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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연극인이 함께 풀어낸 과거사 '태풍기담'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5-04-24 06:00 송고
<p>'태풍기담'은 한일 젊은 연극인이 함께 과거사 문제를 재조명한다. 대본을 쓴 성기웅(왼쪽)과 동아연극상 최초의 외국인 수상자인 타다 준노스케 연출가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p>

'태풍기담'은 한일 젊은 연극인이 함께 과거사 문제를 재조명한다. 대본을 쓴 성기웅(왼쪽)과 동아연극상 최초의 외국인 수상자인 타다 준노스케 연출가 (사진제공 서울문화재단)



"일본관객은 과거사를 너무 모른다."(타다 준노스케)
"한국관객은 실제 역사를 너무 잘 알아서 연극 자체로 즐기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된다."(성기웅)
연극 '태풍기담'(颱風奇譚)은 한국과 일본의 연극인이 함께 참여하는 작품이다. '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성기웅(41)이 대본을 쓰고 동아연극상 최초로 외국인 수상자로 선정된 극단 '도쿄데쓰락'의 타다 준노스케(39)가 연출을 맡았다.  

두 사람은 이미 2013년 연극 '가모메'를 함께 작업해 제50회 동아연극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신작 '태풍기담'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템페스트'(태풍)를 각색해 한국과 일본의 불행했던 역사를 젊은 세대의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연극이다. '태풍기담'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10월24일에 찾아올 예정이다. 첫 제작회의를 가진 성기웅과 타다 준노스케를 지난 21일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태풍기담'은 어떤 내용인가?
▶(성기웅·이하 성) 원작인 '템페스트'는 도시국가인 밀라노와 나폴리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점령한 상황에서 두 국가의 사람들을 태운 배가 태풍에 난파돼 무인도로 휩쓸려온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풍기담'은 원작의 설정을 1920년대 한국과 일본으로 바꿨고 무대가 되는 무인도는 동남아시아의 외딴섬으로 고쳤다.

- 두 사람은 언제부터 함께 작업했나?

▶(성) 타다가 2009년 객원연출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본격적으로 함께 작품을 만든 건 2013년 '가모메'('갈매기'의 일본어)였다. 원작인 '갈매기'는 러시아 안톤 체홉의 희곡으로 모스크바에 사는 작가가 키예프의 시골로 내려가 겪는 사건을 다룬다. 가모메는 원작의 내용을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도쿄에 사는 작가가 한국의 시골로 내려가는 것으로 바꿨다.

- 두 사람의 연극적 차이점은?

▶(성) 내가 안톤 체홉처럼 사실성을 지향한다면 타다는 셰익스피어처럼 자유로운 상상력을 추구하는 편이다. '태풍기담'에서는 연출을 맡은 타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 광복 70주년과 한일수교 50년를 맞는 2015년에 태풍기담의 의미는?

▶(타다 준노스케·이하 타다) 우리가 역사문제를 연극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연극은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예술이며 무엇을 소재로 다루든 간에 연극 자체로 의미를 둬야 한다. 다만 원작을 한일 관계로 번안하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성) '태풍기담'은 광복 70주년을 염두에 두고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지식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한일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태풍기담은 한국 초연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될 예정이다.

- 한일 양국의 관객을 상대하는 데 느끼는 부담감은 없나?

▶(타다) 양국 관객들의 지식과 배경이 다르다는 게 어렵다. 일본관객은 과거사를 너무 모른다. '가모메'를 일본에서 공연할 때도 (일본인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반응이 있었다. 

▶(성) 한일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불편해진 시기라서 긴장된다. '태풍기담'을 대하는 한일의 반응도 다르다. 한국관객은 실제 역사를 너무 잘 알아서 연극 자체로 즐기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된다. 또한 '태풍기담'이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과 우려의 시선으로 관람할 수도 있다.

- 배우에게 요구하는 연기가 독특하던데 어떤 연출적 접근인가?

▶(타다) 감정에 몰입하는 연기 방식에 회의적이다. 나는 바디랭귀지와, 음성으로 나오는 언어대사를 구분해 접근한다. 먼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바디랭귀지만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 뒤에 대사를 입힌다. 예를 들어, 절친한 2명이 무대에 등장한다고 치자. 일반적 연극에서는 두 배우의 대사와 동작에서 친근함을 최대한 표현하는 것을 추구할 것이다. 내 연출적 접근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지만 몸짓에서는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바디랭귀지를 요구할 것이다. 낯설면서도 깊이 있는 감정표현이 가능해진다.

- 한국과 일본 배우들의 차이점은?

▶(타다) 국민성으로 접근하자면 한·일 배우의 차이가 분명하다. 일본은 감정을 숨기는 연기를 잘하고 한국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잘한다.

-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한국은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을 겪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타다) 2012년에 후쿠시마 대지진을 소재로 한 연극을 일본 내 8군데를 돌아다니며 공연했었다. 재난지역에서 멀어질수록 함께 아파하는 공감대가 떨어져서 충격을 받았다. 같은 일본인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일본에서는 경제논리로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또한 그 시도를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국민이 있다.

2014년 12월에 팽목항과 안산 단원고를 찾아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이는 치유센터도 방문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후쿠시마 지역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많이 닮았다. 양국의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분들을 위해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이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을 돕고 싶다.

모든 예술은 어떤 사건을 상상하게 만들고 상징적으로 압축시킨다. 좋은 작품이란 결국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다. 2015년 안산거리극페스티벌에 참여해 안산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안산순례길'를 공연할 계획이다.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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