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이상길의 영화읽기]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분노에 관해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5-07-25 09:00 송고
 

분노에도 종류가 있다. 화를 낸다고 싸잡아서 같은 분노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분노란 것도 엄연히 격이란 게 있다.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욕을 들어 먹었다고 화를 내는 것과 부당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에 화를 내는 건 확실히 다르다.

전자는 분노를 가급적 잘 다스리는 게 좋지만 후자의 경우 화를 내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왠지 비겁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살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란 게 반드시 오기 마련이고 어떤 분노는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분노와 관련된 6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 <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은 언뜻 보기엔 이야기 속 분노들이 모두 가벼워만 보인다.

그냥 치솟는 화를 잘 다스려 넘어가면 될 걸 그리 못해 난리부르스를 추는 그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마냥 우습기만 하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하나씩 진행되다 보면 점점 분노의 무게가 느껴지면서 결코 가볍게 볼 영화가 아님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렇다. 이 영화는 블랙코미디다.

사실 분노도 권력이다. 가진 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쉽게 낼 수 있다.

하지만 <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에서는 소위 약자들의 분노가 두드러진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강자에 의한 억압, 부패한 권력,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 관료주의 등 지금 인간세상을 좀먹고 있는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약자들의 분노다.

그리고 그 약자는 영화 속 등장인물에서 벗어나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도 해당된다는 점에서 때론 무섭기까지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분노를 얼마나 잘못 사용하고 있던가.

군 시절 나는 두 명의 소대장을 겪었다. 그런데 똑같이 ROTC(학군단) 출신 소대장이었지만 두 사람은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에서 많이 달랐다.

이등병 때 겪은 첫 소대장은 병사들에게 화를 낼 때 계급이 아닌 행위에 따라 분노를 표출했지만 상병 때 맞이한 새 소대장은 조금 달랐던 것.

그는 일부 병장들이 야밤에 내무실에서 술을 먹다가 들켰을 때는 그냥 넘어갔다가 자기 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오자 일병 계급의 취사병에게 완전군장을 시킨 뒤 연병장을 돌렸다. 반대가 맞지 않을까.

아무리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라지만 왠지 씁쓸했다. 하지만 그 씁쓸함은 군대를 재대하고 사회에 나오니 더욱 자주 겪는 일이 됐다.

<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이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분노는 엄청난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

영화 속 마지막 결혼식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무리 중에 누가 화를 내면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금세 쥐 죽은 듯 조용해지고 분노에 주목하게 된다. 그가 강자든 약자든 상관없다.

그렇게 분노에겐 상황을 바꾸는 힘이 있다. 때문에 제대로 된 분노는 가끔 '저항'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또 저항이란 잘못된 것에 대한 분노를 의미한다.

미국 시인인 E.W. 윌콕스도 이런 말을 남겼다.

"저항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죄다."

<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은 아르헨티나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슴에 많이 와 닿았던 사실 하나는 우리와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피부색깔과 언어도 다른 그들이지만 사는 모습은 어찌 그리 똑같은지.

때문에 그들의 분노는 곧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분노와 근본이 같다는 점에서 동질감마저 느껴지더라.

그리하여 영화가 끝날 무렵엔 그들의 분노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참고 사는데 익숙해 그러지 못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더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에서 해리(콜린 퍼스)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분노도 가끔 사람을 만든다. 아니, 다들 제대로 분노할 줄만 알아도 세상은 많이 바뀌지 않을까.

5월21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lucas0213@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