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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한 가정 모범생 엠와지는 어떻게 '지하디 존'이 됐나

학창시절 근면·겸손하고 친화력까지 겸비했던 급우들 동경의 대상
탄자니아 여행으로 정보당국 감시대상 전락…쿠웨이트행 좌절 후 잠적
IS 가담 후 '물고문 전문가'로 변신…피해 유가족 "머리에 총알 박고 싶다"

(서울=뉴스1) 이준규 기자 | 2015-02-27 16:23 송고
쿠웨이트 출신 영국인 모함메드 엠와지로 밝혀진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처형 전문가 ´지하디 존´.© AFP=뉴스1
쿠웨이트 출신 영국인 모함메드 엠와지로 밝혀진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처형 전문가 ´지하디 존´.© AFP=뉴스1

그간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인질 참수를 주도한 '지하디 존'의 신원이 영국인 모함메드 엠와지(26)로 밝혀지면서 그의 삶도 조명되고 있다.

학창시절까지 모범생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엠와지가 최근 수 년 새 급격하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 데는 영국 정보당국의 책임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영국 텔레그라프는 엠와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매우 평범한 학창 시절을 런던에서 보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엠와지는 지난 1988년 쿠웨이트에서 아버지 자셈(51)과 어머니 가네야(47) 사이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엠와지의 가족은 그가 5세 때인 1993년 걸프전 도중 난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런던 생활을 시작했다.

아랍어 알무아젬이나 알모아잠에서 따온 엠와지라는 성은 영국에서 이들 가족만 등록해 사용하고 있는 매우 드문 성으로 알려졌다.
엠와지 가족은 영화 '노팅힐'로 유명해진 런던 서부의 주택가에 자리를 잡았으며 이후 아버지 자셈이 택시회사를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여러 차례 고급 주택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들이 거주했던 주택 중 하나는 현재 시세가 120만파운드(약 20억원)에 이른다.

당시 이웃 주민들은 이들을 "특별히 친근하거나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평범했던 가족"으로 기억했다.

엠와지와 형제들도 런던 북부에 위치한 사립 퀸틴 키내스턴 중등학교에 다니며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

지하디 존과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꺼린 한 익명의 동창생은 "그는 자기 사진을 크게 드러내려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 넘치고 겸손한 성품으로 인해 인도, 파키스탄 등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며 "당시에는 특정한 종교적 성향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다닌 성 마리아 막달레나 초등학교의 동급생은 엠와지가 축구를 좋아하고 쾌활한 '좋은 녀석'으로 기억했다. 

중학교 담당 교사 중 한 명은 "근면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 엠와지는 많은 학우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며 "나이가 들면서 더 종교적으로 독실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난 수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전과 180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탓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엠와지는 이후 2006년 웨스트민스터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했으며 2009년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의 엠와지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그를 "예의바르고 유행하는 서양식 옷을 즐겨 입던 멋쟁이"이면서도 "여성과의 눈 맞춤조차 다소 경계하는 이슬람 신자"였다고 묘사했다.

엠와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극단주의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학은 지난 2011년 이슬람 단체 히즙 우트-타흐리르의 조직원이 학생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과의 연계성을 의심받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학 대변인은 엠와지와 관련한 언론 보도 직후 성명을 통해 "6년 전에 졸업한 엠와지가 지하디 존이라는 소식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며 "그에게 해를 당한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엠와지는 2009년 8월 친구 2명과 함께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했다가 현지 보안당국에 구속된 후 강제 추방당하는 일을 겪었다.

탄자니아의 옛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가 이민국 직원들에게 붙잡혀 구금됐다.

당시 이들의 심문을 담당했던 이민국 관계자는 이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KLM항공을 타고 입국했으며 하루 동안 구금된 후 무장 요원들의 감시 아래 다음날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송환됐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한 엠와지는 영국 국내정보국(MI5)에 의해 심문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요주의 인물로 떠올랐다.

연이은 구금과 심문에 억울함을 느낀 엠와지는 자신의 사연을 무슬림 재소자들을 지원하는 인권단체 '케이지(Cage)'에 보냈다.

이 글에 따르면 그는 암스테르담과 영국 도버에서 연이어 MI5의 심문을 받았다.

엠와지가 닉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MI5 요원은 그를 알카에다 연계단체인 소말리아 알샤바브에 가담하려는 용의자로 지목했다. MI5는 이외에도 그에게 9·11테러와 런던 지하철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대한 입장과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묻는 한편 그에게 MI5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엠와지는 서신을 통해 "'매일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는 말 외에 무슨 답을 했겠느냐. 유대인에 대해서도 '누구나 자신만의 종교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며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간 MI5의 행동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MI5 요원은 심지어 내가 사파리에 가기 위해서 소지하고 있던 밀리터리룩 재킷을 가리키며 군복이 아니냐고 의심을 했다. 그러나 내가 로카웨어(미국 의류 브랜드) 재킷을 함께 꺼내며 '이 옷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케이지의 조사국장인 아심 쿠레시는 "엠와지는 MI5의 조사 태도가 매우 불공정했다고 느꼈으며 상당히 분노했었다"며 "IS가 공개한 참수 영상에서 보인 지하디 존의 모습은 당시 엠와지와 닮았다"고 말했다.

