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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승용차 노획한 학도병 임일재 옹…"전쟁 비극 재발하지 않길"

(대구ㆍ경북=뉴스1) 배준수 기자 | 2015-06-25 11:39 송고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해 '김일성 자동차'를 노획한 임일재(80·대구 남구)옹이 그동안 간직해온 자료를 공개했다. © News1 배준수 기자
6.25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해 '김일성 자동차'를 노획한 임일재(80·대구 남구)옹이 그동안 간직해온 자료를 공개했다. © News1 배준수 기자

대구에 사는 6·25전쟁 학도병 출신 임일재(80)씨가 김일성이 타던 승용차를 노획한 과정을 자세히 공개했다.

그가 펴낸 '김일성 승용차 이렇게 노획했다'는 제목의 수기집을 통해서다.

25일 임씨에 따르면 1950년 10월22일 김일성이 경북 칠곡군 왜관읍까지 타고 다니며 인민군을 독려했던 옛 소련제 '지스(ZIS) 리무진'을 노획했다.

그는 "65년 전 6사단 수색대원으로 교전을 치러 노획한 승용차를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며 "이땅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생생히 전할 또다른 역사자료가 될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전쟁 당시 6사단 수색대와 2연대가 확보했던 '김일성 승용차'는 1948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이 모택동과 김일성에게 1대씩 선물했던 8기통 7인승으로, 경남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에 있다가 지금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안동농림중학교(현재 한국생명과학고) 4학년(15세)이던 임씨는 1950년 8월23일 피난길에서 부모 몰래 학도병에 지원, 입대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국군이 북진하며 인민군을 쫒았고, 임씨가 속한 6사단 수색대는 평안남도 개천에서 야간수색 활동을 벌이다 생포한 인민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으로부터 "회천강변 기슭에 김일성이 버리고 간 승용차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소대장과 10명의 대원으로 이뤄진 수색대는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신흥동 청청강변에서 '김일성 승용차'를 발견했다. 북진하는 국군에 쫓긴 김일성이 평북 회천 방면으로 향하는 다리가 폭파되자 차를 버리고 것이다.

인민군 200여명과 두차례의 교전 끝에 노획한 이 승용차는 최고의 전리품으로 이승만 대통령에게 진상됐다가 여러번 주인이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1951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 주한 미8군 초대 사령관 윌튼 해리스 워커 중장이 차량 사고로 숨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워커 중장의 부인에게 '김일성 승용차'를 선물했다.

이후 미국 자동차 수집상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파악한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이 김우중 당시 대우실업 회장에게 7만5000달러를 지원받아 구입한 뒤 노획 31년 만인 1982년 10월22일 국내로 가져왔다.

러시아 기술자들의 원형 복원을 거쳐 경남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에 있다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옮겼다.

임씨는 "이곳저곳 돌고도는 기구한 팔자를 겪은 '김일성 승용차'가 공교롭게도 우리가 노획한 10월22일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와 기뻤다"면서도 "당시 산화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국가유공자가 된 사실 조차 죄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임씨는 "'김일성 승용차'를 노획한 배경에는 북진할 수 있도록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미군의 도움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반미감정에 휩싸여 이를 퇴색시키는 사례가 많은데, 잘못됐다"면서 "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학도병들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가 형편이 없다"며 원망섞인 말도 전했다.

임씨는 "몇년 전 '김일성 승용차'를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 차를 보면서 전쟁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참한 것인지 지금 세대가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쟁이 발발한 오늘(6월25일) 하루만이라도 포화 속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기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pen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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