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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40년만에 두 번 쫓겨나는 '부산 만덕동 철거민들'

70년대 영도·초량 강제이주민 재개발에 또 내몰려…"보상금으론 월세도 못내"

(부산ㆍ경남=뉴스1) 민왕기 기자 | 2015-07-03 06:42 송고 | 2015-07-04 06:54 최종수정


2일 부산시 북구 만덕 재개발지구 안에 한 할머니가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서민파탄'이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인상적이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2일 부산시 북구 만덕 재개발지구 안에 한 할머니가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서민파탄'이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인상적이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2일 오전 11시 부산시 북구 만덕 재개발 5지구.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놀이터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이름은 조말순, 나이는 여든 다섯. 40년간 살던 집이 철거대상이 돼 반송동으로 이사했지만, 이웃들이 그리워 만덕동 놀이터로 매일같이 나온다고 했다.


“옛날에도 배고픈 세상이었죠. 수십년 전 부산 영도에서 재개발 한다고 나가라고 해서 만덕동으로 왔는데, 또 재개발한다고 나가라고…. 오래 살아 정들고 그리운 곳이라 매일 와요. 이웃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같이 지내던 할머니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요.”


조말순 할머니는 가만히 앉아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철거민 1세대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는 부산 영도와 초량동 등에 살던 주민들을 만덕동에 강제 이주시켰다. 그때도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이었다. 할머니와 같은 처지의 70~80대 노인들이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이었다.


당시 철거민들에겐 ‘4호 연립’과 ‘2호 연립’이 주어졌다. 철거민들은 20년 상환으로 땅값과 집값을 갚았다. 만덕 1동은 철거민들의 정착지이자 부산의 역사였다.


폐자재를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들이 굉음을 냈다.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얼마 전까지 아름답던 마을은 깨진 유리조각과 폐목재, 쓰레기들로 을씨년스러웠다. 금정산 끝자락 상계봉 아래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다.


부산 북구 만덕동 재개발 지구가 9월까지 철거 예정이다. 주민들은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부산 북구 만덕동 재개발 지구가 9월까지 철거 예정이다. 주민들은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2005년 부산시는 만덕 1동 일대 18만㎡를 주거환경 개선사업지구로 지정했다. 2007년 LH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됐고 2011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금이 산정됐다. 4호 연립은 6500만~7500만원, 2호 연립은 8500만~9500만원 선이다. 2015년 현재 부산은 부동산 붐을 타고 아파트는 물론 집값과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마을에서 만난 박선석(66)씨는 “대개 빚이 있어서 보상금을 은행에 주고 나면 전세는커녕 월세도 얻기 힘든 처지”라며 “양지 바른데다 동래, 구포와 가깝고 교통이 좋아서 LH가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는 이득이 크다고 보고 눈독을 들였을 것”이라고 했다.


추어탕을 끓여 팔아 생계를 유지해온 김보이(75)씨는 “가건물이라고 220만원 준대요. 24일날 문 닫을 거예요. 외상값을 받을 게 있어서 그래요. 이제 여긴 사람이 없어요. 큰 아파트 들어오면 북적북적 할려나. 잘 사는 사람들만 늘 잘 살고…”라고 했다.


주민들은 2012년 7월 부산시에 정비구역 지정해제신청을 했고 부산시가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이 진행됐다. 결국 지난달 24일 대법원은 주민들의 항고를 기각했다.

부산 북구 만덕동 재개발 지구에 1세대 철거민들이 살았던 '4호 연립'. 주민들은 대문을 달고 내부를 고쳐 살았다고 한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부산 북구 만덕동 재개발 지구에 1세대 철거민들이 살았던 '4호 연립'. 주민들은 대문을 달고 내부를 고쳐 살았다고 한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이날 현지에서 만난 최수영 만덕주민공동체 대표는 “재개발 주민동의서를 1명이 수 십장을 써낸 것이 드러났고 싸인도 없는 동의서도 나왔다. 부산시에 주민동의서를 요구했더니 분실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재개발 사업지구내 불량주택(D등급 이하)이 90%가 넘는다고 평가됐다. 그런데 건축 전문가들이 실사한 것이 아니라 동네 통반장들이 임의적으로 적어낸 것이다. (집앞 주택을 가리키며) 저 집도 불량주택으로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1900여 세대이던 주민들은 대개 떠나고 100여 세대만 남았다. 드문드문 헐린 집 사이에 사람 사는 모습이 간혹 보일 뿐이다.


아직 퇴거하지 않은 만덕동 주민들은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덕 5지구 전체가 아니더라도 일부는 현지 개량방식(리모델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대법 패소 판결까지 난 터라, LH와 부산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법원은 항소심 판결문에서 '주민동의서 문제 등 법률 위반을 일부 인정하지만, 공공복리가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 주민은 “돈 때문”이라고 맞받았다.


백발의 조말순 할머니가 아직 놀이터에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970년대 강제 이주 1세대 철거민이었던 할머니가 두 번째 철거민이 되어 다시 고향을 잃고 그리운 이웃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시 북구 만덕동 재개발 지구 안에 놀이터에 잡초들이 돋아있다. 퇴거하지 못한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부산시 북구 만덕동 재개발 지구 안에 놀이터에 잡초들이 돋아있다. 퇴거하지 못한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2015.7.2 © News1/민왕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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