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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싶어도 놀곳없는 아이들 '놀이터'가 사라진다

올해 초 1740개 안전이유로 이용금지 이후 대부분 방치
"놀이기구 없어도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더 원한다

(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 | 2015-05-04 19:38 송고 | 2015-05-04 21:50 최종수정
2015.05.04/뉴스1 © News1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는 말은 적어도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어른보다 더 바쁜 아이들. 2013년 보건복지부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들 3명 중 1명은 하루 30분 이상 운동(놀이)을 못하고 있다.

    

놀이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부 부모들의 수요에 힘입어 놀이유치원 등 놀이 위주의 교육시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어릴 때부터 경쟁에 최적화될 수 있는 '1등 기계' 로 양산되는 교육 환경 때문에 이런 시설을 이용하며 공부보다 놀이를 우선할 수 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어린이들의 숨통을 그나마 틔어주는 장소가 바로 '놀이터'다. 이웃 친구의 얼굴을 보고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어린이들의 사회적 교류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물론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 한다. 초등학생 상당수가 놀이터를 자신의 생활반경 중 '중요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동의 절반은 방과 후 하고 싶은 활동으로 '친구들하고 놀기'를 희망했다.(2013년 보건복지부 아동종합실태조사)

    

해외 연구에 따르면 집에서 1Km 이내에 놀이터가 있는 곳에 사는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5배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주택단지 내 어린이 놀이시설 설치를 의무화함으로써 아이들의 놀 권리를 미약하나마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놀 권리‘의 마지막 보루인 놀이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안전을 이유로 있었던 놀이터마저 사라지고 새 놀이터는 생겨나지 않는다. 놀이터 개선작업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형태의 놀이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놀고 싶어도 놀 곳이 없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놀이터 없애는 '놀이터 규정'…예산도 법령도 도움 안 돼


2015.05.04/뉴스1 © News1

전국의 놀이터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정부의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하 안전관리법)'에 따른 ‘안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이용금지 조치를 당하는 놀이터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세계 아동 구호 NGO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국민안전처가 올해 초 실태 조사 후 전국 1740개 어린이 놀이터에 대해 설치검사를 받지 않거나 불합격했다는 이유로 이용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일단 이용 금지 조치가 내려진 놀이터는  많은 수가 개선되지 못해 폐쇄되고 있다. 이용금지조치를 받은 놀이터 중 1313개가 주택단지에 있는 곳으로 대부분 영세하고 노후화됐으며 이용 금지 조치 이후 계속 방치되고 있다.

    

‘안전 관리’를 위해 노후화된 놀이기구 시설을 이유로 이용을 금지시켰다면, 나머지 놀이터들은 안전한걸까. 불행하게도 이용 금지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안전관리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만 봐도  2007년 518건이던 놀이시설 사고 발생 건수는 2008년 820건, 2009년 899건으로 점점 증가하다가 2013년에는 2022건을 기록했다.(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해결책은 안심하고 놀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로 기존 놀이터를 개선하는 것이지만 각종 현실과 법령에 발목 잡혀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놀이터 개선사업을 하기 위해선 공동주택 관리 지원 조례에 근거해 지원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경로당·가로등 등 산적한 현안에 밀려 지원을 받기 요원하다.

    

또 놀이터 환경 개선을 위해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후화된 놀이기구를 철거하고 다른 놀이기구를 설치해야 하지만 놀이기구 제조사에서 새로운 유형의 놀이기구를 만들어 안전 인증을 받기까지 소요시간이 길고 개발비용도 증가하는 부담이 있다.

    

때문에 놀이터 설치·관리 업체는 하자보수 비용이 적게 들고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는 관리가 쉬운 놀이기구만 들여놓게 된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고 더 다채롭게 놀 수 있는 놀이기구 도입은 요원한 셈이다.

    

◇놀이기구가 꼭 있어야 놀이터가 아니다


2015.05.04/뉴스1 © News1

그렇다면 안전하면서도 재미있고,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어떤 것일까.

    

세이브더칠드런은 현행 안전관리법에서 규정한 '놀이기구가 설치된 놀이터'라는 정의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반드시 놀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놀이기구 대신 아이들이 모험을 즐기고 친구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현지 지형과 자연물 혹은 조약돌·그루터기·통나무 등 특별한 목적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뤄질 수 있는 놀이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을 제공하자는 의미다.

    

실제로 아이들과 부모가 원하는 놀이터도 이런 모양에 가깝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월부터 서울 시내 지역·단체별로 7차례 가진 워크숍을 통해 아이·부모가 원하는 놀이 및 놀이터 유형이 지금의 놀이터와 거리가 멀다는 설문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따르면 아이들은 처음에는 특정 놀이기구 중심으로 놀이를 진행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엔 친구들끼리 규칙을 정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놀이터를 '활용'하며 논다. “여러 놀이기구가 연결된 조합놀이는 재미없다”는 반응도 나왔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놀이기구 이용 방식도 차차 위험한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에 놀이기구가 오히려 안전을 위협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들 역시 “복합 놀이 시설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공간”, “노인들과 가족들이 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2015.05.04/뉴스1 © News1
◇놀이터 안전문제는 놀이 기구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놀이터 안전 문제로 더 신경 쓰는 부분은 놀이기구 보다 오히려 다른데 있다. 이들은 차량이 가까이 다니는 도로변 놀이터, 불량 청소년과 노숙자 등 놀이터를 배회하는 어른들 그리고 불편을 낳는 놀이터 모래밭 등을 불안 요소로 꼽았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모래 놀이터 대신 고무바닥 놀이터를 선호했다. 모래놀이터는 긁힐 위험이 있고 신발에 모래가 끼거나 동물 배설물 등이 방치돼 세균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놀이터가 변해야 미래가 산다

    

안전을 이유로 사라져가는 놀이터를 지키고 아이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놀이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미래의 주역 어린이들을 위해 필수적이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명백한 위해요소를 제거하는 안전관리는 중요하지만 안전관리가 어린이놀이터를 줄이는 결과를 낳아선 안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적당한 모험을 통해 위험이 상존하는 세계를 탐험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을 자발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1월 아이들의 놀 권리 향상을 위한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시-중랑구가 함께 만드는 어린이 놀이시설 개선사업'을 시작했다. 민·관 협력으로 아이들과 현지 주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어린이 놀이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도 이달 중으로 안전관리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노후한 놀이터 중 29개에 대한 리모델링을 완료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창의적 어린이놀이터를 열 예정이다.

    




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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