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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흥도선', 통일신라 배 확인…가장 오래된 해양 발굴

해양문화재연구소 "안압지선과 유사"…선체 내부 도기·철제 솥 등 8세기 유물 추정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2014-09-19 08:41 송고 | 2014-09-19 12:28 최종수정
영흥도선 잔존 선체 3D 결구 모식도(왼쪽)와 영흥도선 복원 예상 단면도.(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News1
영흥도선 잔존 선체 3D 결구 모식도(왼쪽)와 영흥도선 복원 예상 단면도.(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News1
지난 2012년 수중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인천 '영흥도선'이 지금까지 해양에서 발굴된 고선박 중 시기가 가장 앞선 통일신라 시대 선박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2012년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섬업벌 해역 제1차 수중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고선박 1척이 '경주 안압지선'과 유사한 통일신라 시대 배로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영흥도선의 활동 시기는 더욱 깊이있는 비교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해양에서 발굴된 고선박 중 그 시기가 가장 앞서 우리나라 해양사와 선박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이 선박은 바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고선박은 영흥도선을 포함해 해양에서 발굴된 선박 12척과 육상에서 발굴된 신석기 시대 선박 3척이 있다. 육상에서 발굴된 선박은 강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흥도선은 저판과 만곡종통재를 연결하는 데 사용한 장삭(長槊)이 기존의 고려 시대 발굴 선박에서 저판을 관통하는 것과 달리 '경주 안압지선'과 유사하게 밖으로 노출돼 연결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9척의 고려 시대 선박들과는 다른 형태다. 장삭이란 전통의 한선(韓船)에서 배의 바닥판이나 타판(舵板)을 고착하는 데 사용되는 가로로 길게 연결하는 긴 나무못이다.
잔존 선체는 길이 약 6m, 폭 1.4m의 3단으로 결구(結構)된 상태로 상부에 철제 솥과 도기 등 무거운 선적물들에 의해 눌려있었던 부분만 남아 있다.

부재는 저판(底板·밑에 대는 널빤지) 1열과 외판을 연결하는 부재인 만곡종통재(彎曲從通材·저판과 외판을 연결하는 L자형 부재) 2단 등 총 3단의 형태다.

안압지선 실측도.(문화재관리국, 1997)© News1
안압지선 실측도.(문화재관리국, 1997)© News1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옹진군 해역에서 청자가 발견·신고되면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수중 발굴조사를 시행해 영흥도선과 도자기 870여 점을 출수했다. 수중 발굴조사 전용인양선인 누리안호를 투입해 선체와 내부의 유물들을 조사했다. 

출수된 유물은 청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당초 영흥도선은 고려 시대의 선박으로 추정됐으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채취한 시료의 연대가 모두 8세기경으로 분석됐다. 

또 ▲청자가 선체 내부에서 1점도 확인되지 않은 점 ▲선체 내부에 적재되었던 철제 솥의 형태 ▲도기병에 시문된 파상집선문에 나타난 고려 시대 이전의 특징 등으로 미루어 영흥도선은 청자와는 별개의 통일신라 시대의 선박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파상집선문이 시문된 도기병과 내부의 고착물.(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News1
파상집선문이 시문된 도기병과 내부의 고착물.(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News1
선체 내부에서는 청자가 단 1점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도기(陶器) 6점과 철제 솥 12점, 동제 용기 1점, 사슴뿔 2점이 확인됐다.

이 중 도기병 1점에서는 향기가 나는 투명한 황갈색의 내용물이 확인됐다. 이 내용물은 예전부터 최고급 도료로 사용된 황칠(黃漆)과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도기병의 동체부에는 고려 시대 이전에 주로 보이는 파상집선문(波狀集線文·파도 모양의 선이 여러 개 겹쳐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문양은 5세기 무렵부터 백제와 신라 지역의 도토기(陶土器)에서 많이 보였다가 9세기 전반 이후 점차 소멸한 것으로 알려진 문양이다. 논산 표정리, 장도 청해진, 해남 백야리 모시골 가마 등 통일신라 시대 유적에서 비슷한 문양의 유물들이 확인된 적이 있다.  

12점의 철제 솥은 겹겹이 쌓아 선적된 화물의 형태로 발견됐으며 모두 다리가 없는 가마솥(釜)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양주 대모산성, 창녕 말흘리 유적, 경주 황남동 376 유적 등에서 유사한 형태의 철제 솥이 출토된 바 있다. 또 솥뚜껑은 1점도 출수되지 않았다. 고려 시대 이전에는 철제 솥뚜껑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을 뒷받침한다.

선체 내부가 아닌 주변 해역에서 발견된 청자는 식생활용 그릇인 발, 접시, 뚜껑, 잔(통 모양) 등이며 대부분이 번조(燔造·사기그릇 따위를 구워 만드는 일)한 조질청자(粗質靑磁·저급한 청자)류로 12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영흥선 주변 해역에서는 청자 851점, 백자 13점, 도기 12점 등 다량의 자기가 발견됐다.

영흥도선 주변에서 출수된 도기들.(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News1
영흥도선 주변에서 출수된 도기들.(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News1



senaj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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