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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인터넷금지 집중근무제 했더니 야근 31시간 '뚝'

<뉴스1-고용노동부 공동기획> 근로시간 줄이고 행복 더하기④
보상휴가·시차출퇴근 등 유연근무제로 근로 단축…직원들도 "굿"

(서울=뉴스1) 한종수 기자 | 2014-11-27 18:47 송고 | 2014-11-28 14:49 최종수정
충남 아산 소재 IT업체인 하나마이크론 직원들. © News1
충남 아산 소재 IT업체인 하나마이크론 직원들. © News1

서울의 한 정보기술(IT)업체에서 일하는 정모(33)씨는 요즘 피곤에 찌들어 산다.

최근 3개월짜리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된 정씨는 집에도 못가고 5일 내내 회사에서 숙식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씨는 "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보자는 마음에 작은 벤처회사에 왔는데 3~4단계 하청을 거쳐 낮은 단가로 프로젝트를 수주해 일하는 구조에다가 매일 야근에 특근"이라며 "며칠 여행가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IT업계는 낮은 보수와 장시간 근로, 자기개발 부족 등으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고의 IT국가라는 이면에는 경직된 근로 관행을 많은 업체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를 만났다. 이름도 생소한 '보상휴가'를 받아 1주일 쭉 쉰다는 동기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정씨의 대학동기는 회사가 최근 비효율적인 근로문화 척결에 나서면서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고 자랑했다.

아이퀘스트의 유연근무제 도입 전후 비교. © News1
아이퀘스트의 유연근무제 도입 전후 비교. © News1

◇집중근무·보상휴가·시차출퇴근 등 도입…직원 호응 '굿'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아이퀘스트는 1996년 설립 이후 소트트웨어 개발에 매진해 온 업체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아이퀘스트와 구매·고객지원을 담당하는 아이퀘스트서비스로 구분돼 있다.

회사의 핵심부서인 개발본부는 대부분 한달 단위의 새 프로그램을 수주받고 완성해야 해서 '매월 마감'이란 게 생겼다.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업무는 과중되고 밤 10시를 넘기는 연장근로에 휴일근무까지 부지기수다.

100여명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IT업체 ´아이퀘스트´ 사무실. © News1

성병직 경영지원실 부장은 "잦은 연장 근무로 인해 이직률이 높은데다 업무 특성상 주말·야간 가리지 않고 고객 응대, 제품 테스트 등을 하다 보니 연장근로가 많았다"며 "때문에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안정적인 근로체계를 갖추고 한 단계 더 도약한다는 방침에 따라 노사발전재단의 일자리함께하기 지원사업 컨설팅을 받게 된다. 컨설팅은 IT업체 특성에 맞게 근로 방식 유연화와 휴가 사용 촉진 등에 맞춰졌다.

우선 업무효율을 위해 집중근무제를 채택했다. 산만한 상황에서 1시간 일한 것보다 10분 집중해서 일한 결과물이 낫다는 판단에 오전 10~12시를 집중근무시간으로 정해 회의·잡담·흡연·사적인 인터넷 검색 등을 금지했다.

연장근로가 잦은 프로그래머를 위해선 보상휴가제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연장근로를 2시간 한 경우 연장근로수당(150%) 분만큼 총 3시간의 휴가를 주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로 한 달 간 하루 2시간씩 연장근로를 했다면 5~6일 휴가를 얻을 수 있다.

여성 근로자에게는 시차 출퇴근제를 도입해 가사와 육아부담을 덜어줬다.

김미숙 서비스상담원 과장은 "오전 9시 출근일 때는 아침이 아이들 밥 챙기고 학교 보내고 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는데 10시로 조정하면서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 효과는 바로 성과로 나타났다.

월 평균 연장 근로시간이 50시간에서 18.7시간으로 31.3시간가량 감소했고 연간 근무일수도 10일 가량 줄었다. 업무 능률이 올라 2012년 91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10억원을 돌파했다.

하나마이크론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 © News1
하나마이크론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 © News1

◇유연근무제로 업무효율·고용·매출 다 늘어…제도 안착해야

IT업계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신기술에 대응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짜내려면 업무 효율이 필수라고 말한다.

이에 많은 업체들이 고효율 업무를 위해 근로시간 단축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다우기술은 잦은 연장근로에 따른 휴식 보장과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최근 일자리 순환제를 도입했다.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들에게 30일 이상의 유급휴가를 줘 교육훈련이나 안식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와이드티엔에스도 집중근무제·보상휴가제·정시퇴근제 등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신설했고 충남 아산의 하나마이크론㈜은 교대근무제를 개편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한편 신규인력을 뽑아 고용창출까지 이뤄냈다.

조정래 와이드티엔에스 조정래 대표는 "다양한 유연근무제 도입에 따라 근로자들의 의욕, 신규고용, 매출 등 모두 늘었다"며 "많은 IT업체들이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제도가 안착이 돼 많은 곳에서 채택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IT업계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깨뜨리는 분위기는 뜨겁다.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IT근로자들의 삶에 여유가 찾아와야 업무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결국은 기업 발전으로 귀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시간근로 개선 컨설팅을 담당하는 노사발전재단 관계자는 "컨설팅에 참여한 다수의 IT기업이 처음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직원들의 사기와 효율이 증대되면서 오히려 이윤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일 새롭게 개발되는 기술에 대응해야 하는 IT업계가 다른 산업군에 비해 근로문화 개선에도 한 발 앞서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때문에 IT업계의 움직임이 다른 산업에 큰 울림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장시간 근로 해소 움직임이 강하지만 아직 많은 기업들이 주저하고 있다"며 "앞으로 정부의 지원을 더욱 늘리고 법 개정, 감독 강화 등을 통해 근로개선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je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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