 끊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에도 이력이 난 듯했다. 힘없이 웃고 있는 얼굴에 이가 반쯤 빠져있었다. 방안엔 살포형 모기약 2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모기가 힘들어. 밤엔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자는데 모기 수십 마리가 덤벼. 문 앞에 하수구를 장판으로 덮어놨는데도 그래. 모기약을 사다놓고 뿌리는데도 좀처럼 줄질 않아. 잠을 못 잤어. 제발 좀 지나갔으면…. 다음 주에 비가 온다니까 기다려 봐야지.”
부산 범일동 쪽방촌은 일제 시대 매축사업으로 만들어졌다. 그 시기에는 마부들과 짐꾼들이 머물렀고, 6.25 전쟁 후엔 가난한 피난민들이 머무르며 삶의 터전을 일궜다. 2015.08.0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부산 범일동 쪽방촌은 일제 시대 매축사업으로 만들어졌다. 그 시기에는 마부들과 짐꾼들이 머물렀고, 6.25 전쟁 후엔 가난한 피난민들이 머무르며 삶의 터전을 일궜다. 2015.08.0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쪽방촌 주민 상당수는 독거 노인들이다. 주변에 새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폐·공가 딱지가 군데군데 붙은 쪽방촌은 그대로였다.
 
이곳은 오래전 매축지라고 불렸다. 일제가 부산에 대륙지배의 발판을 놓기 위해 시모노세키와 부산항을 직항으로 연결하고 일본인들을 부산으로 대거 이주시키면서, 매축(매립) 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매축지는 부두에서 내리는 말이나 마부, 짐꾼들이 쉬는 곳이었다. 해방이 되고 얼마 후 6·25 전쟁이 터졌고 가난한 피난민들은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쪽방촌의 역사는 그렇게 6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무덥고 가난했던 여름을 예순 번이나 건넜다.

골목에서 만난 신 모(67)씨는 “비 오던 날인데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보이더라고. 모자를 뒤집어쓴 사람이 옷걸이로 창문을 열려고 해. 소리를 질렀지. 그랬더니 후다닥 도망을 치데. 그 후로 창문을 못 열고 잤는데, 요즘엔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고 자. 이런 더위도 이런 더위가 없어. 징그럽게 더워”라고 했다.
 
그녀는 “스물 셋에 시집 와서 벌써 사십년이 넘었어. 여기 사람들이 없이 살지만 마음씨가 참 좋아. 동사무소 복지과 직원들이 왔다가는 다른 곳으로 전근 갈 땐 다들 울고 가. 정들어서 보고 싶을 거라고…”라며 말을 이었다.
 
에어컨이 귀한 마을이다. 민간 복지단체가 도서관 겸 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화요일마다 국수를 나눠주고, 폭염에 지친 주민들에게 에어컨도 틀어준다고 했다. 노인들은 “거기 가면 에어컨이 있으니까 정말 시원해”라고 했다.

부산 범일동 쪽방촌 마을에서 폐지와 박스를 주워 파는 한 할머니가 자기 몸보다 커다란 수레를 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2015.08.0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부산 범일동 쪽방촌 마을에서 폐지와 박스를 주워 파는 한 할머니가 자기 몸보다 커다란 수레를 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2015.08.0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오후 2시가 되자 작렬하는 태양에 쪽방촌 마을은 찜통이 됐다. 수건을 목에 두른 사람들이 빈 상가 그늘에 앉아있고, 그 사이로 바짝 마른 할머니 한 분이 종이박스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할머니는 “덥다마다요. 아침부터 굉장해요. 땡볕이라 힘에 부치죠. 에휴, 죽지 못해 살지. 그래도 죽을 수는 없으니까 사는 거지요. 우리는 이렇게라도 살아야 되는 거니까”라고 했다.
 
매축지 마을 부근 진시장에서 박스를 가져다 손수레에 가득 실어다 팔면, 4000원~5000원을 준다고 했다. 고물상 인근까지 손수레를 밀어드리자 ‘이제 됐으니 가보라’며 손을 흔들었다. 쩔쩔 끓는 폭염 속에 할머니는 자기 몸보다 커다란 손수레를 끌고 연신 땀을 훔치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범일동 쪽방촌에 이 험준하고 험란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은 쪽방촌 사람들에게 너무 먼 천국이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쪽방촌 마을을 내려다보며 근처 아파트들이 대조적으로 서있었다. 가을이 지나면 또 견디기 어려운 추운 겨울이 되돌아 온다고, 쪽방촌 사람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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