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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국에 진 美 리틀야구팀 타이틀 박탈 "흑인이기에…" 파문

[통신원 코너]

(시카고=뉴스1)김훈태 통신원 | 2015-02-26 16:19 송고 | 2015-02-26 16:26 최종수정
지난해 세계 리틀야구 준우승에 오른 미국의 ´재키 로빈슨 웨스트(JRW)´팀이 백악관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출처=JRW 페이스북) © News1
지난해 세계 리틀야구 준우승에 오른 미국의 ´재키 로빈슨 웨스트(JRW)´팀이 백악관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출처=JRW 페이스북) © News1

지난 해 8월 24일, 필라델피아의 윌리암스포트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팀과 미국을 대표한 시카고팀간 세계 리틀야구 결승전이 진행됐다.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이 생중계한 이 경기 결과는 한국 어린 선수들의 8대 4 짜릿한 승리. 1985년 이후 28년 만에 한국팀이 리틀리그(Little League) 월드시리즈의 우승팀이 된 것이다. 12세 이하 어린 선수들의 기량과 투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한 즐거운 기억이었다.

이 리틀리그가  새삼 미국내에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당시 한국팀에 져 준우승을 차지한 팀은 시카고 지역의 '재키 로빈슨 웨스트(Jackie Robinson West, JRW)'이다. 이 팀은 지난해 준결승에서 네바다주 대표팀을 꺽고 미국 챔피언이 됐다.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한 시카고 남부지역을 대표하는데다 선수 전원이 흑인 어린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 모은 팀이다. 이후 시카고를 정치적 고향으로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초청하는 등 유명세를 누리며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까지 받았다.

그러던 이 팀이 충격적인 스캔들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전말은 이렇다.

지난 11일 아침, 리틀리그 야구 월드시리즈 대회를 관장하는 '리틀리그 인터내셔널(Little League International)'은 "JRW 팀 선수 중에 팀이 속한 지역 밖에 거주하는 선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며 미국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한다고 공표했다. 이날 모든 방송 채널은 매 시간 뉴스마다 이 사건을 보도하며 논평을 냈다. 찬반 양론의 여론도 불같이 일어났다.
리틀리그 야구팀의 선수 거주지역 규정 위반은 무엇일까? 미국 내 리틀리그 야구에는 선수들이 그 팀에 해당되는 거주 지역에서만 살거나 그 지역 내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지난 해 12월 중순 인근 팀인 '에버그린 파크(Evergreen Park)'의 크리스 제인스 부회장은 JRW팀이 승리를 목적으로 거주지 밖에 살고 있는 선수 수 명을 포함시키는 편법을 사용함으로써 소위 '슈퍼팀(super team)'을 만들어 우승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리틀리그 인터내셔널은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JRW 측은 자신들이 거주지 규정을 제대로 지켰으며 리틀리그 인터내셔널의 추가 증빙 서류 요청에 충실히 응했다고 밝혔다. 리틀리그 인터내셔널도 검토 결과 문제점을 찾지 못했으며 제출된 증빙서류가 만족할 만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제인스 부회장의 의혹 제기가 이어지자 리틀리그 인터내셔널은 지난 1월 시카고 현지 방문 조사를 했고 지난 3일에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JRW팀이 우승 후 비밀리에 인근 자매팀과 팀의 지역 경계선을 조정해 문제가 되는 선수들을 포함시키려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리틀리그 인터내셔널은 지난 11일 이를 토대로 JRW팀의 우승 자격을 박탈하고 감독과 학군 담당자의 자격을 정지시켰다. 당연히 우승컵은 준우승팀이었던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팀에게 돌아갔다.

미국에서는 학원스포츠 비리나 불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스티븐 키너 리틀리그 인터내셔널 총재도 "75년이 넘은 리틀 리그 역사에서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은 승부 보다 우선해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미국 내, 특히 시카고 인근 여론은 이런 입장을 꼭 지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연 코치진과 부모들의 행동으로 인한 챔피언 타이틀 박탈이 타당한지에 대해 여전히 분분하다. 이들을 옹호하는 여론은 무고한 어린 선수들이 어른들의 잘못에 희생되고 있다는 데 방점을 둔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나타난 옹호 여론은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준 어린 선수들로부터 트로피를 뺏는 것이 부당한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간판 선수인 앤드류 맥커친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 과거 불우한 어린이들의 희망의 통로였던 리틀리그 야구가 이제는 돈 많은 가정의 자녀만이 누리는 엘리트 야구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점이라고 말해 많은 이의 동조를 이끌었다. 지역 규정이 초점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이번 징계가 선수 전원이 흑인이라는 데서 나오고 있다. 리틀리그 야구팀의 지역 경계에 관한 규정은 사실 과거에도 미 전역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변칙 적용돼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SNS에는 JRW가 만일 백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더라도 이러한 조사를 받았겠느냐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흑인 인권정치가 제시 잭슨 목사와 진보성향의 마이클 플레거 신부가 앞장 서서 이끌고 있다. 인종색, 정치색이 짙어지는 이유다. 리틀야구에서 벌어진 사건이 최근 퍼거슨 사태 등으로 고조된 인종차별 문제에 기름을 부을까 우려하는 백악관은 "선수들의 성취는 자랑스러운 것이고 계속 나아가길 바라지만 어른들의 추잡한 행위는 덮을 수 없다"는 취지의 오마바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하면서 조기 진화에 나섰다.

