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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항공기사고에 물에 뜨는 '사출형 블랙박스' 도입 논의 활발

바다로 추락해도 쉽게 항공기 위치 발견 가능
높은 단가와 검증이 필요한 점은 걸림돌

(서울=뉴스1) 이준규 기자 | 2015-01-11 13:48 송고
지난 2013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난 아시아나항공 OZ214편의 블랙박스들. 왼쪽이 비행기록장치이며 오른쪽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이다.© AFP=뉴스1
지난 2013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에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난 아시아나항공 OZ214편의 블랙박스들. 왼쪽이 비행기록장치이며 오른쪽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이다.© AFP=뉴스1

연이은 항공기 사고에 더 안전하고 정교한 운항시스템 마련을 위한 항공업계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고 원인규명을 빨리 하기 위한 '사출형 블랙박스'의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출형 블랙박스란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블랙박스를 기체에서 분리시켜서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는 형태의 블랙박스를 의미한다.
항공기 추락 사고의 경우 통상 항로가 해안을 따라 가기에 바다로 떨어지는 일이 많다. 이 때 기체가 심해로 가라앉을 경우 블랙박스도 함께 내려가기 때문에 회수에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사출형 블랙박스의 경우 물에 뜨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본체가 바다 깊이 내려가더라도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계 항공업계의 정책을 주도하는 유엔 산하기구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 사출형 블랙박스의 도입 여부를 오는 2월에 열릴 고수준 안전(High-Level Safety) 회의에서 논의할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ICAO 고위인사는 "항공기 기록장치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열릴 때가 됐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ICAO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항공기 추락사건들로 인해 대중들이 사출형 블랙박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추락한 에어아시아 여객기 QZ8501편의 경우 블랙박스가 위치한 꼬리부분이 10일 인양됐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블랙박스는 없는 상태였다.

지난 2009년 추락한 에어프랑스 AF447편의 블랙박스는 추락 2년만인 2011년 발견됐으며 지난해 3월 실종된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의 블랙박스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출형 블랙박스 도입 논의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ICAO의 항공기록패널(FRP)는 지난 2012년 항공기 사고지점을 보다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보고를 통해 처음으로 사출형 블랙박스 장착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ICAO의 항공항행위원회(ANC)는 기존 블랙박스 배터리 수명 연장 등 다른 방안들은 수용한 반면 사출형 블랙박스에 대한 내용은 "재고해달라"며 2차례나 다시 FRP로 돌려보냈다.

앤서니 필빈 ICAO 대변인은 사출형 블랙박스 도입이 장치가 가진 몇몇 복잡한 속성을 이유로 지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반려된 바 있다고 말했다.

2013년 회의록에는 "사고 항공기 잔해의 위치를 빨리 알아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이 이를 위한 최상의 선택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출형 블랙박스는 지난 1960년대 캐나다 국립연구회의(NRC)에 의해 최초로 발명됐다. 제작된 블랙박스들은 미국 해군의 F/A-18을 비롯한 전투기들과 소형 항공기, 헬리콥터 등에 장착됐다.

사고시 물 위로 떠서 위치와 구조신호를 인공위성으로 보내는 군용 블랙박스와 달리 상업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그냥 물에 가라앉는다. 블랙박스는 물속으로 들어가면 그 신호음을 감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민간항공사의 여객기에는 2대의 블랙박스가 탑재된다. 때문에 2대 중 1대를 항공기 사고시 기체 발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출형 블랙박스로 교체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출형 블랙박스는 아직 규제기관이나 민간항공사로부터 찬밥 신세이다.

우선 사출형 블랙박스는 일반 블랙박스에 비해 가격이 2배 가량 비싸다.

이탈리아 방위산업체 '핀메카니카'의 자회사인 'DRS테크놀로지'는 현재까지 약 5000대의 사출형 블랙박스를 제조했다. 주로 군용기에 장착된 이 블랙박스들의 대당 가격은 약 3만달러(약 3273만원)이다.

반면 세계 최대 블랙박스 제조기업 중 하나인 허니웰의 가장 보편적인 블랙박스 모델들의 가격대는 1만3000~1만6000달러(약 약 1418~1746만원)이다.

DRS테크놀로지의 항공프로그램 담당자인 블레이크 판 덴 휴벨은 "사출형 블랙박스는 단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여객기 제조사와 규제당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니웰의 대변인은 은 규제당국이나 고객사들의 요청이 없기 때문에 사출형 블랙박스를 제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사출형 블랙박스가 상대적으로 기체가 작은 전투기가 아닌 대형 여객기에서 제 기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지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점도 보급을 방해하고 있다.

그간 제도적으로 사출형 블랙박스 도입을 적극 추진한 국가나 항공기관이 없는데다가 민간항공사들도 비용상의 문제로 사용을 꺼린 탓에 아직까지 사출형 블랙박스가 탑재된 대형 여객기가 사고로 추락한 사례는 없다.

캐나다 교통안전위원회 위원이었던 비행기록장치 전문가 마이크 풀은 "현재 사용 중인 블랙박스들은 그 성능이 신뢰할 만 하며 비용대비 효율성도 좋다. 블랙박스들이 회수되지 못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며 굳이 기존 블랙박스를 사출형 블랙박스로 교체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항공운송기업들의 모임인 국제항공수송협회(IATA)도 "항공산업계 내에 사출형 비행기록장치를 사용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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