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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아고라]정책·법률안에 '정치'가 개입하면...

(서울=뉴스1) 서봉대 기자 | 2014-08-22 10:45 송고
정책을 추진하거나 법률을 입안하는 과정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2000년 16대 총선 직후 재선의 A 의원은 '지방자치법중 개정법률안'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중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의 요지는 기초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기초단체장에 대한 선거 및 정당공천은 폐지된다. 


하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됐던 기초단체장 등 공천폐지론과는 다르다. 이는 2012년 대선때 여야 후보들의 공약에도 포함돼 있었는데 선거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A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 40여명이 공동 발의했던 이들 법안의 취지는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과 행정서비스 개선 등 여러 장점이 있었던 반면 각종 지역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이에 편승한 무분별한 지역개발, 전시성·선심성 사업남발, 방만한 재정운영, 단체장의 직무태만과 인사권 남용등 문제점이 많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속사정도 있었다. 법안 취지라고 내세운 건 대외적인 입법명분이었다.

 
이들 법안을 대표발의했던 A 의원의 경우 지역구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지역구의 현역 기초단체장이 향후 총선과 관련해 당내 공천 이나 선거 과정에서 최대 라이벌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News1
© News1

이 같은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게 이들 법안이었던 셈이다. A 의원의 측근도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즉 임명제로 바꾸게 될 경우 지역구의 단체장은 현직 임기를 마치고 모두 떠나야 한다. 현직으로 있을 때조차도 차기를 기약할 수 없는 처지인 만큼 단체장으로서의 행보에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A 의원으로선 입법이라는 통상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앓던 이를 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처지에 놓였던 게 어디 A 의원뿐이었을까?

 
기초단체장과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간의 갈등관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경쟁자가 될 인물을 기초단체장 후보자리에서 아예 배제하고 싶어했고, 그럼에도 경쟁자가 당선된다면 갈등관계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던 게 다반사였다.

 
때문에 이들 법안의 발의에 함께 참여했던 의원들중에도 A 의원의 고민에 공감했던 경우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무산돼 버렸다.

 
전국의 기초단체장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던 것이다. 기초단체장쯤 되면 사실상 정치인이 다 된 셈인데 법안이 입법화될 경우 초래될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법안이었던 만큼 집단적으로 반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전국의 시장·군수·구청장들은 법안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라고 규정한 뒤 "지방자치 발전에 역행하는 어떠한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지방자치 수호를 위해 단호히 대처한다"며 국회를 항의 방문, 결국 법안을 보류시켰다.

 
#남부권 신공항 건설문제도 정치논리가 개입됨으로써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해 왔다.

 
신공항 건설계획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과정에서 공약했던 것을 계기로 대구·경북과 부산간 공항 입지를 둘러싼 갈등양상으로 치닫다가 2011년 정부측 평가결과 접근성·경제성·환경성 등이 낮아 백지화됐다. 물론 갈등과정에 해당 지역 정치인들이 개입함으로써 정치 쟁점으로 변질돼 갔고 이런 점에도 정부측이 적잖은 부담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듬해 총선에서 백지화됐었던 이 계획을 다시 공약화한 데 이어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부각시킴으로써 양 지역간 갈등이 재연되기 시작했다.

 

 



올해 6·4지방선거에선 이들 지역의 광역단체장 후보들까지 나서서 불을 붙였다.

 
부산시장으로 당선된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는 신공항 후보지로 꼽히던 부산 가덕도에서 출마를 선언하며 "가덕도에 유치하기 위해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약했다.

 
대구시장으로 당선된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도 이에 맞서 "신공항 건설은 대구를 비롯한 영호남 8개 광역자치단체가 있는 대한민국 남부지역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 만큼 전략적으로 접근해야지 지방끼리 싸우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며 "영호남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남부권 신공항 유치 공동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앞서 양 지역에는 시민단체 차원에서 대책위까지 결성됐었다.

 
최근들어 양 지역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남부권 신공항 건설과 관련된 정부측 수요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요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올 경우 입지조사에 들어가게 되나 이 과정에서 신공항 지역으로 '밀양'을 주장하고 있는 대구·경북 측과 '가덕도'를 내세우고 있는 부산 측이 팽팽히 맞설 것이다.

 
해당 지역 정치인이나 단체장 입장에선 입지선정에 실패할 경우 정치적으로 적잖은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입지 선정과정에서 불리해지면 정부 조사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설 게 뻔하다.

 
수요조사결과 자체가 부정적으로 나와 건설 계획이 보류된다고 해도 이전처럼 정치인 등에 의해 언제든 선거전에서 재부각될 수 있다.

 
결국 어느 쪽으로 결론나든 해법없이 지루한 입지싸움만 계속될 것이고 신공항 문제는 표류를 거듭할 수 있다.

 
정부가 이같은 갈등에도 불구, 입지선정을 강행할 경우엔 신공항 유치에 실패한 지역을 위해 '선심성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여당 쪽 정치인과 단체장들을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 발표된 선심성 정책이 또 다른 지역갈등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결국 정책이나 입법 과정이 정치적 논리와 맞물리게 되면 표류하기 십상인 것이다.

 
특별법 제정 등 세월호 대책을 둘러싼 해법이 표류만 거듭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있는 게 아닐까?

여야 정치권은 세월호 대책 마련과정에서 6월 지방선거와 7월 국회의원 재·보선 등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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