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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 마을 이장이자 ‘희망 배달부’

강원지방우정청 오지마을 집배원 탐방⑧

(화천=뉴스1) 권혜민 기자 | 2014-08-29 13:19 송고
편집자주 강원지방우정청과 뉴스1 강원취재본부는 강원도 오지 산간마을을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의 하루 일과와 가족같은 사이가 된 집배원과 주민들간 미담사례 등을 매월 취재해 연재한다.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 앞에서 늦장마의 영향으로 한바탕 비가 내리고 구름만 조금 낀 28일 화천우체국 김상준(63) 집배원은 화천 평화의 댐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로 향한다. 

    

그가 배달하는 지역은 파로호와 인접한 비수구미 마을. 이 마을에 가려면 먼저 화천우체국에서 평화의 댐 아래 선착장까지 30km를 차량으로 이동해야 했다.

    

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선착장까지 가는 길은 굴곡진 경사로로 이뤄져있어 멀미도 멀미지만 불안한 마음에 차량 안 손잡이를 높지 못했다.

    

화천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해산령을 넘어 한 시간 쯤 지나니 평화의 댐 근처에서 비수구미 마을 선착장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행정구역상 강원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일대를 ‘비수구미’라고 부른다. 듣기에도 범상치 않은 이 마을은 ‘신비한 물이 만드는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비수구미 마을의 명칭은 마을 뒷산 바위에 새겨진 ‘비소고미금산동표(非所古未禁山東漂)’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금산동표’는 조선시대 궁궐 건축 시 사용하던 소나무 군락을 무단으로 벌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의미로 보아 이 마을은 자연환경 파괴가 적고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라는 뜻인 것 같다.

    

비수구미 마을포구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포구까지는 약 2km 가량의 비포장 길 이동해야 한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은 진흙탕으로 변해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길 좌측에는 낭떠러지가, 우측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바위덩어리들이 우리를 위협했다.

    

게다가 길 군데군데 떨어진 낙석은 공포심까지 느끼게 했다. 본격적인 배달은 시작도 안했는데 배를 타기 위해 들어간 시간만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오지다.

    

평화의 댐 수자원공사에 등기를 배달한 후 포구에 나타난 김 집배원은 본격적인 배달을 위해 집에 있는 보트를 가지러 갔다.

    

마을포구 인근에는 휴가를 즐기러 온 낚시꾼들이 짐을 한 가득 매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42가구 70여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대부분 민박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낚시꾼들이 기다리는 포구로 민박집 주인들이 배를 타고 나와 데려가는 모습이 눈에 자주 보였다.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배를 가지러 간다던 김 집배원이 파로호 물살을 가르며 나타났다. 김 집배원은 오늘 배달해야 할 우편물은 평소 보다는 적은 20여통 정도라고 한다.

    

평소 그가 배달하는 양은 평균 60통에 이른다. 하지만 배달한 우편물이 적다고 해서 김 집배원의 하루 이동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우편물이 많든 적든 그는 비수구미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꽤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김 집배원은 배달을 위해 보트 속도를 높이며 비수구미 마을로 향했다.

    

파로호는 화천과 양구와 맞닿아 있는 북한산 상류에 위치한 인공호수다. 파로호에서 양구 상무룡리 배달을 위해서는 배를 타고 2~3km 정도 가면 나오기 때문에 배로 이동하는 거리는 비교적 짧았다.

    

반면 화천 비수구미 마을은 호수 주변을 따라 4~5가구씩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로 수로를 이용해 배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눈도 뜰 수 없는 빠른 속도로 40여분을 달리니 5가구가 모여 사는 곳에 도착했다. 김 집배원은 “올해는 무척이나 가물었다”고 말했다.

    

파로호 수위가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40m 가까이 낮아져 있었다. 수위가 내려간 만큼 배를 정박하고 마을로 걸어 올라서 가야하는 것은 온전히 집배원의 몫이다.

    

편지 한통을 배달하기 위한 집배원들의 노력은 가히 대단하다. 첫 배달집에 도착하니 집주인이 인기척을 느끼고 집 밖으로 나와 무슨 우편물인지 물었다.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이 배달하는 비수구미 마을.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화천우체국 김상준 집배원이 배달하는 비수구미 마을.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군청에서 나왔느냐’는 집주인의 물음에 ‘우체국에서 나왔다’고 하니 ‘여기까지 배달 오느라 고생만 하는 것 같으니 집배원 좀 잘 챙겨달라’는 부탁이 이어진다.

    

사실 김 집배원은 우체국에서 일을 하지만 비수구미 마을, 곧 동촌리의 이장이기도 하다. 마을사람들은 그를 보면 “이장님 왔느냐”며 인사를 건넸다.

    

김 집배원은 퇴직을 넘긴 나이이지만 배 없이는 우편물 배달이 어렵다는 마을 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묵묵히 우편물 배달을 이어가는 대단한 사람이다.

    

또 다시 배달을 위해 배에 올라 10여분을 달려 다음 배달지에 도착했다. 편지 1통을 배달하기 위해 집배원들이 이동하는 거리는 생각보다 멀고 그에 따른 배달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배달 과정에서 비싼 비용이 든다고 우편물을 더 값비싸게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날은 바람이 세지 않아 배가 요동치지는 않지만 건너편에 배가 한 대만 지나가도 김 집배원이 탄 배는 요동을 치며 흔들린다.

    

하지만 김 집배원은 “오늘은 바람이 안 불어 정말 편하게 다니는 거예요”라며 웃음을 짓는다.

강원 화천군과 양구군과 맞닿은 파로호.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강원 화천군과 양구군과 맞닿은 파로호.2014.08.29/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10여분을 달려 편지 1통을 배달하고 또 5분을 달려 편지 1통을 배달한다. 그렇게 배달을 이어가는 중 갑자기 잘 달리던 배가 파로호 한가운데 멈춰 섰다.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김 집배원은 편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배 연료를 보충한다. 그는 “연료가 떨어져서 그렇다”며 미리 준비한 경유를 배에 채우고는 “연료 한통으로 호수 왕복은 힘들다”고 말했다.

    

배 위 비치된 물품은 연료를 비롯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구명조끼, 튜브 등이다.

    

김 집배원은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최고 아닐까요”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마지막 배달지로 향했다. 그렇게 이날 배달이 끝났다.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처음 출발했던 마을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날 그가 배를 타고 왕복한 거리는 50km는 거뜬히 넘을 것이다. 육로로 이동한 거리까지 합하면 100km를 넘을 것이다.

    

김 집배원은 하루도 배달을 쉴 수 없다. 마을주민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이 우편물 1통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주민들 때문이다.




hoyan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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