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부터 제주도에서 진행됐던 축구 국가대표팀의 소집 훈련은 시작부터 끝까지 ‘진지 모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다. 멤버 다수가 대표팀 경력이 일천한 신예급 선수들이었다. 허물없이 지내기에는 조심스러운 무대였다. 21일 훈련이 종료되면, 이튿날인 22일에 호주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가 발표된다는 스케줄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1분 1초를 허투루 쓸 수 없었던 시간이다.
이런 조건들 때문에 여느 대표팀보다도 진지했던 제주도 전훈이었다. 그 중에서도 정성룡 골키퍼의 마음가짐은 누구보다 묵직해보였다. 훈련 내내 웃는 표정하나 볼 수 없었다.
정성룡 골키퍼(오른쪽)은 ´제2의 고향´ 제주에서 진행된 전훈 동안 누구보다 묵묵히 땀흘렸다. 절치부심의 결실을 자체 평가전에서 맺었다. ©뉴스1스포츠 / 대한축구협회 제공 |
때문에 이번 전지훈련은 정성룡에게 절치부심하는 무대였다. 제주는 정성룡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서귀포고등학교를 나왔다. 광주중학교 2학년 때 제주도로 합숙훈련을 왔다가 당시 서귀포고를 이끌던 설동식 감독의 눈에 들어 제주로 전학왔다. 결과적으로 ‘고향의 기’를 받은 셈이 됐다.정성룡은 21일 오전 서귀포시 강창학구장에서 열린 대표팀의 자선축구경기에 백호팀 선발 골키퍼로 나서 전반 45분을 소화했다. 그리고 자신이 뛰는 동안 골문을 열어주지 않으면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았다. 정성룡은 2차례 결정적 위기를 잘 막아냈다.
전반 24분 강수일의 정확한 패스가 이용재에게 연결돼 박스 안 왼쪽에서 1대1 찬스가 만들어졌으나 정성룡이 각도를 잘 좁히고 나와서 실점 위기를 넘겼다. 불과 1분 뒤에도 좋은 세이브가 있었다. 김민우의 크로스가 수비수를 맞고 굴절돼 갑자기 골문 쪽으로 휘어져 들어왔는데, 감각적인 움직임으로 크로스바 위로 쳐냈다.
정성룡의 선방 덕분에 백호팀은 2-0으로 앞선 채 전반을 마칠 수 있었다. 후반 이범영 골키퍼에게 장갑을 넘긴 뒤 공교롭게도 청용팀의 2골이 나와 경기는 2-2가 됐기에 정성룡 골키퍼는 더 여운을 남길 수 있게 됐다.
눈보라가 날리는 악천후 속에서 전체적인 플레이가 매끄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4명의 골키퍼 모두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은 확실했다. 정성룡은 인상적이었다. 일주일 내내 고향에서 묵묵히 땀흘린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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