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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땐 'LTE급' 내릴땐 '게걸음'…기름값 미스터리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2015-03-01 08:50 송고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한동안 내리막길을 걷던 휘발유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이미 리터(ℓ)당 1300원대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주유소가 사라졌다. 전국에 남아있는 '1300원대 주유소'도 전체 주유소의 5% 비중으로 뚝 떨어졌다. 내려갈 때는 '게걸음'이던 휘발유값이 오를 때는 'LTE급'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정유사들과 주유소업계는 휘발유값을 결정하는 복잡한 유통구조와 세금 비중 등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서울에서 최저가 경쟁이 가장 치열한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는 지난 23일까지 휘발유를 리터당 1388원에 판매했다. 이날 판매한 기름의 공급가는 리터당 1379원. 리터당 9원을 남겼다. 경유는 리터당 1212원에 사들여 1218원에 팔았다. 이 일대 주유소들은 25일 리터당 1413~1418원으로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여전히 서울 평균가격인 1575원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이 주유소 사장 A씨는 "카드 수수료와 인건비를 빼면 사실상 적자"라며 "영등포구는 최저가 경쟁이 심해 주변 주유소 중 누가 먼저 가격을 올릴지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유소들은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렇다면 정유사들은 소비자들의 의심대로 폭리를 취하고 있을까. 정유업계는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률은 1% 남짓으로 일본보다도 리터당 120원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수년간 학계에서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지만 정유사들의 '폭리'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유사들의 실제 평균 공급가는 매주 석유공사(KNOC)에 보고하고 있는 등 가격에 대해 충분히 모니터링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유가가 전날 배럴당 10달러 떨어졌다고 해서 주유소 판매가가 당장 리터당 100원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석유제품(휘발유, 등유, 경유)의 가격은 국제원유시장이 아니라 역내 최대 트레이딩 시장인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반으로 한다.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국제제품가격에 유류세와 유통비용 등 각종 비용을 붙여 판매한다. 반면, 국제 원유시장은 투기세력이 지배하고 있다. 투기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가격변화가 심한 선물시장의 특징을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유가와 관련된 기사는 원유가격이지 석유제품가격이 아닌데, 기사를 접하는 소비자들은 '원유가 급락하는데 왜 제품가는 안 내리느냐'고 오해할 수 있다"며 "싱가포르 시장에서는 원유가 급등하는데 제품가가 그만큼 속도를 따라주지 못해서 역(逆)마진이 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출처=한국석유공사 오피넷.© News1
출처=한국석유공사 오피넷.© News1


실제 국제제품가는 1월 중순까지 하락세였다가 이달초 급등했다. 현재는 조정 보합 국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의 공급가는 지난해 4분기부터 이어져온 국제제품가의 하락세에 맞춰 1월말까지 32주 연속 하락했다. 국제 제품가가 1월 중순 이후 상승 반전 했음에도 정유사 공급가는 1월말까지 지속 하락세를 보였다. 판매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주유소와 대리점 등 구매자들의 수요가 증가하는 월 마지막주에 접어들면서 국제 제품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공급가격을 오히려 공격적으로 인하하며 판매경쟁에 나섰다. 그 결과, 국제제품가가 1월1일 이후 최저시점인 1월 중순까지 약 85원 하락하는 동안 정유사 공급가는 123원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류세도 문제다. 기름값에 대한 오해는 높은 유류세 비중으로 인한 착시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국제 유가의 변동이 국내 휘발유 가격에 100% 직결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국내 휘발유 가격 중 유류세 비중은 현재 약 64%에 달한다. 유류세는 정액분이 커서 제품 가격이 내려갈수록 유류세 비중이 높아진다. 국제 제품가격 하락이 크더라도 국내 제품가격에 체감이 적은 이유는 유류세 비중에 따른 경직성의 영향을 받아서다. 정유사가 국제제품가 하락 분을 반영해 공급가를 책정한다고 해도, 주유소의 판매가로 반영되는 데에는 평균 2~3주 소요되기 때문에 주유소 판매가가 국제유가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시적 왜곡 현상이 있을 수 있다.

출처=한국석유공사 오피넷.© News1
출처=한국석유공사 오피넷.© News1


실제 소비자들이 기름을 넣는 주유소의 판매가격 산정도 꽤나 복잡하다. 정유사들의 원가산정 및 공급가격의 기반이 됐던 것이 싱가포르 국제제품가였다면, 주유소들은 정유사들의 공급가를 원가로 삼아 최종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공급한다. 정유사들이 대리점과 수입사 등 내수시장 제품 공급주체들과 한 시장을 이뤄 경쟁을 벌였다면, 주유소들은 전국 1만2000개의 주유소들과 새로운 시장 속에서 판매 경쟁을 하게 된다. 

각 주유소들은 석유제품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월 약 2~3회 제품을 구매해 판매한다. 주유소들도 쌀 때 많이 사두고 비쌀 때 파는 방법을 통해 이익 확대를 추구한다. 반대로 비쌀때 사둔 재고를 다 팔기 전까지는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 주변 주유소가 가격을 내려도 비싸게 산 제품 재고가 남아있다면 바로 가격을 내리기 힘들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원가 이하로 팔며 팔 때 마다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할 주유소는 많지 않다.

실제 지난해말 전국 최저가 주유소 타이틀을 두고 주유소 사장들간 홍보 경쟁이 붙었던 사례가 있다. 당시 전국 최저가 주유소로 유명세를 탄 충북 음성 상평주유소 김덕근 사장은 지난달 말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자고 일어나면 유가가 떨어지는 요즘 상황에서 매일 공급받는 재고를 다 처리하지 못하면 손실이 된다"며 "재고관리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김 사장은 "22년동안 주유소를 운영해왔는데 이렇게 싼 가격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것은 내 생각에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이렇게 싸게 팔아도 남는 게 있을까싶지만 내가 싸게 파는 만큼 정유사들도 공급가를 낮추니까 아예 안남는 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se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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