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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베병을 아십니까'…그들이 블랙베리를 쓰는 이유

(서울=뉴스1) 김진 인턴기자 | 2015-05-25 09:00 송고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어요."

'블베병' 환자들의 말이다. 블베병이란 '블랙베리 병'의 줄임말로 블랙베리 스마트폰에 심취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스마트폰이 나와도 블랙베리만 고집하거나 중증인 경우 수집까지 한다. 

블랙베리 국내 사용자 수는 2014년 기준 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 전성기였던 2011년 10만명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4만명은 견고하다. 비좁은 화면, 툭하면 멈추는 운영체제(OS), 인수설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모회사까지. '스마트'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블랙베리가 마니아층을 보유한 이유는 무엇일까. 블베병 환자들을 초기-중기-말기로 나눠 그 증상과 매력 포인트를 짚어봤다.

쿼티자판이 채택된 블랙베리 단말기. <span><br /></span>
쿼티자판이 채택된 블랙베리 단말기. 

초기: "똑같은 스마트폰은 거부한다"

대학원생 A(27)씨는 한 달 전 블랙베리 세계에 입문했다. 해외 사이트에서 9달러(약 1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생 첫 블랙베리를 손에 넣었다. 직전 삼성 갤럭시 노트2를 썼다는 A씨는 "디자인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들과 똑같은 디자인이 지겨웠는데 블랙베리는 저 나름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매력적이었다"며 고 말했다. 또 "요즘 스마트폰에는 기능이 많은데 실제로 사용하는 건 몇 개 없다"며 "오히려 전화, 메신저 이용만 하는 내겐 블랙베리가 더 실용적이다"고 장점을 꼽았다. 

사용자들은 대부분 "블랙베리의 디자인이 첫 구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블랙베리의 두툼한 디자인은 늘씬한 타사 스마트폰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개성 있는 하우징(housing)도 가능하다. 하우징이란 기존 디자인을 사용자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것으로 기기 색부터 조명 색, 키보드 자판까지 그 범위가 넓다. 이미 블랙베리 하우징을 전문적으로 하는 국내업체들이 많고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금방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직접 분해해가며 하우징을 하기도 한다. 동영상공유사이트 유투브에는 2만5000개에 달하는 하우징 관련 영상이 게시돼 있다.
중기: "다른 브랜드 써봤지만… 포기할 수 없다"

직장인 B(30)씨는 5년째 블랙베리를 사용하고 있다. Q9000, Q9900에 이어 Q5를 사용중이다. 한때 아이폰을 써보기도 했다는 그는 "그냥 다시 사는 게 약이다"며 블랙베리의 중독성을 언급했다. 그는 "블랙베리 특유의 키보드 자판이 그리웠다며 "아무리 기능이 좋은 스마트폰도 블랙베리의 '쫄깃한 터치감'을 대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옥수수알처럼 붙어있는 쿼티 키보드 자판은 블랙베리의 마스코트다. 블랙베리 자판의 터치감과 아날로그적 감성은 사용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장점이다. 일반 스마트폰의 경우 보지 않고 문자를 입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손이 큰 사람일수록 오타도 많이 난다. 블랙베리는 이같은 문제가 없다. 게다가 자판을 빠르게 두드리고 있노라면 과거 피처폰 시절의 아련한 향수도 느껴진다. B씨는 "결국 다시 블랙베리로 돌아왔다. 다른 스마트폰이 궁금하긴 하지만 단종 되지 않는 이상 블랙베리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기: "많이 갖고 있지만 더 갖고 싶다"

말기는 수집 단계다. C(32)씨는 블랙베리를 수집한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 Q9900, Q10, 패스포트 등 총 6대를 수집했고 최근 중고거래를 통해 매매했다. 그는 "새로운 모델을 보면 써보고 싶다"며 "중고는 싼 값에 살 수 있으니 부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최대 블랙베리 커뮤니티에서는 중고매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하루 평균 15건의 중고제품이 올라오고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15~25만원선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여기서 이뤄지는 거래는 대부분 기존 사용자들의 수집이나 기기 교환을 위한 것이다. 그는 "블랙베리가 단종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모으고, 써보고 싶은 마음이다"고 말했다.

하우징(housing)을 마친 블랙베리
하우징(housing)을 마친 블랙베리

블베병 환자들은 아이러니하게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을 블랙베리의 장점으로 꼽았다. 게임처럼 용량이 큰 어플리케이션(앱)은 실행이 안 되다보니 통화, 메신저로만 사용이 한정된다. B씨는 "아이폰으로 바꾼 뒤 하루종일 게임만 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블랙베리로 바꿨다"며 "스스로 절제하기 위해 블랙베리를 고집하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블랙베리로 바꾼 뒤 공부할 때 다른 생각이 안 든다"며 "대학원생, 수험생처럼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딱이다"고 말했다.

저렴한 유지비도 장점이다. 한 달 통신요금은 대략 4만원에서 최대 6만원에 불과하다. 데이터 사용량이 적어 통화량에 요금제를 맞추기 때문이다. 최근 이동통신사들이 밀고 있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도 블랙베리 사용자들에겐 관심 밖이다. 싼 가격에 기기를 구매했으니 몇 년간 할부금에 시달릴 일도 없다.

단점으로는 불안한 모회사와 폐쇄성을 꼽았다.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다양한 앱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블랙베리는 자사 OS에 기반한 한정된 콘텐츠만 고집한다. 타사 OS와 호환되지도 않아 카카오톡·라인을 제외한 메신저나 모바일은행앱 등은 사용할 수 없다. 최근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설치를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방법이 복잡한 탓에 여전히 불편하다.

이런 이유로 블랙베리는 세계 시장에서도 외면 당했다. 2004년 20%에 달했던 블랙베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년 뒤 1% 미만으로 떨어졌다. 블랙베리 코리아도 국내 시장에 뛰어든지 5년 만인 2013년 상반기 철수했다. B씨는 "앱도 부족한데 회사까지 망했다"며 "부족한 부분은 태블릿PC로 채워야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워털루에 위치한 블랙베리 본사. © News1
캐나다 워털루에 위치한 블랙베리 본사. © News1


그럼에도 이들은 "블랙베리를 계속 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사가 망한다 해도 블랙베리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삼성전자의 블랙베리 인수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블랙베리를 인수할 가능성은 적다. 투자비용에 비해 예상되는 수익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B씨는 "다른 회사가 블랙베리를 인수해서 모델을 만든다면 반드시 살 것"이라고 단언한다. C씨도 "차라리 다른 곳에서 인수한다면 찬성이다. 타사가 블랙베리를 인수한다면 분명 그 시너지가 대단할 것이다"며 블랙베리의 잠재력을 밝게 전망했다.


soho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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