무슬림 재소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 ´케이지(Cage)´의 아심 쿠레시 조사국장이 26일(현지시간)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뉴스1
무슬림 재소자를 지원하는 인권단체 ´케이지(Cage)´의 아심 쿠레시 조사국장이 26일(현지시간)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뉴스1

엠와지의 성격은 이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2009년 첫 약혼 후 약혼녀의 가족이 있는 곳이자 자신의 고향인 쿠웨이트로 향했던 그는 8개월 간 체류 후 영국으로 돌아온 2010년 5월 다시 구금돼 정보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파혼 후 2010년 7월 다시 영국으로 귀국한 그는 새로운 연인과 다시 약혼했지만 재차 구금돼 조사를 받았으며 다시 파혼에 이르렀다.

당시 엠와지의 이웃이었던 엘리사 모레스는 "엠와지를 수차례 본 적은 있지만 매우 낯설었고 불친절했었다"며 "아들과 동년배였지만 결코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엠와지는 케이지에 보낸 서신에서도 자신의 폭력성을 묘사했다. 그는 "다시 구금을 당한 상황에서 인도식 터번을 쓴 한 남성이 들어와서 가방을 뒤지더니 코란(이슬람 경전)을 꺼내서 바닥에 내려놨다. '바닥에 놓지 말고 의자에 놓으라'고 했더니 그가 화를 내며 '의자에 올려 놨으니 닥치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 '당신이나 닥치라'고 소리지르자 나를 의자로 밀쳤고 이에 '이유없이 화내는 저 남자가 나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답하지 않겠다'고 맞대응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금은 물론 고향인 쿠웨이트에서 새로운 삶을 찾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제지당했다. 런던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죄수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좌절감을 나타냈다.

영국 정부는 이후 엠와지를 테러단체 연계자로 인식했다.

영국 법원 문서에 따르면 엠와지는 알샤바브 고위 지도자가 됐다가 2012년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숨진 빌랄 알베르자위와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 또 지난 2005년 7월 7일 일어난 런던 지하철 테러 직후인 같은 달 21일 또 한 차례 테러를 기도한 용의자 4명과도 연계한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보이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들은 엠와지와 같은 런던 서부의 라드브로크 그로브에서 거주했다. 때문에 영국 언론들은 지난해 트위터 계정에 IS의 인질 참수장면을 올렸던 라드브로크 그로브 출신의 전직 래퍼 압델-마제드 압델 바리가 지하디 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엠와지와 바리가 서로 지인일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정보당국의 엄격한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엠와지는 고향에서 새 삶을 찾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2013년 초 이름을 모함메드 알아얀으로 개명을 하고 쿠웨이트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쿠웨이트행 비행기표를 구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출국 직전 다시 정보당국에 의해 쿠웨이트행을 금지당하면서 재차 조사를 받게 됐다.

이로부터 3주 후 엠와지는 돌연 행적을 감췄고 4개월이 지난 그해 초여름 경찰은 엠와지의 부모에게 그가 시리아에 있다고 통보해왔다.

정보당국과 현지 언론들은 그가 불법 입국이 용이한 터키를 통해 시리아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IS의 고위 인사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 중 하나는 그가 알카에다의 서방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이드리브의 수용소에서 고문관으로 악명을 쌓은 후 이를 발판으로 IS의 고위직을 거머쥐었다는 가설이다.

이드리브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석방된 한 목격자는 당시 지하디 존이 "물고문을 즐겼으며 가장 세밀하게 고문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엠와지는 2014년 초 IS가 인질들을 근거지인 라카로 이동시키면서 함께 이곳으로 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 때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3명이 함께 라카로 이동했는데 한 명은 엠와지이고 다른 한 명은 IS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지'라고 보도했다.

존과 조지는 이들이 영국 영어를 구사한 탓에 언론이 영국 유명 록밴드 '비틀즈'의 멤버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 별명이다.

이후 엠와지는 지난해 8월 19일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단도로 참수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남성으로 등극했다. 이후에도 지난해 미국인 스티븐 소트로프와 피터 캐식, 영국인 앨런 헤닝과 데이비드 헤인스, 일본인 유카와 하루나와 고토 겐지의 참수 영상 등에 등장하며 악명을 떨쳤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당국은 당초 지난해 9월 지하디 존의 신원을 확보했다고 밝혔으며 언론들도 특수부대에 의한 지하디 존 색출 작업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5개월이 넘도록 그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26일 WP의 보도가 있고 나서야 그가 엠와지인 것이 알려졌다. 그의 편지를 받은 쿠레시는 엠와지와 지하디 존이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엠와지의 친한 친구로 알려진 다른 남성도 "그는 내 형제와도 같다. 엠와지는 지하디 존이 맞다"고 말했다.

헤인스의 딸인 베타니 헤인스는 영국 ITV에 출연해 "지하디 존의 신원이 밝혀진 것은 잘된 일"이라며 "그의 눈 사이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면 가족들 모두 이젠 끝났다며 마음을 놓을 것"이라고 복수심을 나타냈다.

베타니는 생각보다 늦어진 신원 확인에 대해서는 "안보당국은 IS라는 이름의 조직을 처음 접해봤으며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잘잘못을 가릴 필요는 없다"면서도 "다만 세뇌당한 10대들이 더 이상 시리아로 향하지 못하도록 공항과 국경감시 등을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하디 존에게 참수당한 영국인 데이비드 헤인스의 딸 베타니 헤인스가 26일(현지시간) 영국 ITV와의 인터뷰에서
지하디 존에게 참수당한 영국인 데이비드 헤인스의 딸 베타니 헤인스가 26일(현지시간) 영국 ITV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눈 사이에 총알을 박아 넣는다면 가족 모두가 마음을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ITV 캡처)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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