표면적으로 이 스캔들은 추악한 어른들 때문에 순수한 어린이들이 희생된 사건, 스포츠 윤리에 새삼 경종을 울린 사건 등으로 정리하는 듯하다.

그러나 스캔들은 아직 진행형이다. 챔피언 타이틀이 박탈된후 JRW팀이 법적 대응 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은 간단하다. 스스로 우승컵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미국 사회와 정치에 민감한 인종문제 카드를 쓰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슈가 지속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징조는 시카고의 주요 언론인 '시카고 트리뷴'과 '시카고 선타임즈'가 일제히 이번 논란이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 주 정치권으로 번질 징후를 보인다고 보도했다는 것이다. 모니크 데이비스 일리노이 주의원은 "모든 리틀야구단에게도 동일한 수준의 조사가 있어야 한다. 이번 조사의 과정과 결과 모두 공정하지도, 미국적이지도 않았다"며 모든 선수가 흑인인 이 팀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되돌려 주자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가난한 흑인 지역의 어린 흑인 선수들의 극적인 미국 리틀리그 야구 우승과 잇다른 우승 타이틀 박탈. 박탈의 이유가 거주 지역 등록의 편법이라는 사실. 리틀리그 인터내셔널의 입장 번복. 어찌보면 드라마틱하면서도 골치 아픈 비스포츠적 요인이 엉켜있는 모양새이다.

과연 제시 잭슨의 주장처럼, 이들이 '공정'하지 않은 또 다른 미국사회의 감추어진 구조의 하나의 희생양인 것일까. 어린 선수들은 이러한 스캔들과는 상관없이 격려 받으며 미래를 꿈꾸는 길을 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간접적으로 답을 할 수 있는 행사가 최근에 있었다.

지난 22일, 시카고 북부 교외의 노스브룩(Northbrook)에서는 챔피언십의 영예가 박탈된 결정과 상관없이 선수들을 환영하고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행사가 있었다. 노스브룩은 시카고남부와 달리 부유한 백인츨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매년 2월 미국내 흑인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의 일환으로 열린 행사 내내 여전히 어린 선수들은 '영웅'으로 묘사됐다. 어른들의 게임에 휘말려 순수한 어린 선수들이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배려인 셈이다.

JRW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News1
JRW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News1

이번 사건을 보며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한 원천인 '페어플레이'의 정신과 한국의 학원체육 현실이 떠올랐다. 국내 뉴스에 체육특기생 입시를 둘러싼 부정과 만연된 승부조작은 단골 소재이다. 심지어는 지난해에는 한 아버지가 아들의 태권도 경기 판정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 사건도 있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있지만 비리는 각 종목에 만연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28일 밝힌 스포츠 4대악 걷어내기 현황을 살펴보면 전 종목에 걸쳐 총 269 건이 접수됐다. 비리유형도 조직사유화, 입시비리, 폭력·성폭력, 승부조작·편파판정, 횡령 등 다양했다. 이런 해악은 비단 스포츠계의 문제만은 아니기에 '페어플레이'와 '게임의 룰'에 대한 성찰은 우리 모두에게 새삼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한편 이번 스캔들과 유사한 사건이 한국에서 불거졌을 때 과연 심판하는 과정의 공정성이 담보될 것인지, 어린 선수들과 문제 제기자를 보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챔피언십 박탈 후 JRW팀이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문제를 제기한 제인스 부회장에 가해지고 있는 테러위협을 즉각 중단할 것을 호소한 것인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기가 많이 시든 '작은' 야구리그에서 벌어진 스캔들이지만 "'공정성'과 '규칙'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사회분위기를 통해 선수들도 인생의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지역 리틀 야구 관계자의 말은 우리 모두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김훈태 미주 통신원.© News1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김훈태 통신원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는 동 분야 출강과 뇌훈련 기업 'GTE21'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 통신원은 전공인 정치는 물론 미국 내 사회·문화·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생동감 있게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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