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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한화, '승부사' 김성근 손잡고 '비상' 이룰까

(뉴스1스포츠) 김지예 기자 | 2014-10-26 09:43 송고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10번째 사령탑에 올랐다. 김 감독은 '승부사'로 통한다. 통산 2807경기에서 1234승 57무 1036패를 기록했다. 이젠 '독수리의 비상'을 책임져야 한다.

한화는 잔혹한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2008년부터 7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정근우, 이용규 등 FA를 잡기 위해 총 178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 참담했다. 50승도 채우지 못하면서 3년 연속 꼴찌도 했다. '우승 청부사'라던 '최고 명장' 김응용 감독이 2년 연속 체면만 잔뜩 구겼다.

한화는 깜깜한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팬들의 아우성 탓에 백기를 든 그룹 고위층의 결정을 받아 들였다. 팬들에겐 어떤 책임도 없다. 요구의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김응용 감독의 선임 과정과 재임 기간 때처럼 모든 책임은 온전히 결정권자의 몫이자 구단 프런트의 짐이 됐다.

한화는 25일 "제10대 사령탑으로 김성근 감독을 선임했다. 3년간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을 포함한 총액 2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영입 이유에 대해서는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며 "고강도 훈련과 철저한 전략으로 팀의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이정훈 2군 퓨처스 감독, 한용덕 단장특별보좌역, 이상군 코치, 김재박 KBO 경기위원 등 구단 내부에서 추천한 인물들은 제대로 검증 한번 받지 못한 모양새가 됐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10번째 지휘관이 됐다. 꼴찌 탈출에 능한 그가 선수단과 합심해 '탈꼴찌'를 넘어선 성적을 만들 수 있을 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 News1 DB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10번째 지휘관이 됐다. 꼴찌 탈출에 능한 그가 선수단과 합심해 '탈꼴찌'를 넘어선 성적을 만들 수 있을 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 News1 DB
구단은 팀 사정을 잘 알고 중장기적으로 리빌딩할 수 있는 내부 인사를 추천했으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그룹 측의 의견은 달랐다. 한화 그룹은 외부 인사를 통한 개혁을 바랐다.

'부처 팬'들이 거세게 일어선 것도 한 몫 했다. 팬들은 SNS를 통해 김성근 감독 영입을 간절하게 원하는 동영상을 올렸고, 다음 아고라 청원도 진행했다. 또 한화 본사 앞에서 '김성근 감독 영입을 추진하라'는 1인 시위까지 벌였다. 김성근 감독은 전무후무하게 팬들이 뽑은 사령탑인 셈이다.

김성근 감독은 재일 교포 2세로 20대 초반 한국에 건너왔다.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가쓰라 고등학교 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재일교포 학생야구단, 동아대, 교통부를 거쳐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1968년 현역 생활을 마쳤다.

이후 1969년 마산상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72년에 기업은행 감독으로 취임한 뒤 국가대표 코치, 충암고와 신일고의 감독을 역임했다. 프로야구에 발을 들인 것은 OB 베어스 코치를 맡은 1982년부터였다. 1984년 OB 감독을 거쳐 1989년 태평양, 1991년 삼성, 1996년 쌍방울, 2002년 LG, 2007년 SK 등 6개 팀을 두루 거쳤다. 

특히 전력상 하위권이었던 팀들에게 '대박'을 냈다. 1988년 팀 승률 0.319로 가장 저조했던 태평양은 1989년 팀 승률 0.533에 정규 리그 3위로 끌어올리면서 당당하게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쌍방울도 1991년 1군 데뷔 이후 1995년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못 나갔다. 1995년을 포함해 최하위만 3번 했다. 지금의 한화와 비슷하다. 김성근 감독은 그런 쌍방울을 지도해 1996년 페넌트레이스 2위에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2001년 감독대행을 거쳐 2002년 정식 감독이 된 LG에서도 첫 해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다.

SK에서는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면서 '명장' 반열에 올랐다. 2006년 승률 0.480으로 6위였던 SK는 2007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첫 해에 승률 0.603으로 페넌트레이스 1위와 함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 후 탄력을 계속 이어갔다.

김성근 감독은 '꼴찌들의 반란'을 만들어 왔다. 이번에도 3년 연속 패배에 젖어있는 한화의 기를 북돋고 일으켜세울 수 있을까. © News1 DB
김성근 감독은 '꼴찌들의 반란'을 만들어 왔다. 이번에도 3년 연속 패배에 젖어있는 한화의 기를 북돋고 일으켜세울 수 있을까. © News1 DB

하지만 야구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올 시즌까지 한화의 지휘봉을 잡았던 김응용 전 감독의 선임 당시에도 기대는 뜨거웠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김응용 감독은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을 포함해 통산 1567승으로 최다승 1위를 기록한 '명장 중에 명장'이다. 그가 2년 간 한화에서 남긴 성적은 91승3무162패에 그쳤고, 팀은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이 김응용 전 감독과 확실히 다르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어볼 만 하다. 김성근 감독은 철저한 '관리 야구'를 추구한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 훈련 일정까지 꼼꼼히 챙긴다. 수첩에다 빼곡히 메모를 하고, 분석하고, 준비한다. 

김응용 감독은 현장을 떠나 구단의 최고 경영자를 거쳤다가 9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감각이 다소 무뎌졌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긴 공백이 없다. 2011년 8월 SK에서 중도하차한 뒤 같은 해 12월부터 올해 9월까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꾸준히 선수들을 지도 관리했다. 한화는 3년 만에 복귀한 프로 무대지만 감각을 유지해 온 상태다.

한화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투수를 중심으로 한 수비력이 약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외야수는 우선 걸음이 빨라야 하는데 한화에는 발 빠른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외야 수비가 약해져 단타가 2루타로, 2루타가 3루타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김성근 감독은 "외야 수비를 잘 하면 투수도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흐른 세월 만큼 재미있는 인연도 있다. 김성근 감독은 SK에서 발굴했던 정근우와 한화에서 또 다시 만난다. 어느덧 30대가 된 정근우는 FA 자격을 얻고 한화로 이적했다. 올 시즌 타율 0.295와 137안타 44타점을 기록했다. 여기에 김태균, 송광민, 조인성 등 힘을 보탤 선수들과의 새로운 만남도 기다리고 있다.

'꼴찌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화에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 '김성근식 야구'가 어떤 마법을 가져다줄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hyillil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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