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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 하던 시골 아이들도 귀기울이게 한 천상의 목소리

[르포]신영옥 출연 '당신을 위한 노래' 강원도 철원 공연…문화예술委 주최 문화순회 기획사업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5-06-11 11:29 송고
소프라노 신영옥 © News1
소프라노 신영옥 © News1


강원도 철원군 종합문화복지센터 체육관. 이곳에서 모처럼 음악회가 열렸다. 마을 사람들이 500여명이나 찾아왔다.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대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든 '꺄르륵' 대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무대에서 소프라노 신영옥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딴 짓을 멈추고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시골 마을 아이들의 귀에도 세계적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소프라노 신영옥과 모스틀리 필하모닉 그리고 철원소년소녀합창단이 출연한 공연 '당신을 위한 노래' 행사가 지난 10일 밤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아르코순회사업추진단과 철원군청이 주관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재원을 댔다.

철원 뿐 아니라 앞으로 거제(경남), 평창(강원), 합천(경남), 남해(경남), 함평(전남) 등 문화 인프라 및 접근성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철원 공연에서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페의 '경기병 서곡'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잇달아 연주하며 시작을 알렸다. 상임지휘자 박상현은 사회까지 맡아 "오늘 공연은 참 특이하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침묵시위를 하시는 것 같다"며 관객들의 긴장감을 풀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의 여파로 공연장 입구에서는 철원군청 소속 직원 4명이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준비해 배포했고, 공중보건의는 관람객 전원의 체온을 확인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소프라노 신영옥이 무대에 등장하자 느슨하던 객석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신영옥씨는 장일남의 '비목'과 세라 브라이트먼의 '넬라 판타지아'를 연속해 불렀다. 세계적인 오페라가수의 무대를 바로 5m 앞에서 무료로 관람하는 체험이었다.

리릭 콜로라투라 음역대의 소프라노 신영옥은 1990년 메트로폴 리탄 오페라 내셔널 카운슬 오디션 및 로렌 자커리 콩쿠르, 그리고 올가 쿠세비츠키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 오페라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베르디 서거 100주년을 기념 오프닝 나이트, 세계 무역 센터 참사 피해자 가족을 위한 자선 갈라에 출연했으며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라몬 바르가스 등 세계적 성악가와 함께 공연했었다.

공연을 보러온 철원여중 재학생들은 그러나 "소프라노 신영옥이 누군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진짜 잘 부른다"고 입을 모았다. 한 철원주민은 "경기도 포천만 하더라도 이런 행사가 가끔 열리는데 철원은 지금껏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길이 없었다"며 "아이들이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듣겠지만 이건 큰 문화충격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신영옥과 같은 무대에 섰다는 것이 철원소년소녀합창단 단원에게는 얼마나 큰 영광이겠나. 앞으로 이런 행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남녀 청소년 45명으로 구성된 '철원소년소녀합창단'은 소프라노 신영옥과 함께 홍난파의 '고향의 봄'을 부르며 공연의 절정을 장식했다.

철원주민의 기립박수 속에서 신영옥은 앵콜곡으로 오페라 '루치아'에서 '흩뿌려라 쓰디 쓴 눈물을'과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이번 행사를 마쳤다.

신영옥씨는 지난 6월7일 호국보훈의 날 나라사랑 음악회에 참석차 잠시 방한했었다. 그는 문화 소외지역을 위한 이번 행사의 참여를 섭외 받자 흔쾌히 승락했다. 신씨는 "기회가 없어서 그랬지 이전부터 이런 행사에 동참하고 싶었다"며 "마침 그 자리에 큰 언니도 있었는데 '무조건 나가라'며 저를 응원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함께 공연한 철원소년소녀합창단 단원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아까 리허설 때 들었는데요. 커서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어린 친구들이 있었어요. 꿈을 포기하지말고 힘들더라도 계속 노력하면 좋겠어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응원할게요."

상임지휘자 박상현과 모스틀리 필하모닉은 2003년 이후 신영옥씨가 귀국 공연할 때마다 전담으로 협연하는 오케스트라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척척 손발이 맞는 수준이었다. 공연의 음향 또한 전문기술진의 노력으로 체육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울림을 완성시켰다.

한 60대 철원 주민은 20년 전 서울에 살던 시절에 장충동 국립극장을 가본 이후 처음으로 와 본 공연이라 했다. 그런 그가 사회를 맡았던 지휘자 박상현를 두고 쓴 소리 한 마디를 건넸다. "무대 위에서는 '소프라노 신영옥'이라 호칭해야 맞지요. 아무리 친분이 있더라도 사회자가 '신영옥 선생님'이라 호칭을 하면 되겠소?" 

공연 관계자들은 "문화소외 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마음만큼은 문화와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행사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소외계층 문화순회 기획사업 '당신을 위한 노래'에서 공연중인 소프라노 신영옥 © News1
소외계층 문화순회 기획사업 '당신을 위한 노래'에서 공연중인 소프라노 신영옥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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