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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 200배 늘어난 대학생…팍팍해진 상아탑

경제정책 및 교육열과 맞물려 공급 폭증…'낭만은 옛말' 캠퍼스, 취업전쟁터로 변해

(서울=뉴스1) 안준영 기자 | 2015-01-07 11:39 송고 | 2015-01-07 12:32 최종수정
한 대학교 학위수여식. /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한 대학교 학위수여식. /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좋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캠퍼스 낭만은 커녕 신입생 때부터 스펙쌓기에 매달리지만 대학 졸업생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증만 맡기면 대학가 대포집은 외상술도 내줬고 졸업장은 대통령 표창장 못지않게 위엄이 있었다.
지금이야 흔해빠진게 대학생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되면 명실상부한 성인이자 지성인으로 인정받았고 부모들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대학생 자녀 학비 조달은 물론 졸업 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손을 벌리는 캥거루족은 먼 훗날의 얘기다. 

그 시절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고 한다. 대학가에서는 서점이 호황을 누렸고 호스티스들이 여대생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대학생은 특별한 사회적 신분이었다.

◇대학생, 1만6000명 → 330만명
대학생 '몸값'이 낮아진 것은 물량 확대 영향이 절대적이다.

민간 싱크탱크인 대학교육연구소와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1945년 해방 당시 1만6000여명(대학 7819명·교육대 8229명)에 불과했던 대학생수는 지난해인 2014년에는 330만명을 넘어섰다. 69년만에 200배 이상 불어났다.

우리나라 대학정원 정책은 △자유 방임기(1945년~1960년) △수급 조절기(1961년~1980년) △졸업정원제 및 입학정원제로의 환원에 따른 조정기(1981년~1988년) △정원 자율화기(1989년~2002년) △정원 감축기(2003년~) 등으로 구분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던 박정희 정부는 산업분야별로 선별적으로 정원을 확대했고 교육대, 전문대 등을 확충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정원은 통제 및 억제 기조가 유지된 탓에 1970년대 후반 들어 대졸자 공급 부족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1979년 서울 소재 9개 대학이 지방 분교를 설치하는 등 대학 정원을 대폭 확대했다. 그 결과 대학생 수는 1970년 19만2000여명에서 1980년에는 61만1000여명으로 급증했다.

증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과열과외, 입시경쟁, 재수생 누적 등 문제가 끊이지 않자 전두환 정부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한다. 입학시 졸업정원보다 대학은 30%, 전문대학은 15%를 더 선발하되 재학기간 중 정원을 초과하는 학생을 강제 탈락시키는 제도다. 이에 따라 7만여 명의 입학정원이 늘어났다.

졸업정원제와 별도로 대학입학정원을 확대하고 2년제 대학이던 방송통신대학에 학사과정을 개설했다. 2년제이던 11개 교육대학을 1984년까지 4년제로 개편했다. 그 결과 1980년 61만1000명 선이던 대학생 수는 5년 뒤인 1985년에는 136만6000여명으로 수직상승했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등장하면서부터 본격 시행된 '대학 정원 자율화'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도 이어진다. 대학 정원 조정 권한이 '정부'에서 '대학'으로 넘어가면서 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 158만여명에 불과했던 전국 대학생 수는 1995년 221만여 명, 2000년에는 313만여 명으로 치솟았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대학의 자체 구조조정을 처음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2005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대학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한 입학정원 감축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원 자율화 기조를 강화하는 한편 국립대는 '대학 자율 구조조정 유도'를, 사립대는 '부실대학의 자발적 퇴출 촉진'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2009년부터 학생 수가 다시 늘기 시작한 것은 사이버대학이 이 때부터 고등교육법 적용 대학으로 전환되면서 통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대학, 29곳 →363곳…사립대 편중 '기형구조'는 문제

해방 당시 29개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대학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2012년에는 363개로 불어났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0년~1965년에는 대학정비와 사립학교법 제정 등을 통해 대학이 52개에서 70개로, 지금의 전문대(1979년 출범) 전신인 초급대학이 11개에서 34개교로 증가했다. 또한 기존의 사범학교를 개편해 10개 교육대학을 출범시켰다.

대학의 양적증가는 이후 계속되다 1990년~1995년에 다시 급증한다. 군사정권에서 김영삼 정부로 넘어가는 시기로 자율화 분위기를 타고 대학 설립 또는 변경 신청이 많았던 때였다.

1990년 정부는 4년제 대학 편중지원을 완화하고 전문대학 출신 기능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1995년까지 전문대학을 22개 신설하고 정원도 증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시기에 전문대가 117개에서 145개로 증가했고, 대학도 107개에서 131개로 늘었다.

1996년부터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2000년까지 대학 수가 45개 증가하는 등 또다시 대학 설립이 폭증했다.

그러나 2000년 전후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신입생 미달 우려가 제기되면서 2005년 361개를 정점으로 사이버대학을 제외한 대학 수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교육열에 힘입어 이후 대학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문제는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사립대에 의존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매우 기형적 형태를 갖게 되는 원인이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국공립대가 30여개 증가했지만 이는 경제개발계획과 전문대의 전신인 실업고등전문학교 및 전문학교 신설에 따른 것이었다. 

이들 대학은 1990년대 중반까지 4년제 대학에 흡수되거나 개방대학으로 전환되면서 국공립대는 50여개로 줄어들어 현재까지 비슷한 숫자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사립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1992년을 기점으로 200개를 넘었다가 10여년만인 2005년 301개에 달하게 됐다.

국공립대는 통폐합 결과로 2000년 61곳에서 2012년 52곳으로 9개가, 사립대는 2005년 301곳에서 2012년 291곳으로 10개가 줄었다. 전체 국공립대 수가 사립대에 비해 훨씬 적은 점을 감안하면 국공립대 감소 비율이 사립대학의 4배 이상에 이른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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