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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정가산책] 김무성의 트라우마는...

#{서봉대} 블로거 | 2014-10-22 16:37 송고 | 2014-10-26 22:47 최종수정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4.10.2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요즘 새누리당의 계파갈등을 떠올리면 두해 전 친박계 모 의원 상가에 조문하러 갔을 적의 상황이 겹쳐지곤 한다.
당시 조문을 마친 친박계 의원들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던 중 한 인사가 합석하려고 하자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인사가 앉자마자 갑자기 한 의원이 "급한 약속이 있다"며 일어섰고 다른 의원들도 잇따라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선약 등을 이유로 떠나버렸다.

이 인사는 몇 개월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전직 의원' 김무성이었다. 당시 총선에서 공천 탈락했거나 낙선했던 전직 의원들 몇 명과 함께 미국 배낭여행을 다녀온 직후여서 그랬는지 머리엔 백발이 성성하기도 했다.

그는 어색해진 상황을 풀기위함인지 맞은 편에 앉아있던 인사들에게 애써 너스레를 떨기도 했으나, 비어있는 자리 쪽으로 눈길이 갔을 땐 만감이 교차했을 듯했다.

한때 친박계의 2인자, 혹은 좌장으로 불렸던 그였지만 2012년 총선땐 친박계가 사실상 주도했던 공천에서 탈락, 내리 4선을 달렸던 중진 의원에서 졸지에 원외인사로 전락한 쪽박신세가 돼버렸다. 총선 2년전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박 대통령과 입장을 달리해 친박계와 맞섬으로써 '탈박(脫朴)'으로 몰렸고 '배신자'라는 낙인까지 찍혔던 것이다. '무대(김무성 대장)'로 불리기도 했던 그가...
그가 친박계가 된 것은 2005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였을 때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됐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으며 친박 좌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대선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친이계가 주도한 '친박계 공천 학살'에 휩쓸려 낙천됐으나 '친박 무소속 연대'를 통해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여의도로 입성, 친박계 당선자들과 함께 복당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중반기인 2010년, 정부측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과정에서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박 대통령에게 맞서 수정안에 찬성함으로써 양측은 결별하게 됐다.


박 대통령은 당시 "친박에 좌장은 없다"는 말로 그를 친박계에서 내쳤고 결국 탈박의 길을 걷게 됐다. 이보다 한해 앞서 그가 친이계의 지원을 토대로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려 했을 때도 박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 논란 직후 친이계의 지원아래 원내대표로 당선됐으나 2년후인 2012년 총선을 친박계가 주도하게 되면서 공천에서 탈락하는 정치적 수모를 당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엔 탈당·무소속 출마로 맞서는 대신 불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잔류함으로써 공천탈락자들의 연쇄탈당 움직임을 조기 차단, 대선에 나섰던 박 대통령에게 힘을 보탰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양측간 관계도 복원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대선 정국에서 친박계 최고 실세로 꼽혔던 최경환 후보비서실장이 당내 인적쇄신 논란에 휘말려 2선으로 물러나게 되자 그가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발탁돼 대선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정치적으로 부활하게 됐다. 

4.24 영도 재선거에 출마한 김무성 새누리당 후보가 24일 저녁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뒤 지지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3.4.24/뉴스1 © News1


이듬해 4월 박 대통령의 측면지원 아래 부산 영도 재선거에 출마, 당선됐던 것이다. 총선 공천에서 떨어진 지 1년만에, 자신을 떠밀어냈던 친박 의원들이 포진해 있는 원내로 복귀하게 됨으로써 여권내 권력지형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어 지난 7월 전당대회를 통해 친박계 서청원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 대표로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전성기를 맞았으나 개헌론· 당직 인선 등 정치적 현안들을 놓고 박 대통령 및 친박계 인사들과 잇따라 갈등기류를 표출하고 있다.

그는 대표 취임후 기회있을 때마다 "당내엔 친박, 비박이란 게 더 이상 없다"고 양측간 갈등설을 일축하고 있으며, 특히 관훈토론회에 나가선 "친박은 제가 만들었다. 저를 비주류 좌장이라고 규정하는 건 수용 못하겠다"며 "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 체제가 조기 안착하면서 세 확산에 나서자 계파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취임 보름후인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밖의  압승을 거뒀던 게 김 대표체제에 탄력을 붙였다.

김 대표는 당직인선 과정을 통해 그와 가까운 인사들을 잇따라 발탁, 당을 장악해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친박계 인사들은 2선으로 밀려나게 됐던 것이다.

친박계가 흔들리면서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탈박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들도 들렸으나 친박계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친박계의 중진 A 의원은 "김 대표 뜻대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나. 두고 보겠다"고 각을 세웠다. 중진 B 의원은 "대표 임기를 끝까지 채울 수 있겠는가? 정치적 변수가 있을 것이고 친박계는 뭉치면 산다"고 했다.

특히 당협위원장 교체문제와 맞물린 조직강화특위 활동을 둘러싸고 계파 갈등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 체제 출범 직전의 사무총장이었던 홍문종 의원이 조강특위 활동과 관련, 언론을 통해 김 대표를 연일 비판하고 있다.

"조강특위는 빈 자리에 사람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지 있는 사람의 목을 치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는 등으로 공격하고 있으며 친박계 당협위원장 40여명에 대한 물갈이설과 관련해선 "만일 그렇다면 서로 얼굴을 안 보자는 얘기지, 당을 이끌고 가자는 얘기는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홍 의원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 최고위원은 장기화하는 정국 파행과 관련해 "야당과 안 만날 이유가 없다"며 여야 원내대표 간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2014.9.29/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주춤했었던 친박계 모임도 재개되고 있다.


서 최고위원과 홍 의원, 유기준·윤상현 의원 등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벌써 활동 재개에 나섰으며 정기국회가 끝난 이후 친박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초청 토론회를 갖는 등 모임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새누리당에서 김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상대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친박측이 세 결집에 나선 셈이다.

이와 별도로 홍 전 총장은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통일·경제 연구모임도 발족시킬 계획이다. 이 모임은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비슷한 성격의 연구모임을 겨냥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결국 양측간 전선이 더욱 가파르게 형성되고 있는 국면이다. 게다가 김 대표는 개헌문제를 놓고 청와대 측과도 또 다시 갈등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다음 수순(手順)은 뭘까?

세종시 정국 때처럼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 맞서 비박의 길을 본격화 할 것인지, 2012년 총선 낙천 직후처럼 갈등국면에서 한 걸음 물러나 때를 기다릴 것인지... 

그의 착점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속단키 어렵지만 한가지 입장만은 분명해졌을 듯하다.


한때는 자신이 2인자 역할을 했었던 친박계와의 화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말이다. 2년전 쪽박 신세에서 당했던 아픈 기억들도 떠올려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4.7.15/뉴스1 © News1


게다가 선친을 통해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 어느 누구보다 깊을 박 대통령이 그와 다시 손을 잡는다는 것도 쉽지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임기 초반인 현직 대통령에게 맞서 정면 승부를 건다는 건 정치적 승산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김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어쩌면 자신도 '트라우마'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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